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서 ‘10억원’ 깨진 강남권 전셋값… “현장 가보면 더 싸다”
개포블레스티지·도곡렉슬 전용 59㎡도 10억 밑돌아
서울 강남권의 대단지 아파트 전셋값이 크게 내리고 있다. 지지선으로 여겼던 ‘10억원’이 깨진 곳이 여럿이다. 송파구의 대장주인 잠실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의 경우 국민 평형(84㎡) 전셋값이 1년새 5억원쯤 급락하며 10억원 아래 물건이 여럿 나오고 있다. 강남구 일대에서도 10억원을 훌쩍 넘던 전용면적 59㎡ 전세가 8억~9억원대에 나오고 있다. 집주인들의 고민이 커져가는 모양새다.
9일 송파구 일대 중개업계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도 엘스 전용 84㎡(6층) 매물이 최근 9억5000만원에 중개업소에 나왔다. 엘스 인근의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10억원으로 올라와 있는 다수의 매물도 협의를 통해 9억원 후반대까지 가능할 것”이라며 “급한 매물은 빨리 세입자를 찾기 위해 따로 연락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바로 옆 단지인 리센츠에서도 지난 주를 기점으로 9억원대 매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용 84㎡ 기준 5억원 가량의 융자를 낀 저층 9억5000만원 짜리 전세 매물이 등장한 데 이어 현재 10억원으로 공개된 매물 상당수가 실제로는 9억원대에 거래가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날 확인한 바로는 9억원에 가능한 물건도 있었다. 리센츠의 경우 지난 2년간 전셋값이 가파르게 올라 작년에는 14억5000만~15억원대에 신규 거래가 체결된 바 있다. 1년새 전셋값이 5억원 넘게 하락한 셈이다.
지난해 리센츠 전용 84㎡(18층)를 13억5000만원에 계약을 체결한 한 집주인은 “지난해 전세 보증금을 4억원 넘게 올려받았지만, 지금 마냥 좋지 만은 않다”면서 “지금과 같은 침체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내년에 수억원의 보증금을 다시 내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 달 31일 기준 전주대비 0.43% 하락했다. 2012년 5월 부동산원이 통계치를 공개한 이후로 최대 하락폭이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송파의 하락률은 1.04%로 가장 컸다. 송파구는 매매가격도 0.60% 내려 서울 25개구 중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12년 7월 둘째 주(-0.61%) 이후 10년3개월여 만에 최대 하락이다.
이는 전국적으로 매매·전세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잠실 일대의 경우 갱신계약 체결이 다수 이뤄지면서 그와 비슷한 가격대로 신규 매물도 내려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최근에 나온 9억원대 매물은 계약 갱신 매물 가격과 비슷한 가격대다. 이달 1일 리센츠 전용 84㎡는 9억5819만원에 갱신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10억원 지지선이 깨진 건 송파구만의 일은 아니다. 강남구 일대에서는 신축 대단지의 전용 59㎡ 전셋값이 10억원을 밑돌기 시작했다. 강남구 개포동의 래미안블레스티지에서는 전용 59㎡(2층) 매물이 9억7000만원에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59.84㎡(21층)이 13억원에 거래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새 3억원 넘게 하락한 셈이다.
인근의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9억7000만원에 나온 매물은 융자도 없는 매물인데 집주인의 사정으로 급하게 나가야 하는 매물”이라면서 “10억원대에 나와있는 매물들도 계약을 하겠다고 하면 다 협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했다.
도곡동의 대장주 도곡렉슬의 전용 59㎡도 전셋값이 10억원 아래로 내려오는 분위기다. 구조가 방 2개 짜리인 매물은 8억8000만~9억30000만원선, 방 3개 짜리는 보증금 9억원에 월세 90만원 정도까지 협의가 가능하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의 얘기다.
서울이 아파트값 하락기에 들어서도 마지막까지 버텼던 서초구 반포도 전세가격은 맥을 못 추고 있는 분위기다. 2018년 준공한 반포 써밋 전용 59㎡(11층) 매물이 10억원까지 내려왔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14억~14억5000만원선에서 거래된 바 있다.
반포동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기준금리가 인상됨에 따라 지난 8월부터 전세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면서 “해당 매물은 급급매물이기는 하지만, 다른 매물도 10억4000만~10억5000만원선에 나와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일대의 전세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강남권에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액전세에 살던 이들 중에도 전세대출 금리가 상승하면서 부담감이 커지자 월세로 돌아서거나 지역을 옮기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잠실, 개포 등에 살던 사람들도 조금만 이동하면 수억원을 낮은 가격에 전세로 거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내려주지 않으면 거주하지 않겠다고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서울 전반적인 전셋값 하락의 영향을 강남권도 받고 있는다”고 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세가격이 떨어지는 건 그만큼 수요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전세가율을 50%로 봐도 10억원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 미만이라는 것은 계약갱신청구권의 효과가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로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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