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112, 119의 수난

최원규 논설위원 2022. 11. 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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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아빠, 나 짜장면 먹고 싶어서 전화했어.” 작년 4월 112로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두 번째 통화까진 별말 않던 여성은 세 번째엔 “모텔”이라고 하더니 네 번째 통화 때 이 말을 했다. 경찰은 신고자 아빠인 척 대화를 이어가 위치를 확인한 뒤 모텔에서 성폭행범을 체포했다. 얼마 전엔 119로 걸려온 “으으으” 하는 신음소리만 들은 소방관이 전화번호 하나만 갖고 주변 동사무소 등에 주민 검색을 요청해 신고자를 살렸다. 신고자는 쇼크 증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112와 119는 절체절명 순간에 사람 살리는 생명줄이다. 이런 세 자리 응급전화를 1930년대에 만든 영국은 999를 쓴다. 이를 본떠 미국과 캐나다에선 911을 만들었다. 화재·범죄·응급 신고를 같이 받는다. 일본은 112로 정했다가 오접(誤接)이 잦자 119로 바꿨다. 우리도 1935년 119를 시작했다. 범죄 신고를 따로 하는 112를 만든 건 1957년이다. 비상통화기 6대로 시작했는데 ‘일일이(112)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황당한 신고나 허위 신고도 많다. “다리 아프니 집까지 태워 달라” “기분 우울하니 소방관 보내 피리 불어달라” “배우 안성기씨 바꿔달라”는 것도 있었다. 8년 전 인천소방본부는 ‘119 신고 황당 베스트 10′을 선정하기도 했다. 112엔 허위 신고가 많다. 한 해 1만건 넘은 적도 많다. 10년 전엔 “괴한에게 납치됐다”고 거짓 신고해 50명의 경찰과 순찰차를 출동하게 한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792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한 적도 있다. 허위 신고에 대한 첫 손해배상 판결이었다.

▶미숙한 대응도 있었다. 10년 전 수원에서 오원춘에게 끌려간 여성이 112로 전화를 걸어 7분 36초나 연결됐는데도 경찰이 헤매는 바람에 살해되고 말았다. 피해 여성이 장소를 어느 정도 특정했는데도 “거기가 어딥니까”만 되풀이해 물었다. 이 사건 후 경찰은 112 신고 총력 대응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로 112와 119가 동시에 비판받고 있다. 참사 4시간 전부터 112로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도 경찰은 별 대응을 하지 않았다. 참사 직후 119엔 구조 요청이 빗발쳤는데 첫 신고 접수 후 30분가량 지나서야 소방대응 1단계가 발령됐다고 한다. 소방청은 올해 소방의 날(11월 9일) 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 국민 정서를 고려했을 것이다. 시스템 문제는 고쳐야겠지만 일선에서 애쓰는 소방관과 경찰관 사기까지 꺾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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