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 사람들] ⑤"아기가 숨을 쉬지 않아요"…출동했더니 강아지
"구급차 1대뿐 정작 필요한 사람이 이용 못할 수도"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공항에는 소방구조대원들이 24시간 비상대기한다.
소방구조대는 항공기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 뿐만 아니라 공항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응급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한다.
공항 이용객은 물론 상주 직원, 출·도착 항공기 탑승자 등 응급상황에선 누구든 소방구조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급박한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소방구조대를 호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구급차를 택시처럼 쓰는 승객들
"우리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아요!"
몇해 전 제주공항 소방구조대에 다급한 구조 요청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주공항 국내선 도착장에 도착한 승객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보니 아기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위급 상황이었다.
대원들은 즉각 출동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우리 아기'는 사람이 아닌 '강아지'였다.
때에 따라 가족 구성원과 다름없이 소중한 동물일 수 있겠지만 '인명(人命) 구조'를 목적으로 하는 공항 소방구조대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대원들은 인근 동물병원을 수소문해 강아지를 인계했다.
이외에도 다급하게 출동했다가 허탕을 치는 일이 가끔 반복된다.
지난 2013년에는 제주에 관광 온 남성이 한라산 등반을 하다 발목을 접질려 구조 요청을 했다.
당시 해경 헬기가 출동, 남성을 가까스로 구조했지만, 기상 상황이 나빠 병원에 바로 착륙하지 못하고 제주공항에 착륙할 수밖에 없었다.
소방구조대는 미리 대기하다 환자를 구급차로 갈아 태워, 병원에 도착했지만 예상치 못한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30대 남성은 갑자기 괜찮아졌다며 귀가하겠다고 하고는 멀쩡히 스스로 돌아갔다.
불필요한 구조요청으로 인해 좋지 않은 기상 여건 속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헬기와 구급차, 구조대원이 출동하는 등 장비와 인력 낭비를 초래한 셈이다.
소방구조대의 구급차를 마치 '택시'처럼 사용하려는 공항 승객들도 종종 있다.
고혈압 또는 당뇨병 등을 앓고는 있지만 위중한 상황이 아님에도 지병을 핑계로 병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단 신고가 들어온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게 공항 소방구조대다.
양은호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에어사이드운영팀 차장은 "제주공항 소방구조대는 구급차를 1대만 보유하고 있어 이와 같은 요구를 일일이 응대하다 정작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응급환자가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응급환자가 아니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으로 이동하길 당부했다.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다.
지난 2017년에는 국제선 1층 도착장에서 가스 누출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대원들은 현장에 도착하자 가스 냄새 비슷한 냄새가 진동했고, 비상조치를 취하던 중 세관 직원으로부터 며칠 전에도 비슷한 냄새가 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확인해보니 냄새의 원인은 검역소에 반입금지 물품으로 수거된 열대과일 '두리안'이었다.
과일의 왕으로 꼽히는 두리안은 고약한 냄새와 크림같이 부드러운 맛으로 '천국의 맛과 지옥의 향을 가진 과일'로 일컬어진다.
인도네시아에선 여객기 화물칸에 두리안 2t가량을 실었다가 냄새를 견디지 못한 승객들의 집단 항의로 출발 직전 두리안을 내린 일도 있었다.
"신속하게 출동, 도움줄 수 있어 보람"
제주공항 구조소방센터에는 총 60명이 4조 2교대로 24시간 근무하고 있다.
평일 주간에는 21∼22명이 근무하며 야간과 주말에는 일일 필수근무 인원인 13명이 상시 근무한다.
항공기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뿐만 아니라 공항 내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항 이용객, 상주직원, 출·도착 항공기 탑승자 누구든 응급환자가 발생한 경우 신속하게 출동해 환자의 상태에 따른 대응으로 응급처치와 응급환자 이송업무를 수행한다.
공항 내 화재뿐만 아니라 공항 주변에 화재가 발생할 때도 빠른 대처를 위해 공항 소방구조대가 출동하기도 한다.
공항에 상황 발생 시 필요한 인력을 제외한 소방차가 출동해 인명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한다.
제주지역 내 병원 환자 중 서울 등 상급병원을 이용해야 할 경우 환자와 의사를 비행기 또는 헬기까지 이송해 주는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최근 5년간 소방차 출동 건수는 2018년 126건, 2019년 546건, 2020년 285건, 2021년 322건, 2022년 10월 기준 203건 등이다.
구조구급 활동 건수는 2018년 339건, 2019년 301건, 2020년 465건, 2021년 189건, 2022년 10월 169건 등이다.
공항에는 119소방대와는 다른 특수한 장비들도 있다.
제주공항에는 항공용구조소방차 4대, 물탱크소방차 1대, 구급차 1대, 지휘차 1대를 포함해 총 7대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항공용구조소방차는 공항 사고 특성에 맞게 많은 물과 소화약제를 탑재해 비포장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기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4륜 구동이며, 40초 이내에 시속 10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항공기 사고 발생 시 신속한 사고수습을 위한 항공기 공기부양장비도 갖추고 있다.
사고가 난 항공기를 들어올려 크레인에 옮기는 장비로, 고무 튜브 형태에 바람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부양능력은 260t 이상이다.
최대 처리기종은 400명 이상 탑승 가능한 B747-400급 대형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공항과 제주공항만 이 장비를 갖추고 있다.
섬 특성상 인천에서 장비를 빌려 오려면 2∼3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항공기 수요가 많은 제주공항의 경우 특별히 이 장비를 자체 보유하는 것이다.
제주공항 소방구조대원들은 "제주에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항공기 사고가 없어 다행"이라며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제주공항의 특성상 크고 작은 응급환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가 신속하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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