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정현종 “여기저기 다 끝이지만,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하지만 정갈한 음식과 잔잔한 추억을 선사하던 식당은 2년 전 팬데믹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어느 날, 문뜩 상상을 했다. 셰프 김씨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상상을. 늘 식사만 하고 가시는데 무슨 말씀도 좀 듣고 싶군요. 제가 밥 먹고 앉아 있는 모습보다 더 나은 무슨 말은 없습니다, 라고 화답하는 자신의 모습도. 그리하여 시 한편이 걸어 나왔다.
“내 단골 음식점의 셰프/ 김인숙 씨가 나더러/ 늘 식사만 하고 가시는데/ 무슨 말씀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시애호가입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밥 먹고 앉아 있는 모습보다 더 나은/ 무슨 말은 없습니다.”(「무슨 말씀」 전문)
셰프가 단골 시인에게 무슨 말씀이라도 들려달라고 묻고 이에 말없이 밥 먹는 모습으로 화답하는 시인의 모습은 이심전심으로 진리를 전하는 선불교와 닮아 있다. 예컨대, 임제 선사가 제자의 멱살을 부여잡고 뺨을 후려쳐서 순식간에 진리를 보게 한 다음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니까 어느 날 임제의 한 상좌가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임제는 선상에 내려서더니 갑자기 한 손으로 상좌의 멱살을 잡고 다른 손으로 뺨을 후려치며 떠밀쳐 버렸다. 상좌는 벼락같은 사태에 망연자실했다. 이때 옆에 있던 승려가 말했다. 상좌는 어찌 스승님에게 예배하지 않으시오? 상좌는 임제에게 절을 하다가 홀연히 깨달았다. 벼락같은 사태에 모든 흐름이 순간 끊기고 만기가 사라진 진리의 순간을....
「방문객」과 「아침」, 「섬」,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등 많은 애송시를 창작한 정현종 시인이 「무슨 말씀」을 비롯해 65편의 시를 담은 신작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전작 『그림자에 불타다』 이후 7년 만에 내놓는 신작 시집으로, 그의 열한 번째 시집. 이번 시집에도 정 시인 특유의 깃털처럼 가볍고 하늘처럼 산뜻한 언어의 시, 몇 줄만으로 충분히 충만 되는 시, 생생하게 통각 되는 시, 단번에 읽히면서 통찰되는 시가 가득하다.
등단 60주년을 몇 해 앞둔 팔순의 노 시인은 왜 신작 시집을 내야 했을까. 그는 이번 시집에서 무엇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전히 “지칠 줄 모르는 창조의 에너지”(문학평론가 이광호)를 발산하며 시작에 매진 중인 정 시인을 지난달 25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흰 눈이 내린 듯한 백발은 물론 유달리 형형한 눈동자를 머금은 큰 눈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수묵화 같다’는 평에 고개를 끄덕여졌지만, 그럼에도 큰 눈으로 눈길을 보낼 때면 순간 제대로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하, 뭐, 어.... 인터뷰 도중 그의 입에서 의성어가 자주 튀어 나왔고, 뒤이어 한숨이 이어지곤 했다.
“쓴 그대로다. 전혀 어려울 게 없는 작품이다. 식당은 코로나 때문에 2년 전 문을 닫았다. 한 10년쯤 다녔는데,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편해서 친구나 후배들을 데리고 갔다. (실제 시와 같은 대화와 소통이 있었던 것인가) 진짜로 저렇게 했는지, 아니면 시만 그렇게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실제 그런 대화가 오고간 게 아니라 시만 그렇게 썼을 거다.”
시 「끝」 역시 세상은 무이자 공으로 결국 마음 하나뿐이라는 불교의 지혜를 담은 작품처럼 읽힐 수도 있겠다. “끝이라고 하지만/ 언제가 끝인가요./ 끝이라고 하지만/ 어디가 끝인가요./ 이때 저때가 다 끝이고/ 여기저기가 다 끝인 줄 아오나,/ 그렇기는 하오나,/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요,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끝」 전문)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이 오묘한 것 같다.
“특별히 할 얘기가 없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제가 지금 80세가 넘었다. 나이 드는 것과 상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짐작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시 「있기도 전에 사라지는구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과 그 덧없음에 대한 노래다. “미래에 있을 일이/ 어느덧 지나가고 지나가고,/ 그 일이 오기도 전에/ 지나가고 지나가고,/ 뚜렷하고 아득하다/ 그 견딜 수 없는 환영들!/ 있기도 전에 사라지는구나/ 있기도 전에 사라지는구나!”(「있기도 전에 사라지는구나」 전문)
―생각이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데.
