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이태원 골목길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2022. 11. 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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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일 년에 한 번쯤은 서울의 골목길을 걷는다. 이태원서 시작해 해방촌을 경유해서 용산고로 내려온다. 늘 시작은 이태원역 1번 출구다. 1번 출구를 나와 해밀턴호텔에서 우회전해 골목을 지나면 세계음식거리가 나온다. 정통 인도식 카레의 매콤한 향, 발칸반도의 꼬치구이 연기, 따봉의 나라 브라질식 마늘 스테이크의 압도적인 양으로 이국적 감성이 제대로 살아난다.

문화와 사람의 이방 공동체인 이태원은 아픈 역사를 많이 안고 있다. 임오군란 진압을 위해 청나라군대 주둔과, 일본군 조선사령부 주둔, 광복 후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그 후 이태원은 미군기지의 배후지로서 미군을 위한 클럽과 기지촌 동네가 형성됐고, 몰래 흘러나온 미제물품은 우리에게 고가의 명품이었다.

이태원은 해밀턴호텔과 제일기획을 경계로 남서와 동북의 차이가 크다. 남서는 재래시장, 서민주택,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영역이며, 동북은 고급주택과 명품가게들이 즐비해 이른바 한남동 고급 문화권의 영역이다.

이태원은 홍대 앞, 강남의 서울 3대 클럽의 발상지며, 잉글랜드 펍, 수제맥주, 게이바, 트렌스젠더 등의 문화를 이끌어 왔다. 요즘은 흔하게 보는 '빅사이즈'의 의류 판매도 이태원이 시작이다. 그야말로 작은 지구촌인 셈이다. 2년 전 이태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의 인기는 대단했었고, 젊은이들의 이태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팬덤들의 촬영지 방문은 성지순례였다.

이태원은 모든 것이 다양하다. 그 다양함을 참을 수 없어 건축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 해밀턴호텔의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제니타스' 건물이다. 2017년 완공된 지상 7층 건물은 색깔부터가 범상치 않다. 진한 분홍색에 외관이 매우 불규칙하다. 다양한 크기의 창문과 알루미늄 패널은 건물 외관의 색을 수시로 변화시킨다. 사람이 보는 위치와 태양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연출한다. 진한 분홍색이 자주색으로 진녹색으로도 변한다. 다양하고 불규칙한 창문은 획일성과 정형성을 거부하고 위치와 크기도 이태원의 다양성을 녹여 넣었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독특한 외관에도, 그것도 대로변임에도 불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만큼 주변에 잘 녹아 있다. 신축건물임에도 오래된 건물인 마냥 익숙하게 들어서 있다.

제니타스는 이태원의 상반된 문화와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었다. 이태원에는 제니타스 외에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리움미술관', '한남 더힐'을 비롯해 유명 재벌의 고급주택들도 이곳에 있다. 이태원은 골목골목 켜켜이 이국적인 숨결이 쌓여있고, 빈자와 부자가 공존하고 다양한 문화의 멜팅 포트(Melting pot)는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다.

얼마 전 이곳에서 말도 안 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해밀턴호텔 옆 골목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사고를 당했다. 156명에 달하는 희생자들의 갖가지 사연은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정치적 불안정과 약한 국력으로 외세의 침약을 이끈 선조들을 우리는 얼마나 탓했나. 그런 우리는 스스로 이태원에 또 다른 아픈 역사를 새겼다. 전 세계에서 공공과 개인의 정보화가 가장 앞선 나라에서 세대를 초월한 무관심과 무사안일은 이런 참사를 초래했다.

세월호의 트라우마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세월호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고, 다만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슬퍼만 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1월 29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돼 온 나라가 산업재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기에 어처구니없는 사고다.

미국의 하인리히(Heinrich)가 제시한 안전과 관련한 도미노이론이 있다. 재해는 도미노가 붕괴하는 것처럼 발생하는데, 그중 중간단계 도미노에 해당하는 사람의 불안전한 행동과 사물의 불안전한 상태를 제거하면 그 다음 단계인 사고와 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전에 좁은 골목길을 초래했던 불법증축건축물을 제거하고, 불안전한 군집 보행을 분산시키는 노력 등이 있었다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거다.

늘 사고 후 사후약방문이 되지만 시민 한명 한명의 안전의식, 집단의 안전의식,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의 안전의식이 새로워져야 한다. 이태원의 골목길은 이제 큰 상처로 남았다. 힘들지만 이 상처를 극복하고 이태원 참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래야 같은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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