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대구 수돗물 독성' 논란...'4대강 보'가 근본 원인일까
대구의 가정집에 공급되는 수돗물에서 녹조가 배출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신경독소가 검출됐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심지어 가정집 수도에 설치해놓은 필터에서 ‘남조류’가 확인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4대강 보 때문에 더욱 악화된 녹조가 정수 과정에서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30년 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는 대구의 주민들에게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진 금강 유역의 주민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이라면 농업용수와 농산물의 오염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비공인 검출에 의한 혼란
수돗물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을 검출한 실험을 직접 수행했다는 이승준 부경대 교수가 강하게 반발했다. 자신이 검사한 수돗물 시료에서의 마이크로시스틴 검출량은 효소면역분석(ELISA)법의 ‘정량(定量) 한계값 이하’였다는 것이다. 언론사가 자신에게 분석을 의뢰한 수돗물은 명백하게 미국의 수질 기준을 만족하는 ‘안전한 물’이었다는 뜻이다. 다만 자신이 기기에서 확인한 검출량이 0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시스틴이 ‘나왔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화학물질의 양을 분석하는 모든 기기에는 ‘정량 한계값’이 있다. 화학물질을 구성하는 분자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물 18밀리리터에는 무려 6천만경(京) 개의 물 분자가 들어있다. 우리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분자의 수를 정확하게 세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물속에 ppm(백만 분의 1) 수준으로 녹아있는 분자의 수도 무려 60경(京) 개나 된다. 정량 한계값은 분석기기로 그런 분자의 수를 얼마나 정확하게 셀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정량 한계값보다 더 적은 양은 측정할 수 없다. 과학자들에게는 0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제도적으로 수질 관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대구상수도본부와 국립환경과학원도 ‘수돗물 공포’를 촉발시킨 언론 보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마이크로시스틴과 남조류의 검출에 사용한 분석법이 우리나라의 수돗물 관리 제도에서 인정하는 공인시험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핵심이다. 심지어 언론사가 분석을 의뢰한 시료의 정체나 채취과정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수돗물의 유해물질 분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과 제도에 명시된 분석기기와 전문인력을 갖추고, 정부로부터 분석 능력을 공인받은 분석기관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분석 방법도 반드시 법과 제도로 인정된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분석기기를 갖추고, 학술논문을 통해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은 교수‧전문가라고 해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정부로부터 분석 능력을 공인받지 못한 대학 실험실에서 수행한 분석의 결과에 대한 논란은 대부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000년 수돗물의 바이러스 검출 논란과 2017년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성 논란이 모두 그런 경우였다. 심지어 대학 실험실에서 사용한 분석법이 공인된 실험방법보다 더 정확하고, 정교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해물질의 안전 관리는 반드시 제도적으로 정해놓은 절차와 기준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 관리는 반드시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하는 스포츠 경기와 같은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이 대학의 분석 결과를 이용해서 정부가 정해놓은 분석법이나 허용기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공인된 분석법을 개선하거나 허용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강화해야 하는 분명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떤 경우에도 언론을 통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폭로성 보도로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보’의 개방‧해체가 능사가 아니다
여름마다 반복되고 있는 ‘녹조’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남긴 가장 대표적인 후유증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에 22조 원을 쏟아 부어서 어설프게 만들어놓은 16개의 보(洑)가 강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아서 생기는 환경재앙이 바로 녹조라는 것이다.
녹조의 피해는 심각하다. 단순히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녹조가 발생하는 강바닥에는 어김없이 심한 악취를 풍기는 시커먼 뻘이 쌓인다. 대표적인 오염지표종인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 유충이 창궐하고, 큰빗이끼벌레와 같은 흉측한 괴생물체도 등장한다. 결국에는 용존 산소가 고갈되면서 수중 생태계가 파괴되고,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새들도 사라져 버린다. 녹조가 심각한 유역의 농작물에서 마이크로시스틴과 같은 독소가 검출되기도 한다.
무작정 보를 개방하거나 해체해버린다고 녹조가 말끔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탈(脫)4대강 사업’을 주요 국정목표로 내세웠던 지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녹조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어설프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보를 무작정 해체·개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심각한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4대강의 맹목적인 ‘재자연화’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절대 아니다. 어설프게 만들기는 했지만 현재의 보가 홍수 통제와 가뭄 해결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보의 건설로 만들어진 내수면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보의 수위가 올라가면 인접 지역의 지하수도 넉넉해지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지역 농민들이 보의 해체·개방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과학보다 이념을 더 강조하는 엉터리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녹조를 일으키는 오염원을 관리해야
4대강 살리기 사업이 합리적이고 성공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16개의 보를 성급하게 건설하는 과정에서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면밀하게 살피지 않았다. 4대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천의 수질 관리에 대한 고민도 충분하지 못했다. 특히 지천의 수질 관리 실패로 최악의 오염을 일으켰던 시화호의 아픈 경험을 철저하게 무시해버렸던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었다.
사실 녹조는 4대강 사업 때문에 불거지기 시작한 환경문제가 아니다. 4대강 살리기와는 상관없는 남한강의 대청호도 녹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녹조는 물이 고여 있는 연못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자연현상이다. 녹조는 남조류(藍藻類)라고 부르는 작은 식물성 플랑크톤이 지나치게 증식하면서 생기는 부영양화(富營養化·eutrophication) 현상이다.
물이 한 곳에 고여 있게 된다고 해서 반드시 녹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깨끗한 우물물이나 샘물에서는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 부영양화는 남조류의 성장·증식에 필요한 영양 ‘염류’(鹽類)가 충분히 녹아 있고, 수온이 충분히 높은 곳에서만 발생한다. 화학비료나 퇴비에 많이 들어있는 질산염이나 인산염이 그런 영양 염류다. 생활하수에도 영양 염류가 많이 들어 있다.
물론 보와 댐 때문에 강물의 흐름이 느려지면 녹조가 악화될 수 있다. 녹조 라테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남조류의 입자들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지 못하고 한곳에 정체된 상태에서 더욱 빠르게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나 댐을 만들면 반드시 녹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소양강댐을 비롯해서 북한강 수역의 댐에서는 녹조가 흔히 발생하지 않는다.
녹조가 발생하는 보의 개방·해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수중에 서식하는 남조류의 양은 기본적으로 물속에 녹아 있는 영양 염류의 양과 수온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속이 빨라지면 남조류가 하류로 떠내려가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될 뿐이다. 남조류가 배출하는 마이크로시스틴과 같은 독소의 양도 줄어들지 않는다.
녹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으로 영양 염류가 흘러들어가도록 해주는 ‘오염원’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천의 수질에 대한 확실한 관리가 핵심이다. 지나친 퇴비와 화학비료의 사용을 줄이고, 축산폐수와 생활하수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영양 염류의 양을 줄이지 못하면 녹조 퇴치는 불가능하다.
물론 오염원 관리가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농민들과 축산업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염원의 적극적인 관리가 농민과 축산업자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지천의 수질 관리를 위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상당한 예산을 투입해야만 한다. 환경·생태를 앞세운 이념적이고 소모적인 논란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와는 자연‧생태 환경이 전혀 다른 외국의 사례에 한눈을 팔 이유가 없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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