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형 스케이터' 이시형 "갈라쇼 아이디어? 김연아 선배님한테 영향 받았죠"
[스포티비뉴스=인천국제공항, 조영준 기자] "스케이트 타는 게 정말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베이징 올림픽도 다녀왔는데 (제 스케이트 인생에) 큰 한 틀이라고 생각해요. 점프가 안 되거나 기량 저하가 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싶어요.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다음 밀라노 올림픽까지도 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 남자 피겨 스케이팅의 '맏형' 이시형(22, 고려대)은 보기 드문 '대기만성형 스케이터'다. 주니어 시절, 국제 대회에는 꾸준하게 출전했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옹골차게 도전한 땀과 눈물은 결실로 이어졌다. 스케이트 타는 것이 마냥 좋아 계속 선수로 뛴 그는 어느덧 올림픽 무대를 경험했고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 4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이시형은 지난 6일(한국시간) 프랑스 앙제에서 막을 내린 2022~2023 시즌 ISU 피겨 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 그랑프리 데 프랑스 남자 싱글에서 총점 242.62점으로 4위에 올랐다.
이시형의 프리스케이팅 종전 개인 최고 점수는 149.19점(2021년 네벨혼 트로피)이었다. 이번 대회서 이 기록을 무려 16.89점이나 경신한 이시형은 총점도 종전 개인 최고 점수인 235.71점(2022년 네벨혼 트로피)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는 처음 출전한 ISU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서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멈추지 않는 상승세를 보이며 세계 무대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시형은 지난 9월 ISU 챌린저 대회 네벨혼 트로피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시니어 데뷔 6시즌 만에 처음 국제 대회 시상대에 올랐다. 그동안 한국 피겨 선수들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10대 후반 혹은 스무 살을 넘으면 은퇴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시형은 한국 나이로 23세인 현재 여전히 성장 중이다. 오랜 세월 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온 결실을 뒤늦게 보상받고 있다. 올해 그는 베이징 올림픽 무대에 섰고 ISU 공인 대회서 메달을 거머쥐었다. 또한 처음 출전한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개인 최고 점수를 갈아치웠다.
이시형은 "(메달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기다려 온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나름 좋은 결과를 얻어 만족한다. 앞으로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메달을 딸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웃으며 말했다.
이시형은 프리스케이팅에서만 2위에 올랐다. 또한 기술점수(TES)에서 90점이 넘는 성과도 거뒀다. 그는 "90점을 넘을 줄을 몰랐다. 그동안 80점도 넘지 못했는데 눈앞에 90점이 넘은 것을 보고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번 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그는 쿼드러플(4회전) 토루프 점프를 깨끗하게 뛰었다. 애초 그는 쿼드러플 살코도 구사했다. 그러나 스케이트 부츠 문제로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는 쿼드러플 토루프만 시도했다.
그는 "쿼드러플 살코를 (토루프보다) 먼저 성공했고 편했다. 그런데 계속 신었던 스케이트 부츠가 단종이 되면서 지난해 네벨혼 대회 때부터 신었던 스케이트를 계속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래 된) 부츠 영향에 대해 생각했는데 자세도 망가지고 자신감도 떨어져서 토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만 가지고 왔다"고 덧붙였다.
에지 점프(스케이트 날의 양쪽 단면인 에지를 사용하는 점프)인 살코는 토 계열 점프(스케이트 날의 토 부분을 사용하는 점프)인 토루프보다 힘이 많이 들어간다. 힘으로 인한 부츠 문제에 신경을 썼던 이시형은 살코 대신 비교적 부츠에 무리가 덜 가는 토루프만 4회전으로 구사했다.
이시형은 최근 새로운 부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그랑프리 때 새 부츠를 받았는데 적응한 뒤 쿼드러플 살코도 다시 시도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비 시즌 간 열심히 준비했다고 밝힌 이시형은 "진천선수촌 합숙 훈련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올해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들은 처음으로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한 달간 합숙 훈련했다. 피겨 선수들은 개인 종목 특성상 선수촌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8월부터 9월 초까지 약 한 달간 훈련하며 새로운 체험을 했다.
이시형은 "한 달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했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종목 특성상 개인 훈련이 많았다. 그런데 동료들과 협동심과 팀 워크도 배웠다"고 덧붙였다.
선수촌의 특성상 매일 체조를 시작하고 오전 훈련에 임했다. 이시형은 "김예림(19, 단국대) 선수도 올 시즌 실력이 더 향상된 거 같은데 아침부터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며 동료인 김예림을 칭찬했다.
이어 "매일 아침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였는데 김예림 선수와는 아침 운동 메이트였다"며 새로운 환경에서 훈련한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종목 선수들의 훈련에 자극까지 받았다고 밝힌 이시형은 "단체 종목 선수들이 많아 우리와는 훈련이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그곳에서는 온전하게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그동안 이동 거리가 멀었는데 선수촌은 모든 시설이 밀집되어 그런 점이 좋았다. 올 시즌 피겨 국대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는데 이런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그랑프리 3차 대회를 마친 뒤 이 대회에 출전한 이시형과 김예림 그리고 이해인(17, 세화여고)은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시형은 김예림에게 꽃을 건네받은 뒤 이해인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시형은 "김연아 선배님의 2013년 갈라 프로그램인 'All of me'를 많이 좋아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All of me를 오마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코치 선생님이 동료 선수에게 꽃을 주는 것을 추천하셨다. 원래는 마지막에 김예림 선수에게 꽃을 주는 거였다. 그런데 김예림 선수는 턱시도를 입고 있었고 이해인 선수는 예쁜 의상을 입고 있었다. 김예림 선수는 꽃을 이해인 선수에게 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결국 세 명이 의견을 모아 이런 갈라 프로그램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어느덧 '대기만성형 스케이터'가 된 이시형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까지 뛸 의지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밀라노 올림픽까지 꼭 가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점프가 안 되고 기량 저하가 오기전까지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며 열정을 드러냈다.
이시형은 다음달 열리는 전국랭킹전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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