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패자' 키움, 소년만화는 이렇게 끝났지만 영웅군단에겐 낭만이 있었다[KS 리뷰]

허행운 기자 2022. 11. 9.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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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언더독의 반란'으로 표현됐던 키움 히어로즈의 한 시즌이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했다. SSG 랜더스라는 거대한 벽 앞에 결국 무릎꿇은 영웅군단. 하지만 그들의 찬란했던 올 가을 도전기는 박수받아 마땅했다.

ⓒ연합뉴스

키움은 8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6차전 SSG와의 원정경기에서 3-4로 패배했다. 결국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최종 승자가 되지 못한 키움은 우승 트로피를 SSG에 넘기고 올 시즌을 마감했다.

올해 초 시즌이 열리기 전만 해도 키움은 강팀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팀이다. 전문가들 중에선 키움을 5강 후보로도 보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키움은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박병호를 FA 시장에서 놓치며 출발했다. 야시엘 푸이그라는 거물급 외인이 합류했지만 물음표가 붙어있던 것이 사실이었고, 선발 로테이션을 비롯해 마운드 전체에도 확실한 카드라고 부를 수 있는 자원은 없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린 키움은 달랐다. 개막 첫 달부터 승패마진 '+3'을 남기며 출발하더니 5월과 6월 모두 6할 이상의 승률을 달성하면서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전반기 막판에는 독보적인 선두 SSG를 위협하는 유일한 대항마로 떠올라 1위 자리를 위협하기도 했다. 올스타브레이크가 시작되기 직전 SSG와 문학에서 맞붙었던 시리즈는 미리보는 KS라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후반기에 다소 페이스가 떨어졌다. 연승보다 연패가 잦아지며 2위 자리를 LG 트윈스에 내주며 추락했다. 이후에는 폼이 한껏 오른 kt 위즈와 3위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소게임을 펼친 키움은 결국 시즌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상대전적 우위로 귀중한 3위를 손에 쥐고 정규시즌을 마쳤다.

한국시리즈 6차전을 앞두고 훈련에 임하고 있는 야시엘 푸이그(왼쪽)와 이정후(이상 키움 히어로즈). ⓒ스포츠코리아

후반기에 떨어진 경기력이 아쉬움이 남았을 영웅 군단이지만 이미 그들의 성적은 세간의 결과를 뛰어 넘은 수준이었다. 가장 큰 공신은 역시나 투타에서 팀을 이끈 '1선발' 안우진과 '천재 타자' 이정후였다. 

안우진은 올해 15승 8패 196이닝 224탈삼진 평균자책점 2.11로 개인 커리어하이는 물론 리그 최고의 투수로 우뚝 섰다. 이미 그 천재성을 증명해왔던 이정후는 올해 무려 '타격 5관왕(타율·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을 달성하며 탈KBO급 지표를 뽐냈다. 두 선수의 진두지휘 아래 푸이그도 성공적으로 KBO리그에 발을 딛었고, 마운드에서도 '효자외인' 요키시를 비롯해 불펜의 핵으로 떠오른 김재웅도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그렇게 모두의 예상을 깨고 3위라는 성적으로 가을 무대에 발을 들인 키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웅들의 '가을 스토리'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숙적 kt 위즈와 최종 5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3-2 승리를 따낸 키움은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 역대급 시즌을 보낸 LG를 상대로 열세가 예상됐던 시리즈마저 저력을 발휘하며 3-1 업셋을 만들어냈다.

사상 첫 'V1'을 향한 키움의 도전은 그렇게 계속됐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우세를 점치기엔 무리였다.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한 SSG라는 마지막 벽이 있었기 때문. 항간에는 4-0 셧아웃 시리즈까지 예측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스포츠코리아

그럼에도 영웅들은 물러서지 않는 멋진 승부를 펼쳤다. 1차전을 극적인 역전승으로 따내며 드라마를 써냈고, 2~3차전을 내리 내준 불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4차전을 손에 쥐면서 시리즈 타이를 맞춰 SSG를 끝까지 압박했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 같은 도전은 5차전에서 터진 김강민의 9회말 대타 끝내기 스리런포로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힘든 여정을 이어온 영웅들의 기세는 거기서 꺾여버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그들이 써온 스토리에 이미 많은 감동이 담겨있었기 때문.

그들이 KS에 꺼내든 라인업만 봐도 소년 만화의 요소는 가득했다. 약팀으로 평가받는 팀을 이끄는 천재 타자와 리그 최고 투수, 재기를 꿈꾸는 전직 메이저리거 외인 타자가 주인공처럼 버틴다. 여기에 천재의 아버지와 함께 우승을 맛봤던 베테랑 외야수와 그의 동료인 맏형 포수가 든든하게 베테랑 라인을 구성했고, 방출의 아픔을 맛본 리드오프도 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든든한 사령탑이 방점을 찍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아니지만 특유의 덤덤한 리더십 속에 숨어있는 카리스마로 약팀으로 평가받은 팀을 KS 무대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결국 막판 아쉬운 패배로 그들의 시즌은 마감됐다. 하지만 영웅들이 잠시 회복의 시간을 가지고 보여줄 다음 시즌을 향한 기대감도 덩달아 커졌다. 그들의 소년 만화가 언젠가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기를 키움 팬들은 여전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lucky@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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