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뒤 단일민족국가 불가능… 이민청 세워 세계시민국가 준비해야”
■ 현안 인터뷰 - 문병기 한국이민정책학회 회장
결혼이민여성은 여가부 소관
외국인노동자는 고용부 담당
제각각 관리 컨트롤타워 절실
이민자 가정 30년 뿌리내려야
인도계 총리 배출한 영국처럼 돼
이민 적극 수용이 메가트렌드
다민족 융화 선진국으로 가야
윤석열 정부 초기 거론되던 이민청
조직개편안서 후순위로 밀려나
대통령이 앞장서 정책 주도를
김충남 기자, 정리 = 김무연 기자
“앞으로 50년 뒤에 우리나라가 한민족 단일국가로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민자들과 융화하는 세계 시민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방송통신대에서 만난 문병기(59) 한국이민정책학회 회장(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은 최근 정부 조직 개편안에서 이민청 설립이 뒤로 밀린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민청이 ‘출입국이주관리청’으로 이름이 바뀌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연내 설립 안을 도출해 추진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사실상 추진 동력을 잃은 것으로 문 회장은 봤다.
문 회장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역대 정부의 인구 감소 적응 정책이 실패한 이상,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해 이민을 적극 수용하는 것은 ‘메가 트렌드’라고 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남기 위해서도 이민자 포용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부처별로 흩어진 이민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이민청 설립이 시급한 과제라고 문 회장은 강조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국가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도적인 역할도 당부했다.
―우리나라 이민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예를 들면, 결혼 이민 여성은 여성가족부가 담당하고, 고용허가제 등 단기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노동부가 관리한다. 예산도 제각각이다. 여가부는 여성기금을, 고용부는 노동기금을 갖고 있으며 이 중 일부가 이민정책에 사용된다. 각 부처가 운영하는 이민 관련 프로그램도 수백 개에 달한다. 하지만 큰 그림을 갖고 통합적인 정책이 펼쳐지지 못하고 있다. 고용부는 고국으로 돌아갈 단기 외국인 노동자에게만 집중하고, 여가부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뿌리를 내릴 이주 여성 위주로 정책을 짠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으로는 인구 감소, 노동력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민청은 왜 필요한가.
“한마디로 우리나라 이민자를 총괄 관리하고 이민정책을 통합해 추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해결을 위해 여성의 출산율과 사회 진출을 늘리는 정책을 썼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제는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이민정책은 우리 사회와 경제에 도움이 되는 똑똑한 사람을 들여오자는 취지다. 이민 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비전이나 목표를 갖고 이를 뒷받침할 집행력과 예산을 가진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이민청은 ‘인구 절벽’이라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인가.
“단기적으로 보자면 인구 소멸에 대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50∼100년 뒤 한민족 단일국가로서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한국을 자기 나라로 생각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와 이민자가 섞인 세계 시민국가가 돼야 선진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지금 태어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30년이 지났을 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50년 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움직일 기구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이민청은 교육부나 기획재정부처럼 부총리가 임명되는 부처급으로 커져야 한다.”
―불법체류자 문제 해결도 이민청의 과제 중 하나인가.
“그렇다. 불법체류자 문제 해결은 매우 어렵다. 올해 5월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01만2862명(90일 미만 단기체류자 42만여 명)인데 이 중 20%인 약 40만 명이 불법체류자다. 지난 2010년 불법체류자를 한시적으로 합법화하고 자진 신고를 독려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유예 기간 동안 불법체류자도 영주 자격증 취득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기업체도 정주를 돕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법체류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기도 어렵다. 농가나 영세기업체들은 이들이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다. 인권단체에서도 불법체류자를 강하게 관리하면 인권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업가나 농민들의 이해관계와 인권 문제가 묘하게 결합돼 있다. 결국 이민청이 통합 관리해서 내보낼 사람은 내보내고 남길 사람은 남겨야 한다.”
―이민청이 설립되면 동남아 등지에서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만 대거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외국인 노동자를 일단 싸게 써먹자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함부로 싼 노동자를 들여오면 불법 이민으로 이어지고 불법체류자 양산밖에 되지 않는다. 이민청은 출입국 관리를 철저히 해 우수 인재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9년 정도 우리나라에 살면서 적응하면, 정주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가자는 거다.”
―그렇다면 이민청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영주 이민을 활성화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하나.
“우리 사회가 인도계 리시 수낵 총리를 배출한 영국처럼 바뀌려면 이민자 가정이 30년 이상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그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단기 이주 노동자는 최장 9년까지만 머무를 수 있다. 이 기간 한국에 적응을 마친 외국인은 업무 태도나 실적 등 별도의 심사를 거쳐 6개월 내 재입국이 가능하게 하자는 이야기가 학계에서 나온다.”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법무부에 이민자 조기 적응 프로그램과 사회 통합 프로그램이 있다. 2∼3시간짜리 간단한 교육으로 우리나라 법제나 기초 생활을 위한 상식을 가르쳐주는데 거의 소양교육 수준이다. 프로그램 이수 여부도 대부분 선택사항이고 제한된 인원에게만 의무적으로 시행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입국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교육한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사실상 입국 전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이 프로그램들은 사실 영주 자격이나 국적 취득을 위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데, 프로그램이 좋아서 듣는 사례는 거의 없다. 아직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적응 및 통합되는 데 도움을 주는 수준은 못 된다.”
