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2022. 11.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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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마리아 엔더스.
한때 국민배우였으나 중년인 지금은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 중이다.
마리아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시그리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애착을 갖고 있었기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연예계 가십에 등장하는 아이돌이 시그리드를 연기한다는 사실이 몹시 불쾌하다.
마리아는 중년이 된 시그리드를 연기하고 싶지, 나이 들었다고 초라한 헬레나 역을 맡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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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올리비에 아사야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여배우 마리아 엔더스. 한때 국민배우였으나 중년인 지금은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 중이다. 이런 그녀에게 연극 섭외가 들어온다. 20년 전 무명이었던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인데, 젊은 감독이 다시 무대에 올린다며 그녀가 당시에 맡았던 20세 시그리드 역이 아닌 40세의 헬레나 역을 부탁한다. 시그리드는 자유분방하게 사는 자기중심적 인물이다. 이런 시그리드를 사랑하는 직장 상사 헬레나. 그녀는 모든 걸 다 바친 시그리드에게 비참하게 버림받는다. 마리아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시그리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애착을 갖고 있었기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연예계 가십에 등장하는 아이돌이 시그리드를 연기한다는 사실이 몹시 불쾌하다. 마리아는 중년이 된 시그리드를 연기하고 싶지, 나이 들었다고 초라한 헬레나 역을 맡긴 싫다. 자신이 헬레나 역을 잘 소화한다면 그건 늙었다는 증거가 된다.
나도 한때는 최강 동안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대학 4학년 때 화양동에서 나를 중학생으로 오인한 여고생한테 회수권(버스표)을 강탈당할 뻔했으며, 대학 졸업 후 단편영화를 찍던 흑석동에서는 길 가는 아주머니가 “고등학생이 학교는 빼먹고 왜 아저씨들하고 몰려다녀?”라며 이마에 꿀밤을 먹이셨다. 30대 초반의 조감독 시절에는 새벽 촬영을 끝내고 화장실이 급해 명동 파출소에 갔는데 경찰관 아저씨가 여고생이 이 시간까지 집에 안 가고 싸돌아다닌다며 혼을 내셨다. 지금은 이 모든 게 거짓말처럼 제대로 늙고 있다. 단언하건대 그때는 얼굴만 어려 보인 게 아니라 생각도 어렸다. 즉, 나잇값을 못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어려지고자 한다. 인터넷 인물 검색란에서는 나이를 찾는 게 힘들어졌다. 왜 나이 드는 걸 창피해할까? 왜 나이를 감출까? 젊음에 집착하는 노년은 젊은이들에게 존경받기 힘들다.
마지막 연습 날, 마리아가 시그리드 역을 맡은 까마득한 후배에게, 헬레나를 버릴 때 잠깐이라도 눈길을 주고 떠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자 “관객이 당신한텐 관심 없고 나만 볼 건데 뭐 하러?”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마리아는 후배에게서 20년 전 자기 모습을 본다. 저런 당돌함으로 헬레나를 무시했던. 자신이 여태껏 집착하고 내려놓지 않던 그것이 저렇게 가볍고 얄팍한 것이었다니…. 마리아는 깨닫는다. 젊음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장점만 있지는 않다는 걸. 그에 못지않게 나이 든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아니, 나이 들어 다행이란 걸.
공연의 막이 오른다. 마리아는 헬레나의 진가를 깨달을 수 있게 자신을 성숙시켜 준 세월에 감사하며 당당하게 무대에 오른다. 그녀는 나이 든 지금의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갖췄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난다.
나도 한때는 최강 동안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대학 4학년 때 화양동에서 나를 중학생으로 오인한 여고생한테 회수권(버스표)을 강탈당할 뻔했으며, 대학 졸업 후 단편영화를 찍던 흑석동에서는 길 가는 아주머니가 “고등학생이 학교는 빼먹고 왜 아저씨들하고 몰려다녀?”라며 이마에 꿀밤을 먹이셨다. 30대 초반의 조감독 시절에는 새벽 촬영을 끝내고 화장실이 급해 명동 파출소에 갔는데 경찰관 아저씨가 여고생이 이 시간까지 집에 안 가고 싸돌아다닌다며 혼을 내셨다. 지금은 이 모든 게 거짓말처럼 제대로 늙고 있다. 단언하건대 그때는 얼굴만 어려 보인 게 아니라 생각도 어렸다. 즉, 나잇값을 못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어려지고자 한다. 인터넷 인물 검색란에서는 나이를 찾는 게 힘들어졌다. 왜 나이 드는 걸 창피해할까? 왜 나이를 감출까? 젊음에 집착하는 노년은 젊은이들에게 존경받기 힘들다.
마지막 연습 날, 마리아가 시그리드 역을 맡은 까마득한 후배에게, 헬레나를 버릴 때 잠깐이라도 눈길을 주고 떠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자 “관객이 당신한텐 관심 없고 나만 볼 건데 뭐 하러?”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마리아는 후배에게서 20년 전 자기 모습을 본다. 저런 당돌함으로 헬레나를 무시했던. 자신이 여태껏 집착하고 내려놓지 않던 그것이 저렇게 가볍고 얄팍한 것이었다니…. 마리아는 깨닫는다. 젊음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장점만 있지는 않다는 걸. 그에 못지않게 나이 든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아니, 나이 들어 다행이란 걸.
공연의 막이 오른다. 마리아는 헬레나의 진가를 깨달을 수 있게 자신을 성숙시켜 준 세월에 감사하며 당당하게 무대에 오른다. 그녀는 나이 든 지금의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갖췄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난다.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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