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발표 전부터 ‘팬심’으로 뭉쳐 에르노 작품 국내 最多 소개한 남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82) 작품 중 국내 소개된 책은 17권. 이 중 6권이 1984Books에서 나왔다. 국내 출판사 중 최다 출간. 1984Books는 전주에 있는 1인 출판사로 신승엽(38) 대표가 2016년 시작했다. 신 대표가 표지 등 디자인까지 맡아 하는 이 출판사에서 낸 에르노 저서 중 5권의 번역자가 신유진(40). 에르노 책을 가장 많이 우리말로 옮긴 사람이자 신 대표의 누나다. 남매를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남매 모두 프랑스 유학파다. 누나는 파리 제8대학에서 연극을, 동생은 이카르 포토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소르본 대학에서 현대문학을 가르치는 유진씨의 친구가 ‘네가 한국어로 옮기면 좋겠다’며 에르노 에세이 ‘사진의 용도’를 권한 것이 남매가 에르노에 몰두하게 된 계기다. ‘사진의 용도’는 에르노와 연인 마크 마리가 관계 후 어질러진 풍경을 사진 찍고 그에 대한 글을 써 엮은 책. 마침 출판사를 연 승엽씨에게 유진씨가 출간을 제안해 2018년 내게 된다.
당시 에르노는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는 미미했다. 수익 여부가 불확실한데도 남매가 합심한 것은 ‘팬심’ 때문이었다. “많이 안 알려져서 오히려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1쇄 정도는 팔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으로 20~30대 독자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홍보했지요.”(승엽)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 에르노의 글쓰기 철학. 유진씨는 “에르노는 1인칭으로 ‘나의 이야기’를 쓰지만, 작가만의 이야기로 극화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건너간다. ‘거울’이 아니라 ‘창(窓)’인 셈이다. 개인적 서사가 공통의 역사로 확장된다는 것이 에르노의 매력”이라고 했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운도 따랐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물론이고 2019년 ‘세월’을 낸 다음 날엔 에르노가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세월’은 에르노가 1941년부터 2006년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쓴 소설로 남매가 소개한 작품 중 가장 반응이 좋다. 2019년 3월 출간해 5쇄를 찍고 지난 5월 개정판을 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 개정판 3쇄를 찍어 모두 2만부 넘게 팔렸다. 승엽씨는 “에르노 책이 노벨상 수상 후엔 판매가 5~10배씩 뛰었다”고 했다.
남매가 함께 일하면 어떨까? 유진씨는 “다른 출판사랑 일할 때와 똑같다. 동생이라도 교정지 보내온 걸 받으면 떨린다. 원고료는 완벽하게 잘 주더라”며 웃었다. 노벨상 수상으로 에르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남매는 이미 나온 작품 외엔 더 이상 내지 않을 계획이다. “그간 너무 에르노에게만 집중해서 다른 도전도 해 보고 싶어요. 제 글도 쓰고 싶고요.”(유진) “프랑스 시인 크리스티앙 보뱅 등 지금 내고 있는 다른 작가들 책을 더 잘 소개하고 싶어요. 내년부터는 한국문학도 출간하려 합니다.”(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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