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잘 들어" 매뉴얼에도…비명 들렸던 '참사' 인식 못했다

김성진 기자 2022. 11. 9.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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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진·영상 제보받을 수도 있는데...11건 중 1건만 영상 받아
경찰청 '112 신고 접수·지령 매뉴얼'의 한 부분. '접수'할 때 직관적인 상황 파악이 중요하며 첫 소리에서 긴급성을 읽어야 한다고 돼 있다./사진=매뉴얼 캡쳐.

경찰은 112 신고 매뉴얼은 신고자로부터 처음 들려오는 소리에 주목하라 가르친다. 목소리만으로 상황의 위중함을 가늠할 수 없어서 경찰은 신고자 사진·영상을 제공받는 시스템을 운영하지만 참사 날에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9일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경찰청 '112 신고 접수·지령 매뉴얼 - 접수' 부분에는 신고 전화를 받는 112상황실 근무자의 직관적 상황 파악이 중요하다고 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고자 목소리의 다급함 △주변 소음 △어눌한 발음 등으로 상황을 추정해야 한다며 "처음 들려오는 소리에 주목하라"고 돼 있다.

참사 전까지 경찰에는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모두 11건 접수됐다. 녹취록을 보면 "길에서 다 떠밀리고 있다 이러다 진짜 사고 날 것 같다" "사람들이 거의 압사 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밤 10시15분쯤 참사가 나기 4분 전에는 "여기 압사될 것 같아요" "다들 난리 났어요"란 신고가 접수됐다. 녹취록에는 "아, 아" 비명도 기록됐다.

경찰 신고 체계는 코드0~4로 구분되는데 11건 신고 중 가장 높은 코드0가 부여된 건 1건이다. 나머지 7건은 코드1, 3건은 코드2로 분류됐다. 비명이 녹음된 마지막 신고는 코드1으로 분류됐다. 신고자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알렸지만 경찰은 급박한 상황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전화상으로 위급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매뉴얼도 2012년 오원춘 사건을 거론해 "(사건은)소리를 통한 상황 파악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쓰여 있다. 오원춘 사건 당시 신고를 받은 상황실 근무자는 여성의 성폭력 신고를 가정폭력으로 오인했었다.

경찰은 전화 신고 접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보이는 112 신고'를 운영한다. 신고자가 상황실 근무자가 보낸 URL 주소에 들어가 사진·영상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참사 직전 접수된 11건 신고에서 상황실 근무자가 신고자에게 사진·영상을 받은 것은 저녁 8시33분 신고 한 건이었다. 신고자가 먼저 "영상 찍은 것 있는데 보내드리냐?"고 물었다. 그 외 경우 경찰관이 먼저 사진·영상을 요청한 적은 없다.

지난달 30일 이태원 참사 직후 현장 모습./사진=뉴스1


신고 접수 업무를 해봤던 경찰들은 '어차피 관할 지역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들이 현장에 갈 거기 때문에 보이는 112 신고를 자주 활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서울 지역의 한 경찰은 "위급한 상황에 신고자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하기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지구대·파출소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했다가 복귀해서 '신고 종결 보고서'를 쓰면 그 내용을 읽고 상황실 근무자가 현장 상황을 파악하는 방법도 있다.

참사 때 인근 이태원파출소 경찰관들은 112상황실에 사진·영상을 공유할 틈이 없었다. 참사 직전 이태원파출소에는 압사 위험 신고 외에도 주취 난동, 성희롱 등 신고가 1~10분 간격으로 접수됐다.

당시 파출소는 주간 근무자들이 연장 근무를 했고, 야간·심야 근무자들이 투입돼 경찰관이 30여명 있었다. 이들이 당일 저녁 6시부터 참사 전까지 3시간 동안 대응한 신고는 93건이다.

참사 당일 근무한 이태원파출소 경찰관은 "대응하는 데 수십 분 걸린 신고도 있는데 신고들이 쏟아져서 그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파출소에 돌아와 신고 종결 보고서를 쓸 틈도 없었다. 경찰관은 "어떤 출동팀은 녹사평역에서 파출소까지 700m 거리를 30여분 걸려 왔다"며 "도착해도 바로 다른 신고에 투입돼 보고서 쓸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신고 전화를 접수받은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은 참사 위험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상황실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처음 상황보고를 처음 한 것은 참사가 발생하고 1시간45분쯤 흐른 지난달 30일 오전0시1분이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청 매뉴얼대로) 신고자 목소리를 듣고 미국 경찰이 얘기하는 'split-second decision(찰나의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려면 최소한 상황실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 근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경험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보이는 112 신고 등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며 "이미 마련된 기술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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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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