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소방의 날…“마음 속 상처 묻으려 ‘참사’ 언급하는 대원 없어”
“사고 이후 잠 설쳐…줄였던 담배마저 하루 한 갑으로”
트라우마 호소 대원 폭증…참사 때 긴급심리지원 대상 1098명
찾아가는 상담실 실적 지난해 5만3374명…6년 사이 11.4배로
[헤럴드경제=김영철·박혜원 기자] “생각할수록 더 상처로 다가오니까 다들 가슴에 묻어두고 있어요.”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서울 중부소방서 소방대원(소방위)인 권영준 씨는 제60주년 소방의 날인 9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이렇게 털어놨다. 권씨는 “최근 소방대원들은 여느 때처럼 일상을 이어가려 하지만, 그 누구도 이태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참상을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뚜렷이 목격했기에 그만큼 상처도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최근 권씨처럼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에 속하는 소방관들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 참사 때 근무했던 소방관들 사이에서 상담을 받은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만난 권씨는 올해 경력 20년차인 베테랑이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숱한 교통사고, 화재 등의 현장에 출동했다. 올 3월 ‘울진 산불’ 때도 투입됐다. 이러한 권씨도 이태원 참사는 그동안 겪어온 일들 중 가장 참혹했다고 털어놨다.
권씨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10명 정도 구조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구조해야 할 사람이 줄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며 “대한민국 수도에서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전쟁터가 딱 이런 모습일 것 같다”고 했다.
권씨는 지금까지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도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 숱한 현장에서도 상담을 찾을 만큼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이후 그도 달라졌다. 권씨는 요즘 좀처럼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시던 술도 근무가 비번인 날마다 찾게 된다고 했다. 그는 “최근까지 하루 6~7개비로 줄였던 담배도 한 갑이나 피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권씨처럼 최근 이태원 참사 이후 심리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소방대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본지가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2022년 긴급심리지원 현황’을 보면, 이태원 사고가 있기 한 달 전인 올해 9월 한 달 상담을 실시한 소방관들은 1548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뒤인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7일까지 긴급심리지원 대상은 1098명으로 확인됐다. 8일간 지원을 받은 소방관이 지난 한 달의 70.9%나 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이전에도 소방관들은 이미 지속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소방청이 공개한 ‘소방공무원 찾아가는 상담 실적’을 보면 지난 6년 새 상담 실적이 폭증했다. 서비스가 시작된 2015년 4702명이 상담을 받았지만, 6년 뒤인 지난해에는 상담 인원이 5만3374명으로 11.4배나 늘었다.
소방관의 평균수명도 공무직 중 짧은 편에 속한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제공한 ‘2016∼2020년 공무원 직종별 재직중 사망자 평균연령’ 자료를 보면 법관·검사는 43세, 소방직은 45세로 공무원 직종 중 두 번째로 낮았다.
소방청은 긴급위기지원TF팀을 통해 각 소방서를 개별 방문하는 등 ‘찾아가는 상담실’을 확대 운영하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출동직원, 비상대응직원 등이 대상이다. 개별적으로 정신의료기관이나 119안심협력병원을 찾아 검사, 진료, 상담을 받는 경우에도 비용이 전액 지원된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소방관들에 대한 체계적인 심리 치료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리 상담 등의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동욱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대변인은 “PTSD를 가진 소방대원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정도 심리 상담사를 붙여서 상담하거나 병원 치료를 받으라고 안내하는 정도”라며 “이미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형 사고 직후 PTSD를 바로 호소하거나, 시간이 흐른 뒤 호소하는 등 양상도 다양하다”며 “자신의 아픈 속내를 쉽게 꺼내는 것도 어려운데, 그 와중에 계약 업체가 바뀌어 상담사가 바뀌는 등 지속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강철 같은 마음씨를 가졌다고 자부했던 권씨도 헤어지며 “지금까지는 상담을 받아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상담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결국 말끝을 흐렸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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