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주도 자율주행기술, 지각변동 생긴다
● 엔비디아, 메타버스 플랫폼 ‘옴니버스’ 구축
● 고성능 그래픽 기술로 실제와 같은 메타버스 구현
● 차세대 인터넷은 디지털과 물리 세계 연결
● 자율주행 AI도 가상 세계에서 훈련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9월 20일(현지 시각) 진행한 'GTC2022' 콘퍼런스 질의응답 세션에서 "메타버스 시대에는 새로운 유형의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엔비디아가 선보인 실시간 3D 협업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가 다음 세대 인터넷, 메타버스를 가능케 하는 소프트웨어이자 플랫폼이라는 설명이다.
옴니버스 클라우드란?
황 CEO는 올해 9월 GTC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옴니버스 클라우드(Omniverse Cloud)'를 들고나왔다. 옴니버스 클라우드는 메타버스를 위한 최초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및 인프라 서비스다. 100개국에 출시하며 단순 3D 협업 플랫폼을 넘어 메타버스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기업에 인프라(IaaS·Infrastructure as a service)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 부문인 AWS(Amazon Web Services)와 유사한 접근 방식이다. 기업에 컴퓨팅 파워(연산 능력), 데이터 저장소(Data Storage), 네트워킹 같은 인프라를 제공해 웹 및 모바일 앱을 손쉽게 운영하거나 데이터를 관리하게 해주는 것. AWS는 지난해 아마존 영업이익 비중 59%를 차지한 핵심 사업 부문이자 성장 동력으로 평가된다.
넷플릭스, 어도비, 에어비앤비, 리프트(승차공유 서비스) 같은 기업이 AWS의 고객사다. AWS가 '현재의 인터넷 기업'을 위해 존재한다면 엔비디아는 '차세대 인터넷 환경(메타버스)'을 노린다고 볼 수 있다. AWS가 웹 호스팅(웹 서버 제공) 서비스를 하듯 '물리법칙이 적용된 3D 환경'을 원활하게 구축하려면 옴니버스 클라우드를 이용하게 될 것이란 판단이다.
이런 전략의 배경에는 '미래의 인터넷은 실제 현실과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메타버스가 될 것'이란 확신이 존재한다. 황 CEO는 "1세대 인터넷은 HTML이라는 표준하에 정보를 연결하는 창구가 됐고, 이후 등장한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인터넷은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 컴퓨팅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삶과 인터넷을 통합했다"며 "다음에 올 인터넷(메타버스)은 로봇, 자동차, 빌딩까지 모든 것을 연결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메타버스 최초 클라우드 서비스 준비 중
업계에서는 옴니버스 클라우드 서비스 출시로 엔비디아의 비즈니스 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하드웨어 제품 판매 매출과 별도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구독 기반 서비스 매출이 하나 더 추가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앞서 2015년 자사 GPU를 활용한 '클라우드 게임' 구독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옴니버스 클라우드 서비스가 '메타버스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기반'이 될 가능성도 있다. 2006년 아마존이 처음 시작한 웹 인프라(laaS) 대여 사업이 현재 전기, 수도에 비유될 정도로 기업 운영에 필수적인 서비스가 됐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용량 그래픽을 다루고 데이터를 원활하게 처리하려면 결국 엔비디아 칩 기반 컴퓨팅 인프라가 필요하다. 엔비디아 칩을 사서 직접 작업 환경을 구축할 수도 있겠지만, 옴니버스 클라우드를 구독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에 옴니버스 클라우드 사용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시장조사업체 브레이니 인사이츠(The Brainy Insights)에 따르면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규모는 2021년 392억5000만 달러에서 2030년 9938억6000만 달러까지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43.2%에 달한다.
GDN은 원활한 콘텐츠 전송을 위해 세계 곳곳에 구축된 서버 시설 'CDN(Content Delivery Network)'에서 따온 용어다. 넷플릭스가 자체 CDN인 '오픈 커넥트'를 전 세계에 설치, 영상 퀄리티와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것과 비슷한 전략을 메타버스 영역에서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GTC 기조연설에서 젠슨 황 CEO가 가장 먼저 소개한 차세대 GPU '지포스 RTX 40 시리즈'도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고성능 하드웨어로 메타버스 작업 환경 구현
엔비디아가 옴니버스 같은 메타버스 소프트웨어 플랫폼, 옴니버스 클라우드 같은 서비스형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력한 성능의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현실 세계의 기계·장비·사물 등을 쌍둥이처럼 똑같이 구현한 것)'을 만들어 건축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하거나, 물리법칙을 따른 가상의 환경에서 자율주행차를 학습시키고, 쌍둥이 가상 공장을 만들어 실제 공장에서 조립 로봇을 원격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날 고급 가상 세계 시뮬레이션을 위해 설계된 RTX 6000, 메타버스용 그래픽 및 시뮬레이션 시스템 '2세대 OVX'도 공개했다.
