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민주당의 ‘집단지성’ 의존증

황대진 논설위원 2022. 11.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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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마다 지지자 앞세워 방패막이 삼는 野
이 대표 개인 비리 의혹에 왜 ‘국민’을 끌어들이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연구원에 대한 검찰 압수 수색이 진행 중인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힌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22.10.24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의 집단 지성’이란 말을 자주 한다. 주로 위기 때 쓴다. 지난 대선 전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로 패색이 드리우자 “우리 미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 집단 지성이 결정한다”고 했다. 대선에 지고 국회의원, 당 대표에 출마해 비난이 쏟아지자 “집단 지성에 저를 맡기겠다”고 했다. 대장동 사건으로 측근이 구속됐을 때도 “국민 집단 지성을 믿는다”고 했다.

유무죄는 집단의 의견이 아니라 개인의 행위가 실정법을 위반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유무죄 판단을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은 법치를 넘어서는 일이다. 민주당에서 집단 지성이란 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때부터 유행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국민의 집단 지성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했고, 임기가 끝나가던 지난 대선 때는 “투표로 국민의 집단 지성을 보여달라”고 했다.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 또는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을 의미한다. 미국 곤충학자가 개미의 행태를 관찰하고 내놓은 개념이다. 인간 사회에서 구현된 사례로 꼽히는 게 ‘위키피디아’다. 집단 지성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유용한 것은 서로 경쟁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을 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에선 같은 부류끼리 모여 오류를 강화하는 ‘집단 사고(Groupthink)’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치와 볼셰비키가 그랬다. 민주당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명숙·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객관적 증거가 모두 이들의 유죄를 가리켰지만, 민주당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례위성정당을 만들 때도 ‘당원 집단 지성에 묻겠다’며 전 당원 투표에 부친 결과 74%가 찬성했다. 박원순·오거돈 성추행 사건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 당헌을 고쳐 후보자를 낼 때도 그랬다. 같은 당 의원에게 퍼붓는 문자 폭탄을 ‘집단 지성의 발현’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다른 이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도 그것이 그의 ‘해방’을 위한 행위라고 확신한다.

최근 친야 단체의 윤 대통령 퇴진 집회에서도 그들만의 확신이 아우성친다. 대통령 취임 5개월 만에 ‘국정이 파탄 나고 국고가 탕진됐다’고 주장한다. 이태원 참사를 추모한다며 “대통령 퇴진이 추모다”라고 외친다. 합리적 주장이라고 볼 수 없다. 한 민주당 의원은 경찰 추산 1만6000명 집회 때 “2만명이 아니라 곱하기 10배”라고 했다. 서초동 조국 지지 집회 때는 “딱 보니 100만” 발언도 있었다. 이 대표 지지자 일부는 ‘개딸 집단 지성’이라고 쓰인 촛불을 들고 검찰·언론 개혁 소원 성취 기도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민주당이 믿는 집단 지성이 이런 것인가.

이 대표도 실제로는 집단 지성을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선거법 위반(허위사실유포) 사건 재판에서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는 국민참여재판을 거부했다. 배심원 평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재판부가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죄가 없고 국민 집단 지성을 믿는다면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 선택이었다.

정치인들은 흔히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여야 마찬가지다. 자기 말이 국민을 대변하고 행동은 국민을 대행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거역하는 것은 다수 국민에 맞서는 것이란 함의가 있다. 민주당과 이 대표는 여기에 더해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필요할 때도 ‘국민’을 방패막이로 내세운다.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머슴 행세를 하는 사람”이라는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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