―이 정부 초기 이민청 설립이 논의되다가 정부 조직 개편안에서는 출입국이주관리청으로 명칭이 변경됐는데, 왜 그런가.
“이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반대 목소리 때문인 것 같다. 크게 두 부류다. 첫째, 한민족의 순수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고 둘째,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길 수도 있는,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다. 이런 인식 때문에 이주 ‘관리’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관리라고 하면 왠지 틀어쥐고 제한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민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보니 이민청이란 명칭을 뺀 듯하다. 이민이란 국경을 넘어 해외로 이주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붙박이로 사는 사람을 이민자로 해석한다. 이민자가 한국 땅에 정착하면서 일자리 등을 뺏는다고 생각하니까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이주자 체류를 관리하는 겁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 같다.”
―보수층에서 이민을 반대하고 있다.
“보수라고 해도 결이 다르다. 예를 들어, 기업가는 돈만 벌어다 준다면 외국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민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나 광역시만 하더라도 외국인들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 자주 접하다 보니 거부감이 덜하다. 하지만 낙후된 지방으로 갈수록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보니 거부감이 크다.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소득도 적고 학력도 낮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보니 더욱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우리 국민 사이에 이민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부족한 거 같다.
“아직 이민에 대한 어젠다 설정이 안 됐다. 인구 절벽이 심각해 이민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는데, 그러면 이민자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냐, 세금을 더 낼 수 있냐 이렇게 물으면 부정적으로 바뀐다. 그동안 설문조사를 분석해 보면, 이민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80%가 동의한다고 대답하지만, 만약 도시나 마을에서 같이 살 수 있냐고 물어보면 긍정 대답은 50%로 떨어진다. 여기에 사회 통합 등에 예산이 필요해 조세 부담을 늘리자고 하면 긍정 응답은 30%까지 낮아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장기 비전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국가의 대표로서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서구처럼 국민이 다양한 토론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면 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구조보다는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표를 의식해서는 안 된다.”
―이민청 설립이나 관련 제도 완비를 위한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제가 수익자 부담 원칙에 기반한 이민사회통합기금 설치를 제안한 적이 있다. 기금의 재원은 외국인들의 체류 갱신 수수료, 영주권을 따기 위한 한국어능력시험 수수료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이런 수수료만 매년 500억 원 이상이다. 이 돈을 사회통합기금으로 돌리고, 타 부서의 이민 관련 기금을 모으면 1년에 2000억∼30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수 있어 추가적인 국민 부담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 이민자 전담부서 ‘국 → 청’ 승격… 중국, 영주자격 완화로 해외인재 영입
■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사례
문병기 한국이민정책학회장은 이민청을 설립하는 데 참고할 만한 사례로 이웃 국가인 일본과 중국을 꼽았다. 두 나라 모두 이민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 이상으로 보수적이지만, 인구 절벽에 따른 이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한발 앞서 이민 관련 부서를 확대하고 권한을 강화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은 지난 2019년 4월부터 법무성 산하에 외국인 담당 기관인 출입국재류관리청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출입국재류관리청은 외국인의 체류 기간을 갱신하고 영주 심사나 밀입국자 및 불법체류자 단속 등 일본 내 이민자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담당한다. 이후 외국인 노동자 입국을 늘리기 위한 새 ‘출입국 관리 및 난민 인정법’(입관법)을 시행함에 따라 외국인 유입 증가에 대비해 조직을 국(局)에서 청(廳) 단위 기구로 격상했다. 인력도 4870명 수준에서 5432명으로 10% 이상 증원했다.
중국은 2018년 출입국 관리 부서를 통합한 국가이민관리국을 신설했다. 공안부 산하 기관인 국가이민관리국은 우리나라나 일본의 이민 정책 부서와 달리 국경 통제 및 치안 유지 업무도 담당해 권한이 더 크다. 중국 또한 출산율 저하와 노령화 가속으로 노동인구가 급감함에 따라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유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이민 전담 부서를 설립했다. 실제로 중국의 1980년대 후반 2.6명 수준이던 중국의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 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21년 1.15명까지 감소했다. 이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5년 10월 개혁공작회의에서 해외 인재 영입을 강조하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주 자격을 완화한 바 있다.
문 회장은 “이민에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주변국들조차 인구 절벽이란 난제 앞에서 이민정책을 전담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었다”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의 이민정책도 최소한 이들 수준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 문병기 회장은
△1963년 대구 출생 △1986년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8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행정학 박사 △2014년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재정분석위원 △2020년 한국지방자치학회장 △2022년 한국이민정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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