전기 스포츠카 스타트업 '리막(RIMAC)'은 옴니버스 클라우드를 사용해 설계에서 마케팅에 이르는 자동차 파이프라인을 가동하고 있으며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도 옴니버스 클라우드를 활용하고 있다. 독일 국영 철도 업체 도이치반 역시 엔비디아 옴니버스로 철도 시스템을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 다양한 시뮬레이션에 사용하고 있다.
황 CEO는 "메타버스 구현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가상 세계에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옴니버스에서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테스트하면 현실에서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메타버스의 미래는 분명 놀라울 것"이라고 했다.
드라이브Sim, 현실 데이터로 시뮬레이션
이번 GTC에서 선보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하 AI) 기반 시뮬레이션 도구 '엔비디아 드라이브심(NVIDIA DRIVE Sim)'도 관심을 끌고 있다. 드라이브심은 실제 현실 세계의 교통 데이터를 메타버스로 옮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을 구축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자율주행차 시뮬레이션의 핵심은 AI 운전자가 시뮬레이션을 실제 현실처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뮬레이션 환경은 현실로 착각할 정도로 충분히 세부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한다. 완벽한 훈련을 위해 다양한 사례도 필요하다. 테스트할 필요가 있는 모든 사례를 담을 만큼 시뮬레이션 된 교통체계는 충분히 큰 규모여야 한다.
엔비디아의 드라이브심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환경을 지향한다. AI 기술로 3D 애셋(asset, 사물 이미지), 시나리오(e.g. 보행자 출현) 등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핵심 구성 요소를 자동으로 추출하고, 필요에 따라 조작 가능한 시뮬레이션 장면으로 재구성한다.
특히 실제 현실 세계에서 녹화한 주행 데이터에서 3D 시뮬레이션 환경을 생성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엔비디아 드라이브심을 활용하면 시험용 자율주행차를 실제 도로에서 반복 운행하지 않고도 많은 양의 학습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여러 지역을 거치며 주행 데이터를 모은 뒤 가상 세계에서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빠르고 쉽게 자율주행 AI 훈련해
예컨대 실제 현실 세계 데이터에서 사물 이미지를 수집해 3D 객체로 전환하고 다른 장면에서 재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견인차 이미지를 3D로 구성한 뒤 다른 시뮬레이션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다른 환경, 돌발 요소를 설정한 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보행자가 갑자기 등장하는 등 실제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환경을 가상으로 더욱 쉽게,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현실 데이터로 장면을 만들어 시뮬레이션하기 때문에 현실과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AI 학습 기반으로 작동하는 자율주행 기술은 학습 데이터가 많을수록 정교해지고 고도화되는데, 이런 점 때문에 테슬라가 업계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구축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운전 보조 기능인 '오토파일럿'을 비롯해 현재 베타 테스트 중인 자율주행 기능 'FSD(Full Self-Driving)'까지 실제 테슬라 차량에 적용, 많은 양의 실제 도로 주행 데이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데 엔비디아가 이런 업계 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옴니버스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으로 도로 주행 데이터가 부족했던 기존 완성차 업체가 빠른 속도로 테슬라를 추격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자율주행차 운행 데이터는 테슬라가 훨씬 많이 가지고 있지만, 엔비디아 드라이브심을 이용하면 가상 시뮬레이션에서는 더욱 풍부한 시나리오를 적용할 수 있다. 직접 운행할 필요도 없으니 AI는 쉬지 않고 도로 교통 상황을 학습한다. 이를 이용하면 테슬라가 주행 데이터를 모으는 것보다 더 빠르고 쉽게 AI를 훈련할 수 있다.
완성차 기업에 자율주행 패키지 공급하면…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자율주행 성능을 구현하기 위한 슈퍼컴퓨터 분야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번 GTC에서 차세대 차량 컴퓨터 '드라이브 토르(DRIVE Thor)'를 공개했는데, 이는 테슬라가 개발해 지난해 공개한 슈퍼컴퓨터 '도조(Dojo System)' 및 통합칩(SoC) 'D1 도조칩(D1 Dojo Chip)'에 대응하는 제품이다.연쇄 창업가이자 AI 전문가인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는 이와 관련 "엔비디아가 자율주행 인프라를 다른 자동차 제조사에 공급하기 시작하면 테슬라와의 격차가 현저하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엔비디아가 테슬라급 완성도의 자율주행 패키지를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게 되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올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원익 더밀크 뉴욕플래닛장 wonick@themil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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