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당일 4개 기관 녹취록 공개... 여실히 드러난 '시스템 참사'
경찰, 오후 6시부터 "압사 우려" 포함 신고 93건 받아
공조 요청에도 현장 파악 안돼 '질서 유지'로 종결
소방, LTE 탓 출동 현장 영상 제대로 못 보고 지휘
구급차 진입 못해 "경찰, 길 통제 좀 해달라" 요청
서울방재센터, 사상자 넘치자 "알아서 병원으로"
국가 안전 시스템은 ‘살려달라’ ‘도와달라’는 시민들 외침에 무력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밤 경찰 112신고와 소방 119신고, 서울 종합방재센터 종합상황실, 서울시(다산콜센터)에 접수된 녹취록에는 ‘시스템 참사’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4개 기관 녹취록은 참사 열흘째인 8일 오후 모두 공개됐다.
한국일보가 참사 당일 녹취록 내용을 비교 분석한 결과, ①현장 판단 ②공동 대응 ③유관기관 정보 공유 ④응급환자 대처 등 재난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 판단 못한 경찰, 소방과 공동대응도 실패
경찰이 공개한 112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6시부터 사고가 발생한 오후 10시 15분까지 총 93건의 신고가 있었다. 경찰은 이태원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린다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준비에 소홀했다. 경찰은 “압사당할 것 같다, 통제 좀 해주셔야 할 것 같다”(오후 6시 34분)는 신고를 '불편신고'로 보고 별도 조치하지 않았다. 2시간 뒤 다른 신고자가 현장 상황이 심각하다며 동영상을 보내겠다고 하자 "112 문자로 보내시면 된다"고 답변했다.
경찰은 소방과의 공동 대응에도 실패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경찰은 오후 8시 33분과 9시에 서울소방본부에 공동대응을 요청했지만, 소방은 이를 경찰 업무로 간주하고 종결 처리했다. “인파들 너무 많아서 지금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에요”라는 112신고가 접수됐지만, 공조 요청을 받은 소방은 ‘현장 교통통제 및 질서유지’ 성격이라 구조대 파견이 필요 없다고 봤다. 이후 별도 조치를 하지 않았던 용산경찰서는 참사 발생 22분이 지난 오후 10시 37분이 돼서야 강력팀을 출동시켰고, 기동대 투입 지시는 오후 11시 17분에 이뤄졌다.
구조 요청 쏟아졌지만, 119 구급대는 느렸다
소방은 참사 직후 쏟아진 구조 요청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소방청이 첫 신고로 판단한 오후 10시 15분부터 1, 2분 간격으로 잇따라 “상황이 심각하다” “깔린 사람이 너무 많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그러나 상황실에선 오후 10시 42분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종로소방서 구급차를 향해 “의식 없는 응급환자 있는 건 아니죠?”라는 무전을 보냈다. 당시 상황실에 현장 영상이 공유되지 않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소방은 LTE 망을 이용해 현장 영상을 상황실에 보내지만, 당일 이태원 인근에 전화와 데이터 사용이 폭주하다 보니 구조 활동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상황실에선 오후 11시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에도 “일단 영상 좀 빨리 틀어주세요”라고 말했다.
현장 파악도 더뎠다. 지휘팀은 11시쯤 무전에 “30명가량 넘어져 있다. 빠른 속도로 행인 일으켜 안전 장소 유도 중. 잠시 뒤 상황 종료 추정”이라고 말했다. 사상자가 이미 300여 명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제때 공유받지 못하고, 현장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었던 셈이다.
앞서 경찰의 공조 요청을 종결처리했던 소방은 신고가 쏟아지자 오후 10시 18분 서울경찰청에 경찰 인원 투입과 차량 통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교통체증은 바로 해결되지 못했다. 10시 29분 이태원동 인근에 도착한 종로소방서 소속 구급차는 길이 막혀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고, 구급대원들은 도보로 이동했다. 종합상황실에는 이후 15차례나 “경찰 속히 출동 바란다. 경찰 독촉 좀 해달라. 길 통제가 안 돼 구급차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구급대원의 요청이 빗발쳤다.
제 역할 못한 재난 컨트롤타워
재난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서울종합방재센터 종합상황실도 혼란 그 자체였다. 서울시 직속기관인 방재센터 상황실은 당시 현장에 출동해 있는 구급대원과 인근 병원을 연결하다가 사상자가 쏟아지자 오후 11시 31분 “심폐소생술(CPR) 아닌 차량은 각자 알아서 (병원으로) 가도록”이라고 지시했다.
응급환자 이송과 병원 배정도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참사 현장에선 생존 가능성이 있는 중환자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원칙이다.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순천향대병원으로, 직선거리로 1㎞가량 떨어져 있다. 현장 소방기록에 따르면, 당시 사망하거나 심정지되지 않은 환자는 78명이었지만, 이중 1명만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협조해 물리적 거리와 의사 진료 가능 여부, 응급실 병상 여력를 두루 살핀 결정이라고 했지만, 다음 날 오전 8시 22분 구급대원은 “00병원도 안 된대요. 지금 망자 모시고 이송이 너무 잦아요. 병원 한 번 더 확인해주세요”라는 무전을 보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다산콜센터에도 상황 공유 안돼
기관 간 정보공유 또한 원활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29일 오후 10시 26분에 참사 보고를 받았지만, 서울시가 운영하는 다산콜센터(120) 상담사들에겐 다음 날 오전 5시 6분까지도 재난 상황 대처법이 공유되지 않았다. 다산콜센터에는 밤새 가족의 행방을 찾는 연락이 쏟아졌다. 다산콜센터 녹취록에 따르면, “제 동생이 이태원에 간다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 “아들이 이태원 간다 했는데 휴대폰 전화를 안 받는다. 위치추적이라도 하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다. 직원들은 “죄송하다, 아직은 전달받은 게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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