“그냥 읽고 느끼는 대로 느끼면 된다. 불교나 성경 「전도서」(제12장 8절의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처럼 모든 종교가 인생무상이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인생을 살면서 조금씩만 생각하면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 참 빨리 지나간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시 「놀다」는 사람의 감정이나 감수성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그것을 즐기는 어떤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괴로움을 견디느라 괴로움과 놀고/ 슬픔을 견디느라 슬픔과 놀고/ 그러다가/ 노는 것도 싫어지면/ 싫증하고 놀고......”(「놀다」 전문)
―짧지만 깊은 삶의 통찰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문득 그냥 써져서 쓴 시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것들, 예를 들면 괴롭고, 슬프고, 싫은 것들도 그냥 그것과 놀아야 되지 않느냐. 그래야 이길 수 있고, 버틸 수 있으며, 극복할 수 있다. 너무 많이 알려져 진부한 말처럼 됐지만,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도 있다.”
시 「포옹」은 공감과 사랑의 포옹만이 진실과 인간마저 잃게 만드는 극단적 갈등 시대를 넘어서게 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모든 게 싹튼다/ 포옹 속에서./ 부화하고/ 태어난다/ 포옹 속에서./ 피어나고/ 날고/ 흐른다/ 포옹 속에서./ (포옹 이외에 이념은 없고/ 포옹 이외에 종교가 없다)/ 그리하여/ 지구는 꽃핀다/ 포옹 속에서.”(「포옹」 전문)
―포옹이 이 세상의 갈등과 혼란을 넘어설 수 있을까.
“모든 생명은 포옹이나 사랑 속에서 싹트고 태어나는데, 그냥 느낌대로 쓴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고 모든 생명이 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태어나니까.”
「그리운 시장기」는 어느 순간 잃어버린 시장기를 통해 영양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을 걱정해야 하는 현대를 꼬집는 시편이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배가 고팠고, 그래서/ 음식도 맛있었는데,/ 요새는 배고플 새가 없으니/ 이게 실은 문제이다.// 배도 안 고픈데/ 세끼를 먹겠다고 먹으니/ 기분이 상당히 나쁘다.// 시장기를 느낄 때 우리는/ 얼마나 신선한가!/ 시장기를 느끼는 순간/ 살맛이 나고,/ 텅 빈 위장이/ 세계도 텅 비게 하여/ 세계는 얼마나 광활해지는가!/ 즉시 어디에라도 갈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모험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며/ 거두절미, 신선한 기운이 샘솟는다./ 좀 굶어야겠다,/ 그리운 시장기여.”(「그리운 시장기」 전문)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언젠가 지방에서 제가 상을 받는 시상식이 열렸는데, 저녁을 늦게 먹게 됐다. 저녁 시간이 지나니까 배가 아주 고팠다. 근데, 그 시장기가 신선하고 좋았다. 시장기를 느낀 게 오래간만이었다. 지금 우리는 너무 자주, 많이 먹으면서 비만도 많아졌다. 공복 상태가 얼마나 신선한지는 굶어봐야 안다. 요즘 가끔 한 끼 정도 굶는 것도 좋다고 하지 않느냐. 조금 진부할 수도 있지만, 종교에서 말하는 비우는 것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도 있고, 물질적 풍요와 연관시켜 말할 수도 있다. 좀 덜 갖고 덜 먹는, 더가 아닌 덜이 주는 건강함, 신선한 느낌,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시 「공터―시 이야기」는 시론이기도 하고, 모든 생명의 원리를 노래한 작품이기도 하다. “시는 처음부터/ 공터이다./ 시는 끝까지/ 공터이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아무것도 없이 끝난다./ (생명과도 같이)/ 시는 그렇다.”(「공터―시 이야기」 전문)
―왜 시는 공터인가.
“소설과 비교하면, 소설은 말을 많이 하지만 시는 말을 적게 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와서 무로 다시 돌아가는 생명과 마찬가지다. 생명 과정과 시가 거의 비슷한 면이 있다는 얘기를 하려 했던 것 같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산문 소설이나 다른 예술에 비해 시는 물질적 보상이 거의 없다. 여러모로 시와 공터라는 이미지가 맞다. 시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산이고, 시를 통해서 자유로운 어떤 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게 시의 일이다.”
시 「배우를 기리는 노래」는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만 하는 배우의 본질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렇게 ‘남’을 살다니!/ ‘나’를 한껏 지워야/ 자기가 뚜렷하고/ 나를 찾는 길은/ 남을 녹여내는 일,// 남을 창조하기 위해/ 나는 있느니./ 남이 곧 나,/ 남을 잘 살아야/ 내가 잘 사는 것./ 내가 곧 만인이니/ 만인의 목소리/ 만인의 그림자에 울고 있는 사람!”(「배우를 기리는 노래」 전문)
―배우의 본질을 제대로 묘파한 것 같다.
“한 7, 8년 전쯤 오래간만에 대학로에서 혼자 연극을 봤다. 지금은 연극 제목도, 줄거리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연극을 보고 느낌이 있다가 시를 쓰게 됐다. 배우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일종의 배우론이라 할 수 있다. 배우들이 시를 읽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 대로 그린 것이다.”
