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이승엽을 배워라 [뉴스룸에서]

박상준 2022. 11. 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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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타자 아닙니까. 잘하면 당연하다 할 것이고, 못하면 얼마나 많은 비난이 쏟아질지 모르겠습니다."

40년 된 KBO에서 '국민 타자' 수식어는 단 한 사람의 것이다.

어찌 보면 카카오가 국민타자 이승엽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결과다.

이승엽이 팬과 국민 앞에서 겸허했다면 카카오는 오만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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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아지트에서 남궁훈(왼쪽), 홍은택 각자 대표가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먹통 사태 기자회견에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성남=서재훈 기자

"국민 타자 아닙니까. 잘하면 당연하다 할 것이고, 못하면 얼마나 많은 비난이 쏟아질지 모르겠습니다."

이승엽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보를 두산베어스 새 감독으로 뽑은 두산그룹 관계자 표정에서는 기대와 걱정을 함께 볼 수 있었다. 40년 된 KBO에서 '국민 타자' 수식어는 단 한 사람의 것이다. 이 감독은 24년 동안 선수로 뛰면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비롯해 많은 감동과 승리의 기쁨을 안겨줬고, 국민들은 아낌없이 박수 쳤다. 그가 부진할 때도 비판보다는 응원이 더 많았다. 국민 타자는 죽도록 연습을 했고 훌훌 털고 일어나 멋진 모습으로 보답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를 향한 국민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이름도 낯선 플랫폼을 온 생활 필수품으로 만들고, 일상을 편리하게 해준 기업을 지지했다.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아도 기꺼이 참았다. 새로운 영역을 만들 때 생기는 시행착오라며 등을 토닥거렸다.

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흔들렸다. 카카오가 택시·대리운전 등 모빌리티를 비롯해 금융, 엔터테인먼트, 쇼핑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수록 논란만 커졌다. 도구가 새로웠을 뿐 내용물은 참신하지 않았고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카카오도 결국 돈 버는 걸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국민 불안은 현실이 됐다. 지난해 12월 10일 카카오페이 류영준 전 대표와 임원 7명이 주식 시장에 상장되고 한 달 만에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으로 얻은 주식 44만993주를 내다 판 일은 최악의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8월 '마차 시위' 사태로 비화한 카카오게임즈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이용자 홀대 논란은 소통 부족의 결과였다.

주주와 고객에게 소홀한 기업은 잘될 수 없다. 카카오를 향한 시선은 차가워졌고 지난달 데이터센터 화재와 서비스 먹통 사태는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대기업이 된 카카오가 몸집만 키웠지 위기 준비는 허술했고, 사고 때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최근 만난 카카오 관계자도 "짧은 시간에 너무 빨리 컸지만 준비는 꼼꼼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카카오 이미지는 추락했고 소비자는 떠났다. 분기마다 30% 이상씩 성장했던 영업이익도 3분기에는 지난해보다 10.6% 감소했다.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시장에서는 카카오가 신뢰를 빠르게 잃어 더 깊은 수렁에 빠질지 모른다고 보고 있다.

어찌 보면 카카오가 국민타자 이승엽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결과다. 이승엽 감독은 국민 타자 시절 인터뷰 때마다 겸손한 자세로 '국민'과 '팬'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지난달 감독 취임식에서도 "그라운드 밖에선 낮은 자세로 '팬 퍼스트'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승엽이 팬과 국민 앞에서 겸허했다면 카카오는 오만했던 셈이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카카오톡이 멈췄을 때 국민들이 일상이 멈췄다는 느낌을 받는 건 한 기업이 짊어지기 어려운 무게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카카오의 펀더멘털(근본 경쟁력)을 의미한다"고 했다. 카카오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바로 그 국민의 믿음부터 되찾아야 한다. 먹통 사태 피해 보상이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박상준 산업1부장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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