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속옷..두 여자’ 감독 “내 인생의 화두는 ‘관계’”[인터뷰]
대담하고도 집요한, 실력파 신예 감독의 등장이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로 영화계 파란을 일으킨, 김세인 감독이다.
제목부터 강렬한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는 서로에게 이해와 사랑을 원했던 모녀가 서로에게서 독립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낸 드라마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김세인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며 “평소 완벽하지 않은 평범한 엉성함을 지닌 이들이 여러 사건에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특히 내 인생의 화두는 언제나 ‘관계’였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첫 장편 영화 역시 그 맥락에서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다투던 중, 마트 주차장에서 엄마 ‘수경’이 탄 차가 딸 ‘이정’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수경’은 급발진을 주장하지만 ‘이정’은 고의라고 확신한다. 평소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이정’은 급기야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하고, ‘수경’은 그런 딸에게 무척이나 서운하다. 아주 내밀한 속옷마저 공유할 만큼 가까운듯 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그 누구보다도 먼 문제적 모녀다.
딸은 무심한 엄마로부터 마땅히 받았어야 할 마음을 돌려받고자 하고, 엄마는 어린 나이에 딸을 키우기 위해 희생했던 것들을 이해받고 인정받길 원한다. 서로를 온전히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함께하지도 떠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살아가던, 각기 다른 사이즈의 마음 대신 같은 속옷을 입고 지낸 두 여자의 홀로서기 여정이다.
김 감독은 “‘수경’은 잘못이 크다. 가정폭력도 맞고, 양육자로서 무책임한 부분도 많다. 다만 그만큼 이정도 서툴다. 각자의 상처가 깊다. 잘잘못을 떠나 이들 모녀의 깊은 골을 과감없이 보여주고자 했다. 누구도 이런 긴밀한 부분까지 시원하게 터놓고 말하고 보여줄 수 없으니까.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다뤄보고 이를 통해 결국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영화 속 갈등에 놓인 인물들의 관계, 문제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과정을 날것 그대로 리얼하게 보여주되, 각자의 상황을 다각도로 관찰해 균형 있게 다룬다. 복잡한 관계성을 단순하게 뭉뚱그리지 않은 채 꼬일대로 꼬이고 어긋난 관계를 억지로 매듭짓거나 봉합하려 하지 않는다. 갖은 풍파와 시행착오를 겪어내며 저마다 단단해진 인물들의 서사를 겹겹이 쌓아올린다. ‘모녀’ 하면 떠오르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를 밀도 있게 탐구해낸다.
무조건 싫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복잡미묘한 관계의 중심인 ‘모녀’의 이야기를 가져와, 이들에게 학습된 관계의 태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그 방향성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세심하게 들춘다.
김 감독은 “어쩌면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모녀’와 ‘모성’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 속에 여성들을 가둬두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오로지 여성들만이 감당하도록 만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단순히 옳고 그름의 판단에 매몰되지 않고,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생각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답없는 답을 구하는 과정을 함께 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작품 공개 후 배우들의 연기에도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양말복의 연기는 ‘수경’ 그 자체로 모든 순간이 빛났고, 그와 맞서는 임지호도 밀리지 않는다. 분량에 상관 없이 모든 출연 배우들이 고르게 자신의 역할을 탁월하게 해냈다.
김세인 감독은 “모든 장면들이 대체로 감정적으로 굉장히 강렬하다 보니 그걸 촬영 내내 유지하는 게 힘드셨을 거다. 나 또한 어려웠다”며 “최대한 이 작업을 효율적으로 해나가고자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으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뒤죽박죽 되면 감정 연기가 더 힘들 것 같아 촬영 순서에 신경을 많이 썼고,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나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임지호 배우는 눈이 맑고 깊어 많은 것이 담겼어요. 그 안에 담긴 것을 함께 펼쳐보고 싶었죠. 양말복 배우는 평범한 엄마의 모습과는 다른 수경을 ‘엄마’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채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두 배우 모두 기대 이상이었죠. 매순간 놀라웠어요.(웃음)”
관객의 가슴에 가장 큰 울림을 안겼던, 엄마 ‘수경’의 리코더 신도 언급했다. 김 감독은 “이 장면은 롱테이크로 촬영했는데, 처음엔 수경이 연습하는 장면 없이 마지막에 ‘짠’ 완주하는 모습으로 의외성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양말복) 배우 님이 영화 속 수경의 시간 안에서 그렇게 완벽하게 연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녀가 마음을 애써 다스리며 엉성하지만 성실하게 끝까지 부르는 장면으로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촬영하면서, 편집하면서도 그게 맞았다는 걸 몇번이고 느꼈다. 도저히 수경의 연주 신을 중간에 끝낼 수 없었다. 서툴지만 정말 열심히 하는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면을 영화가 닫아버릴 수 없었다. 그 목소리를 절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진심을 관객도 느껴주신 것 같다”며 재차 감동스러워 했다.
“가장 모순을 품고 있는 관계의 끝단은 가족이고, 특히 모녀의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 영화는 그런 모녀의 서사지만, 더 넓게 보면 그저 관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관객들이 영화의 메시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마음을 열고 관람하셨으면 좋겠어요.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으니까요.”
김 감독은 “사람은 어긋나고 실수도 하면서 더 단단해진다고 생각한다”며 “분명하고 옳은 선택만 하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소 엉성한 사람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는 지난해 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5관왕(뉴 커런츠상, 넷팩상, KB 뉴 커런츠 관객상, 왓챠상, 올해의 배우상)을 휩쓸고, 제10회 무주산곡영화제 대상,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부문 대상 수상 등 국내 주요 영화제에서 9관왕에 등극했다.
뿐만 아니라 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24회 우디네 극동영화제 경쟁 섹션 등 최근까지도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 받으며 새로운 K-신드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10일 개봉한다.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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