[칼럼]윤희근 청장과 현장 경찰의 커다란 인식 차이
윤희근 경찰청장은 핼러윈 참사 관련 경찰의 사전 대응 적정성에 대해 "현장에 137명이 배치돼 있어 기동대가 추가로 더 있고 없고는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력 배치가 안돼 참사가 났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이다.
이는 사전대비 미비 보다는 당시 현장에서 보고체계가 이뤄지지 않아 대참사가 발생했다는 논리다. 이 말에 동의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윤 청장은 그날 충북 지역에서 산행을 하다가 사고 다음날 새벽 0시 14분에서야 보고를 받았다. 경찰총수로서 부하들의 일 처리에 크게 실망한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현장에 마약 수사 경찰을 포함해 137명을 배치된 것으로 충분했던 것일까. 부하 경찰들의 증언들은 반대로 그에게 묻고 있다.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사고를 수습했던 한 경찰관은 "경찰관 몇명이서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경향신문 기자에게 말했다.(11월 8일자) 그는 참사 당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현장에 급파된 경찰 기동대와 함께 수백명의 사상자를 구급차에 실었다.
그 경찰관은 다시 말했다.
"우리에게 초동 대처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 말단에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그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사전에 대규모 인력 지원 없이 사고를 막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지금 국민도 대통령도 29일 저녁 6시대부터 계속되는 압사 위험 신고에도 불구하고 '왜 경찰이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냐'고 묻고 있다. "군 부대를 투입해도 모자라다고. 경찰이고 소방관이고 다 와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몇 명이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신고자가 재차 통탄하는 지경에 왜 이르렀는지를 묻고 있다.
그런데 경찰청장은 현장에만 오로지 책임을 지우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현장 경찰관들의 목소리를 곰곰이 따져보면 이 참사는 사전 대비가 있었지 않는 한 원초적으로 막을 수 없는 사고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희생자 숫자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왜 그런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는지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다. 그날 또 한 명의 경찰은 "다 이동하세요! 멀뚱멀뚱 보고 있지 말고 그냥 돌아가시라고요! … 이쪽으로! 사람이 죽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라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시민 통행을 정리했다. 그런데 보고체계는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일까. 이 동영상은 몇 시 몇 분의 상황인지 알 수 없지만 먹먹하기만 하다.
재앙의 원인을 보는 경찰청장과 현장 경찰관들의 판단이 극명하게 대별된다. 이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과 없었던 사람의 차이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사고가 일어난 시각에도 도보로 10여 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용산경찰서장의 굼뜬 행동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무전 기록이 공개돼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겠지만 수사이든, 국정조사이든, 특검이든, 이 부분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동대 추가 배치가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니'라는 윤 청장의 주장은 책임 면피를 위한 발언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가 지목한 137명의 경찰 가운데 절반이 넘는 마약 관련 경찰들의 그날 행적은 하나도 드러난 것이 없다. 그는 마약 형사 50여명 가운데 절반이 경찰 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참사 현장에서 어떤 일에 동원됐고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진 사실이 없다. 기동대 배치 등 사전대비를 하지 않은 지휘부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만 읽히는 대목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선 현장대응 실패를 규명하는 것과 함께 왜 경찰을 비롯해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가 사전 대비를 하지 않았는지가 이번 참사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전 서울경찰청장)이 그 부분을 명확히 밝혔다. 첫째, 경찰과 지자체는 이태원역 1번 출구 골목 진입을 통제해야 했고, 둘째, 이태원역 무정차 조치를 취해야 했으며, 셋째는 골목길 일방통행을 실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작년에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올해 재난컨트롤 타워는 왜 이 직무를 유기했을까. 현재의 경찰 수사가 가뜩이나 지휘부 뒷북수사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어떤 수사 결과도 재난 컨트롤타워의 무능함을 밝혀내지 않고는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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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goodwil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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