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해소 vs 암 유발 위험 ‘매운 맛의 두 얼굴’ … “적정량 넘어선 약은 독”
■ 살아있는 과학 - 매운맛서 배우는 ‘맛의 중용’
설탕 · 소금 · 알코올 · 카페인 등
과다 섭취하면 면역체계 깨져
인간의 혀는 미뢰(맛돌기)를 통해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을 느낀다. 흔히 오미(五味)로 부르는 다섯 가지 맛이다. 원래 네 가지 맛이었으나 일본에서 우마미(umami·감칠맛)를 등록해 오미가 되었다. 음식이 입안으로 들어오면 미뢰에 있는 G 단백질 결합 수용체(GPCR)가 음식의 분자와 결합해 맛을 느끼게 된다. 미국 의대 교수 브라이언 코빌카와 로버트 레프코위츠가 GPCR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밝혀내 2012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매운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는 없다. 매운맛을 유발하는 캡사이신 분자는 GPCR가 감지하지 못한다. 캡사이신은 맛이 아니라 고온과 통증이기 때문이다. 혀의 세포에는 온도를 감지하면 활성화되는 단백질 수용체가 있는데 여기에 달라붙는다. 항온 동물은 신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온도별로 여러 가지 수용체를 작동하고 있다. 고추 속 캡사이신은 43도 이상의 고온을 감지하는 TRPV1 수용체를 자극한다. 캡사이신이 입안에 들어와 TRPV1과 결합하면 이온 통로가 열리고 여기서 칼슘 이온이 방출돼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도 활성화된다. 뇌는 고추의 뜨거운 온도를 매운맛으로 착각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나고 차가운 음료를 찾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캡사이신이 통증을 유발하면 몸에서는 진통 효과를 내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불닭, 불족발을 찾는 이들이 매운맛을 먹고 상쾌함을 느끼는 이유다. 경마 대회에서는 한때 기록 향상을 위해 말에게 캡사이신을 먹이기도 했다.
국제승마연맹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캡사이신을 금지 약물로 지정했다.
매운맛의 세기는 스코빌 지수(Scoville Heat Unit·SHU)로 표시한다. 미국 화학자 윌버 스코빌이 1912년 제안한 방법이다. 스코빌 지수가 높을수록 매운맛이 강하다. 고추는 0, 피망은 1이고 한국의 청양고추는 1만에 달한다. 하지만 세계 10위권 안에도 못 든다. 인도 고추 품종인 부트 졸로키아는 100만, 중국의 고추 품종인 캐롤라이나 리퍼는 220만이나 된다. 세계적으로 고추를 양념으로 사용하는 전통은 50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고유 음식인 김치는 원래 소금에 절인 채소로서, 흰 김치였으나 17세기 고추가 수입되면서 빨간 김치로 재탄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매운맛에 강하다는 전통은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캡사이신, 즉 매운맛의 생리적 효능에 대해 의학계는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갈린다.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 피부 미용,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신경통, 관절염 등의 예방에 좋다는 연구가 있다. 연세대 의대 연구팀은 2017년 캡사이신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된 위 점막의 염증을 억제해준다고 발표했다. 반면, 울산대 의대와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은 2014년 매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암세포를 제거하는 면역세포 NK세포의 기능을 저하시켜 암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정반대 결론을 내놓았다.
중세 시대 전설의 연금술사로서 독성학의 대가로 불리던 필리푸스 파라켈수스는 “세상의 모든 외부 물질은 모두 독이다. 다만, 그 분량이 문제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흔히 독과 약은 같은 성분에서 유래한 반대쪽 거울 효과라고 말한다. 발효와 부패가 모두 미생물에 의한 화학적 변화이지만 인간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의 가치 판단에 따라 정반대 이름이 붙은 것과 비슷하다.
특히 적정량을 넘어서는 약은 독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가령, 인체에 필수적인 소금과 설탕도 과다 섭취를 하는 순간 독으로 변해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공격한다. 알코올과 니코틴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분량, 중용의 미덕은 매운맛뿐 아니라 단맛, 짠맛 등 모든 맛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법칙이다. 심지어 몸에 안 좋다고 알려진 콜레스테롤, 카페인 등의 성분도 적절하게 활용하면 약처럼 이롭지만 과다한 남용은 독으로 작용해 건강을 해치는 법이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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