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레고랜드’ 이어 ‘흥국생명’도 오판 뒷북, 정부 각성해야

조선일보 2022. 11. 9.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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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 모습. /연합뉴스

생보업계 8위의 흥국생명이 5억달러어치 신종자본증권(달러 표시 영구채)의 조기 상환을 연기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곧 상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흥국생명의 상환 연기로 한국 채권에 대한 신뢰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 혼란이 촉발되자 뒤늦게 금융위와 금감원이 개입해 수습한 것이다. 금융 당국이 미리 대응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혼선이 일주일이나 계속된 것이다.

신종자본증권은 투자자들이 5년 내 상환을 전제로 채권을 사기 때문에 흥국생명의 조기 상환 연기는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져왔다. 한국 금융회사들이 발행한 외화 표시 채권 가격이 동반 급락하고 한국 금융사·기업들의 재무 상태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금융 당국은 흥국생명이 시중은행과 다른 보험사들을 통해 5000억원을 조달하게 해 상환 자금으로 쓸 수 있게 했다.

금융 당국은 흥국생명의 조기 상환권 포기를 알고 있었는데도 별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금융위원장은 “정부가 더 일찍 개입할 수도 있으나 그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심각한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오판 탓에 일부 국내 기업들의 신종자본증권은 거래 자체가 끊어지는 ‘거래 절벽’ 현상까지 겪었다.

레고랜드 사태에 대한 뒷북 대응으로 시장 혼란을 고조시킨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부채 2050억원의 지급 보증 책임을 사실상 불이행하겠다는 선언으로 채권시장 경색이 촉발됐는데도 정부와 금융 당국은 ‘지자체 문제’라며 남의 일 보듯 했다. 금리가 급등하고 자금 시장이 마비 상태에 이르자 그제야 정부가 50조원대 자금을 풀어 회사채, 기업어음을 사들이겠다는 긴급 대책을 내놓았다. 거의 한 달간 시장 혼란을 방치한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 당국자들이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으려 선(先)개입을 꺼리기 때문이란 말까지 나온다.

고금리 강달러로 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다. 약간의 위험 요소만 있어도 이를 시발로 순식간에 도미노 현상처럼 신용 경색으로 확산될 수 있는 국면이다. 정부 당국의 조기 대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국가 경제 전체가 위태로운 위기 상황에서 뒷북만 친다.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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