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도 이길 수 있다" 가을 영웅이 전한 메시지[장강훈의 액션피치]

장강훈 2022. 11. 9.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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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끝내기 패배.

우승 가능성이 희박해 상실감이 클 수도 있지만, 그라운드 곳곳에 흩어져 경기를 준비하는 젊은 영웅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다.

양 팀 모두 극한의 집중력으로 경기에 나서는데다 한 경기 패배가 시즌 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매일 더블헤더를 치른 것 이상의 피로를 준다.

한 경기 패배는 그간 쌓인 피로감을 동시에 쏟아내기 때문에 혈기왕성한 선수들도 곯아떨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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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마무리 최원태가 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KBO리그 키움히어로즈와 SSG랜더스의 한국시리즈 4차전 9회초 2사 만루에서 마지막타자 최주환을 잡아내며 송성문과 포옹하며자축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문학=장강훈기자] 충격의 끝내기 패배. 15경기째 포스트시즌 경기를 준비하는 젊은 영웅들의 표정은 적어도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우승 가능성이 희박해 상실감이 클 수도 있지만, 그라운드 곳곳에 흩어져 경기를 준비하는 젊은 영웅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다.
히어로즈는 젊은 팀이다. 이용규(37) 이지영(36) 등 베테랑도 있지만, 실질적인 더그아웃 리더인 이정후(24)를 비롯해 20대 초중반으로 구성돼 있다. 유격수 김휘집은 겨우 프로 2년차 약관이고,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 중인 신준우(21)도 그보다 1년 선배에 불과하다. 준플레이오프(준PO)와 PO를 거쳐 한국시리즈(KS)까지 오르는 동안 매일 매일이 첫 경험이다.
키움 김혜성이 2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KBO리그 플레이오프 3차전 9회초 에러를 범한 김휘집을 위로하며 경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고척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양 팀 모두 극한의 집중력으로 경기에 나서는데다 한 경기 패배가 시즌 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매일 더블헤더를 치른 것 이상의 피로를 준다. 승리는 도파민을 증가시키지만, 패배는 각성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한 경기 패배는 그간 쌓인 피로감을 동시에 쏟아내기 때문에 혈기왕성한 선수들도 곯아떨어지게 한다. 말은 안하지만 방망이 들 힘조차 고갈된다는 것을 느낄 시기다.
특히 지난 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치른 KS 5차전은 9회말 대타 끝내기 홈런에 무릎을 꿇었다. 충격파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KS 6차전을 앞두고는 그간 억제했던 풀스윙을 마음껏 해보는 선수도 보였다. 이정후의 프리배팅 타구는 관중석 중상단에 꽂힐 만큼 힘이 넘쳤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비장함이 감돌았지만, 아쉬움은 보이지 않았다. 올가을 히어로즈가 2030세대에 전하는 메시지다.
키움 안우진(오른쪽)이 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BO리그 SSG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 6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SSG 한유섬을 유격수 뜬공을 잡아내며 위기를 넘긴 뒤 이정후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굳이 세대를 나누고 싶진 않지만, MZ세대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다면 편히 자도 된다’는 한 아티스트의 격언은 MZ세대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최선을 다해 즐겼으면, 비록 결과가 실패로 끝나도 아쉬워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키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이정후는 “우리끼리 재미있게, 정말 즐겁게 가을야구를 즐겼다. 우승하지 못해도 언제 또 이렇게 재미있게 야구할까 싶어 지치는줄 모르고 뛰었다. 올해의 경험은 각자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될 거고, 우리의 야구는 내년에 또 도전하면 된다”고 말했다. 결과를 예측해 주눅들 필요도, 자만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다. 최선을 다했으니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과거에 천착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젊은 영웅들이 지쳐도 지친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키움 전병우가 1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KBO 한국시리즈 1차전 SSG와 경기 9회초 1사2루 좌월홈런을 날린 후 송성문과 환호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상실의 시대다. 일어나서는 안될 참사가 발생하고, 책임져야할 기성세대는 전가에 급급하다. 젊은 세대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게 현실이다. 이들에게는 암울한 미래를 한탄할 시간조차 사치로 여겨진다. 이런 시대에 ‘야구로 행복을 드리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히어로즈의 도전은 그 자체로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다.

오너리스크로 얼룩진 구단과 별개로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나보다 둘, 둘보다 열명이 내딛는 걸음이 크다. 올가을, 젊은 영웅들이 내딛은 걸음은 그 자체로 위대했다. 준우승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한 행보였다. 가슴속 울분을 ‘우리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즐기자’로 바꿔 야구팬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야구의 진짜 가치는 패배 속에 얻는 깨달음에 있다. “약해도 이길 수 있다”는 외침을 실현가능한 가치로 만든 히어로즈의 야구는 올해가 원년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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