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태법인보다 생태인이 먼저다
2003년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가 도롱뇽을 피해당사자인 원고로 하여 제기한 천성산 터널 공사 착공금지 가처분 소송은 도롱뇽이 당사자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소 각하 판결을 받았다. 현행법에 따를 때 환경권의 주체는 국민인 인간에 한정된다(헌법 제 35조 제1항).
여기에 서식지를 파괴당한 도롱뇽이나 산양 등이 환경소송의 원고, 청구인 등으로 들어설 여지는 없다. 하지만 세계는 이미 침팬지에게 인신보호 영장청구를 허용하고(아르헨티나), 강과 빙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등(뉴질랜드, 인도) 입법과 법 해석을 통해 이른바 생태·기후 문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잘 알다시피 코로나19 팬데믹을 야기한 생태·기후 등 복합위기 위기 앞에서, 이른바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산업 문명은 패러다임 전환을 강요받고 있다. 법 분야에서도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에 기초한 근대법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지구·생태 법 운동 등이 진행 중이다.
또 한편 파리 기후협약에 기반한 신기후체제 아래서 ESG 경영이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는 이상, 이 새로운 문법에 친해져야만 한다. 늦었지만, 우리도 제주 남방 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설립에 관한 논의가 물꼬를 텄다. 이제 전통적인 환경소송에서 앞으로 새롭게 정립된 생태소송으로, 그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동물 등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천명해야 하는 등 많은 과제가 놓여 있지만, ‘생태인’ 개념의 도입이 우선 필요하다. 동물에 권리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반드시 법인의 형식을 빌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는 자연인이 법인이 아닌데도 권리능력을 갖는 것과 정확히 같다(민법 제103조). 역사적으로도 법인에 앞서 먼저 자연인에게 권리능력이 주어졌듯이 개별 동물 역시 자연 그대로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지를 숙고해야 한다.
첫째, 동물의 생태적 위상 때문이다. 이미 현대과학은 동물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각, 지능, 의식을, 게다가 자의식까지 지니고 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또한 현대의 생태·타자 철학자들도 동물도 신체성과 영혼의 본성에서 인간과 동격일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법적, 윤리적 측면에서도 내재적 가치설, 다종 공동체설 등 동물에게 법인격을 부여해야 할 합리적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인공지능에도 ‘전자인’ 개념을 도입하여 법인격을 부여하자는 논의까지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현재의 사회 통념으로도 예컨대, 유인원을 ‘생태인’으로 부른다 해서 전혀 어색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둘째, 동물이 법적으로 가장 두꺼운 헌법적 보호를 받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동물의 권리를 헌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면 동물의 생태 자체에 헌법적 보호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 산물에 불과한 법인을 최고법인 헌법의 보호 대상으로 삼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이는 인간의 생명이 법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적 존재 그 자체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기껏 헌법 전문이나 기본권 조항에서 동물의 권리를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생태법인’이 그 주체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오히려 ‘생태인’ 개념 도입의 타당성을 방증한다.
셋째, 동물 보호에 자의적인 개입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법인’을 설립하는 데 불특정 다수의 동물을 모두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이상, 선별은 불가피하다. 이 선별에 인간종의 자의적인 개입을 배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뿌리 깊은 인간 중심주의,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자본적 이해관계 때문에 선별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선택받지 못한 대다수 동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보호의 사각지대라고 하기조차 민망할 만큼 많은 동물이 배제될 것이다. 물론 생태법인 제도의 한시적 유용성과 실천적 함의까지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법인격 부여만을 위해 법인 형식을 빌리는 것은 옥상옥일 뿐이다. 그러므로 ‘생태인’ 개념을 전제로 군체로서의 ‘생태법인’ 개념을 구상하는 것이 합리적·합목적적일 것이다.
사실 명실상부한 생태소송에 이르는 길은 지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최종목표가 생태법원의 설치까지 가야 해서다. 하지만 인간마저 멸종위기종이 되는 6차 대멸종의 위기 앞에서 시간은 이미 우리 편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의 도롱뇽이 ‘생태인’으로서 당당한 소송당사자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생태법인’에 대한 논의에 더해 ‘생태인’에 대해서도 공론장이 활발하게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윤영훈 변호사(광주변호사회 소속)·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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