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여성농민은 오늘도 호미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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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도 고생 많았지만, 사모님 안 계셨으면 농장 이만큼 키우기 어려웠죠."
농업경영체로 등록한 농민 255만9000명 가운데 여성은 공동경영주를 포함해 45.8%나 차지한다.
여성농민의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할 정책은 이러한 현실을 읽지 못하고 있다.
'천한 일은 호미를 쥔 자들의 몫'이라고 여성농민의 삶을 그린 소설 <호미> 를 쓴 정성숙 작가는 말했다.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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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도 고생 많았지만, 사모님 안 계셨으면 농장 이만큼 키우기 어려웠죠.”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A씨는 인터뷰를 위해 찾은 한 낙농가 대표의 아내다. 그 말을 증명하듯 A씨는 트랙터를 새로 장만했다며 자신의 키 두배가 되는 농기계에 가뿐히 올라타 노련하게 운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농촌에 가면 여성농민을 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손엔 호미를 들고 작업방석을 다리에 낀 채 잰걸음을 걷는다. 농업이 남성만의 일이 아니게 된 것은 이미 오래다. 오히려 여성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 2021년 농림어업조사 결과 전체 농가인구 221만5000명 가운데 50.3%인 111만5000명이 여성이었다. 농업경영체로 등록한 농민 255만9000명 가운데 여성은 공동경영주를 포함해 45.8%나 차지한다. 여성 단독으로 경영주를 맡는 비율도 해마다 높아져 2015년 24.9%에서 2020년 28.4%까지 올랐다.
하지만 농촌의 가부장적 인식은 그대로다. 2018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에서 여성농업인 지위에 대한 인식에 대해 ‘예전보다 높지만 아직 남성보다 낮다’는 답변이 62.2%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은 답변은 ‘여전히 남성보다 낮다(18.9%)’였다.
질병도 성을 차별한다. ‘2020년 농업인 업무상 질병 조사’는 여성일수록 유병률이 높다고 말한다. 특히 농민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근골격계 질환은 남성보다 여성농민의 유병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여성농민이 더 아픈 이유는 호미와 작업방석에서 알 수 있듯 기계화가 덜 된 밭농사에 주로 종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가사 노동과 육아도 대부분 여성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여성농민의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할 정책은 이러한 현실을 읽지 못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9000명의 여성농민을 대상으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을 마련했다.
내년부터는 308억원 정도를 들여 여성농민 14만명을 대상으로 본사업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결국 ‘예산’이라는 벽에 막혔다. 정부 살림살이의 긴축기조 칼날이 농업복지에 겨눠진 것이다.
‘천한 일은 호미를 쥔 자들의 몫’이라고 여성농민의 삶을 그린 소설 <호미>를 쓴 정성숙 작가는 말했다. 특수건강검진은 업무로 인해 특정 질병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직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검진을 제공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농업의 절반을 감당하는 여성농민을 지키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여성농민의 특수건강검진을 본사업으로 확대해 이들의 건강을 선제적으로 지켜야 하는 이유다.
이유리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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