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혀야 하나요?

신지민 기자 입력 2022. 11. 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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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효과는 적은데 감염인만 형사처벌로 내모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위헌 여부, 11월10일 헌재 공개변론
2021년 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전파매개행위죄 위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저는 ○○병원에 다니고 있고, 한 알짜리 약 트리멕(치료제)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약을 꾸준히 먹고 있어서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습니다.”

3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인 소리(별명)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모임에선 서로 이렇게 ‘독특한’ 인사를 건넨다고 말했다. 복용하는 치료제로 자신을 소개하고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로 안부를 전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사로 서로의 건강 상태를 짐작하고 서로에게 꾸준한 약 복용을 격려하며 칭찬과 위로를 한다고 했다. 2022년 11월1일 만난 소리는 HIV 감염인 당사자 자조모임이자 인권단체인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의 활동가다.

면접 때마다 꼬치꼬치 질문

이런 인사는 어디까지나 감염인 모임에서나 통용될 뿐 비감염인 앞에서는 감염 사실조차 드러내기 힘들다. 한국 사회는 ‘HIV’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잘못된 상식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HIV는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다. HIV로 면역체계가 손상돼 질병이 나타나는 상태를 에이즈라고 한다.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으면 에이즈 발병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법마저도 HIV 감염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약칭 에이즈예방법) 제19조에 따르면, HIV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 매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하면 제25조 2항에 따라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진다.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HIV 감염인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며 이 법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꾸준히 지적돼왔다.

2019년 11월 에이즈예방법 위반 사건 1심을 진행 중이던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신진화 부장판사가 ‘HIV 전파 행위를 처벌하는 현행법이 위헌인지 아닌지 판단해달라’고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냈다. 이 법이 처음으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당시 재판부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에서 ‘체액’이 신체 분비물 중 어디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인지, ‘전파 매개 행위’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고 봤다. 실제 이 조항을 위반해 기소된 사례들을 보면, HIV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관계하는 경우 상대방이 HIV에 감염됐는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기소해 유죄 판단을 내린다. 헌재는 2022년 11월10일 공개변론을 열 예정이다.

소리가 HIV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은 2011년이다. 몸이 아파 동네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했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동네 병원에서는 진료 거부를 당하고 종합병원에 갔다가 다시 대학병원에 갔다. 확진에 2주가량 걸렸는데 혼이 나가 있었다. 그땐 나조차 HIV를 잘 모르던 상태라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HIV 감염으로 군면제도 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부모님에게 감염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저체중이라 공익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재검사를 받아서 면제가 나왔다고 하니 믿어주셨다. 부모님이 받을 충격이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다.”

꾸준히 검사받고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전염 가능성이 없는데도 HIV 감염 사실은 그의 취업에도 발목을 잡았다. “면접 볼 때마다 군면제를 받은 이유를 꼬치꼬치 물었다. 개인적 이유라고 둘러댔는데 입사 뒤에도 여러 차례 묻는 상사가 있었다. 결국 회사를 2개월 만에 그만뒀다. 입사지원서에 병역란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상대방 감염 안 돼도 HIV 감염인 처벌

소리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의 모순을 지적했다. 애초 입법 목적이던 HIV 감염 예방 효과는 적고, 오히려 감염인만 형사처벌로 내몬다는 것이다. 실제 2018년에도 이 조항으로 기소된 감염인에 대한 유죄판결이 있었다. HIV 감염인 ㄱ씨가 콘돔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다섯 차례 성관계했으나 상대방은 감염되지 않은 사건에서 법원은 ㄱ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성관계 등을 통해 HIV를 전파할 위험이 사실상 0에 가까울 정도로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으나 그 위험이 0이 된다고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소리는 “이 조항은 실제로 상대를 감염시켰는지는 묻지 않는다”며 “전파 매개 행위가 있기만 하면 결과와 상관없이 처벌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이 조항은 HIV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몰라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조기 검진을 가로막고, 결과적으로 HIV가 공포와 편견을 타고 더욱 전파되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불안감이라는 굴레도 씌운다. “주위 감염인들의 사례를 보면 서로 사귀다가 헤어지면서 악감정을 갖게 되면 비감염인이 고소하거나, 고소하는 과정에서 협박한다. 상대방이 (콘돔을) 안 썼다고 주장하면 재판부가 그 진실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는 “이 조항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내밀한 사적 생활 영역에서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헌법 제17조가 보장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고의적인 HIV 전파 행위는 형법으로 처벌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헌재에 낸 의견서를 보면 “상대방에게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아니한 채 혹은 동의 없이 전파 매개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 이를 상해죄나 폭행죄에 준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성접촉으로 HIV 감염될 확률은 0%”

공개변론을 앞둔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소리는 2016년 세계 에이즈 콘퍼런스에서 발표된 ‘검출되지 않으면 전파되지 않는다’는 성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HIV 감염인이 꾸준히 치료받고 약을 먹으면 6개월 이내에 HIV가 미검출 수준으로 떨어지고 그 상태가 유지된다. 바이러스 미검출 수준을 유지하는 HIV 감염인과 성접촉으로 HIV에 감염될 확률은 0%다.”(2016년 세계 에이즈 콘퍼런스에 발표된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미검출=감염불가) 성명 중에서)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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