세 살 무렵 서울에서 경기도 고양으로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간 학생 정현종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양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이때 산천초목을 돌아다니며 자연과 온갖 생명을 만끽했다. 이는 나중에 그의 시 원형질이나 모태, 어떤 시적인 에너지를 형성했다. 시집 뒤에 실린 산문 「시를 찾아서」에서, 그는 시 작품이 갖고 있는 생명력은 오직 자연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자연체험이 중요하다며 어린 시절 자연 체험과 살아 있는 것들과의 살섞음을 ‘촉각의 지층’, ‘감각의 고고학적 생물학적 깊이’라고 명명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그 밤낮 없는 자연의 풍부함은 그 시절의 가난을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들면서 계속 넘쳐흐르는 풍요의 샘과도 같습니다. 자연체험, 살아 있는 것들과의 살섞음이 말하자면 내 촉각의 지층이요, 감각의 고고학적 생물학적 깊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91-92쪽)
서울로 돌아온 그는 학창 시절 책을 많이 읽었다.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 책자나 월간지 『사상계』뿐만 아니라 문학책과 시집도 제법 읽었다. 처음에는 한국시보다는 번역된 영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바이런과 셸리 등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집을 사서 읽었다. 이 시기 음악과 발레에도 심취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연세대 철학과에 진학한 뒤엔 대학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책을 읽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시를 쓰겠다는 무슨 확고한 의지나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저절로 시를 쓰게 됐지요. 대학신문 『연세춘추』에 시를 쓰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시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박두진 시인이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쳤는데, 제가 시를 지어 찾아가니 추천해 줬어요. 박 시인은 그때 『현대문학』의 추천 위원이었는데, 그의 추천을 받아서 시를 쓰게 된 것이죠.(대학신문에 발표한 그의 시가 박두진 시인의 맘에 들어 『현대문학』 추천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통적인 서정시를 넘어서려 했던 초기에는 사물의 존재 의미를 파헤치는 관념적인 경향도 있었지만, 시간과 함께 경험과 사유가 깊어가면서 자연의 경이와 생명 현상의 환희,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 사회와의 연대로 지평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특히 시집 『광휘의 속삭임』(2008, 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방문객」은 그의 후기시적 특징을 잘 드러내며 국민 애송시가 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방문객」 전문)
―「방문객」은 거의 국민 애송시가 됐는데.
“정년퇴직한 뒤 집 근처에 작업실을 하나 얻었는데, 사람이 온다고 하면 작업실로 오라고 해서 만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시가 나왔다. 힘들이지 않고 썼다. 그렇게 많은 사람도 아니고, 아주 가끔 왔다 가곤 했다.”
등단 이후 황동규와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만들고 활동하기도 했다. 해외 시도 꾸준히 공부했는데, T.S. 엘리어트처럼 주지적인 영미시보다 온몸으로 부딪치며 나아가는 스페인어권 시가 더 잘 맞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스페인어 시들은 영미시에서 느낄 수 없는 정열적이고 ‘살과 피’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어 시들이 더 잘 맞았지요. 특히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1898―1936)의 시를 좋아해서 나중에 두 사람의 시집을 여러 권 번역 출간했어요.”
―시 쓰기의 전략이나 원칙, 방법이 있다면.
“메모해 놨다가 쓸 때도 있고, 그냥 문뜩 시가 나올 때도 있고, 여러 가지다. 여행을 간다든지 하면 메모를 좀 하기도 한다. 메모보다는 아무래도 시가 떠올라서 쓰는 게 많은 것 같다. 보통 책상에 항상 A4 용지를 놔두고 시가 나오면 종이에 연필로 쓰고, 다시 보강하고 고친다.완성이 되면 잡지사에 보낸다.”(그는 시와 예술은 “삶을 견디게 한다”며 “시는 필경 영혼의 강장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적 시간은 ‘항상 태초’, 시적 언어는 ‘빛―언어’라며 시를 “깃―언어”라고 불렀다.)
―요즘 한국시 경향을 어떻게 보는지.
“드물게 좋은 시도 있지만, 대체로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무슨 잠꼬대 같은 느낌도 들고, 에이아이가 썼나 하는 느낌도 있다. (왜?) 말이 많아 길고, 어렵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쓰는 것 같더라.”
신태양사·동서춘추 등을 거쳐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신문과 중앙일보 기자로 일한 그는 1977년부터 서울예전 교수를, 1982년부터 2005년까지 연세대 국문과 교수를 차례로 역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철역 쪽으로 하얀 광휘를 이고서 걸어가는 노 시인을 바라봤다. 이미 오래 전 정년퇴직한 뒤라 한없이 자유롭다고 말했는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시계처럼 살면서도 세상 이치에 달관했던 독일 철학자가.... 새벽 5시쯤 일어나고, 괴로움이 닥쳐오면 괴로움과 놀고, 매일 아침 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한 중앙박물관을 산책하고, 노는 게 싫증나면 싫증하고도 놀고,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산책을 다녀오고, 슬픔이 몰려오면 슬픔과 놀고, 밤 9시쯤엔 스르르 눈을 감고....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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