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콧등 시린 한겨울에도 파릇파릇한 세상

2022. 11. 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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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오름학교는 <작지만 아름다운 오름 특집 : 우진제비오름, 까끄래기오름, 좌보미오름과 좌보미알오름, 돌미오름, 궁대오름, 문도지오름, 느지리오름> ]

[프레시안 알림]
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얘기합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모쪼록 송구영신하시길 기원합니다. 콧등 시리게 찬바람 부는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따뜻한 제주가 더 생각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육지에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때라도 상록수가 많은 제주는 한라산 산간이 아니고는 파릇파릇한 기운이 가득해서 찾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12월 오름학교 제22강에서는 쉽게 찾아가기 힘든 오름의 문을 두드려볼까 합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오름들이지만 모두 멋지고 예쁜 산체를 가졌고, 오르내리기도 쉬운 곳입니다.

▲따뜻한 빛깔의 느지리오름 정상 전망대Ⓒ이승태

오름학교(교장 이승태. 여행작가·제주오름 전문가) 제22강은 2022년 12월 16(금)-17(토)일, 1박2일로 <작지만 아름다운 오름 특집 : 우진제비오름, 까끄래기오름, 좌보미오름과 좌보미알오름, 돌미오름, 궁대오름, 문도지오름, 느지리오름>을 찾아갑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미리 제주행 항공편을 확인하시고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참가회원님은 자신과 동행자의 건강을 위해 최종 백신접종을 완료해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은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면서 제주 오름의 소중함을 얘기했습니다. 이는 제주도가 오름과 오름이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 곳이어서 제주를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알고 올라보아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들판 한가운데, 바닷가에, 작은 마을 뒤편에 순하디 순한 모양으로 솟아 제주의 자연풍광을 이룬 오름.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2017년 11월 개교하여, 아름다운 제주도 오름을 순례하는 <오름학교>는 격월로, 제주 자연풍광의 결정체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인 오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고 감상하고 있습니다. ‘오름’은 ‘산’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라산 산록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작은 화산체들을 이릅니다.

▲궁대오름과 굼부리 가는 길Ⓒ이승태

2022년 12월 강의를 준비하는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12월 16일 금요일 / 우진제비오름, 까끄래기오름, 좌보미오름과 좌보미알오름, 돌미오름, 궁대오름

굼부리 안에 맑은 샘이 솟는 곳
-우진제비오름
우진제비오름은 번영로가 지나는 조천읍 선흘2리의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장 북쪽에 우뚝 솟았습니다. 남쪽 번영로에서는 평평한 능선을 가진 원추형 산체 같지만 북쪽에서 보면 한라산으로부터 돌아앉은 채 북동쪽으로 굼부리가 벌어진 말굽형 오름입니다. ‘우진제비’나 ‘우전제비’라는 수수께끼 같은 오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습니다.

▲우진제비오름 북쪽으로 윗밤오름과 알밤오름이 보인다.Ⓒ이승태

우진샘을 엮어 다채로운 코스 가능
듬직한 산체를 가진 우진제비오름은 온 산이 숲으로 뒤덮였습니다. 남쪽 사면이 삼나무로 빼곡한 반면, 북쪽은 독특한 숲 분포를 보여주죠. 말굽형으로 벌어진 양쪽 능선을 경계로 서향한 사면은 활엽수가, 반대쪽은 삼나무가 차지해 컬러가 뚜렷이 구분됩니다.

이 오름은 들머리 찾기가 까다롭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들머리에서 1km 떨어진 오름 표석으로 안내하는데, 여기서 오름 자락까지 들어선 후에 오름을 왼쪽에 끼고 북서쪽으로 돌아가야 탐방안내도가 설치된 들머리가 나오죠. 탐방로는 서북쪽 능선을 타고 올라 화구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코스입니다. 탐방로 중간에서 굼부리 복판의 우진샘으로 길이 갈립니다. 오르내리는 구간은 다소 가파른 계단길. 서북쪽 능선에 데크가 설치된 정상이 있으며, 윗밤오름과 알밤오름, 거문오름이 도드라지는 선흘과 구좌의 너른 땅이 조망됩니다.

경계석을 단단히 쌓은 원형의 웅덩이 두 개가 붙은 우진샘은 사철 물이 마르지 않아서 옛날 가뭄이 들 때면 선흘은 물론 멀리 덕천 사람들까지 와서 물을 떠 갔다고 합니다.

산죽 정원 품은 순한 굼부리
-까끄래기오름
산굼부리 동쪽에 부록처럼 붙은 오름입니다. 지도를 펴 보면 산굼부리의 축소판처럼 보이죠. 오름의 북‧동쪽과 서쪽 사면 일부가 삼나무로 빼곡하고, 굼부리 안을 포함한 나머지는 활엽수와 관목, 초지대를 이뤘습니다. 오름 이름에 대해서는 알려진 설명이 없습니다.

까끄래기오름은 산체와 굼부리가 모두 동그랗죠. 밋밋한 화구능선의 북쪽이 정상이고, 상대적으로 낮은 남쪽으로 얕은 골짜기가 패어 있습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 작은 개울은 들판을 가로질러 동쪽의 천미천에 가 닿습니다. 초지대를 이룬 둥근 굼부리 안에 놀랍게도 산죽이 무성합니다. 어른 허리께를 넘는 산죽 사이로 길을 조성해 두어 마치 오름정원을 산책하는 느낌이죠. 가을이면 굼부리 둘레로 억새가 피어나 멋진 풍광을 연출합니다.

▲까그래기오름과 분화구Ⓒ이승태

산책하듯 굼부리 한 바퀴
오름 북쪽으로 비자림로가 지나기에 접근이 쉽습니다. 진입로의 포장도가 끝나는 곳 왼쪽에 차량 한두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거기서 바로 오르는 샛길도 보입니다. 오름 자체의 높이가 49m에 불과해 정서쪽 들머리에서 능선까지는 2~3분이면 닿습니다.

500m 남짓인 굼부리 둘레는 건너편이 훤히 보일 정도여서 정겹고요. 초지대를 이룬 북쪽 정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거기서 남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굼부리 둘레를 따라 탐방로가 이어집니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오솔길이어서 걷는 느낌이 좋습니다. 워낙 낮은 오름이어서 주변 조망이 시원스럽지 못하지만 한라산이 잘 보이고, 산책하듯 돌아보는 굼부리 한 바퀴가 부담 없이 기분 좋습니다.

제주의 바람이 만든 풍광
-좌보미오름과 좌보미알오름
지난 2019년 늦여름, 오름학교 제12강 때 찾았던 좌보미오름을 다시 가보려 합니다. 여름이던 그때는 온갖 들꽃으로 아름다웠지만 무성한 풀 때문에 고생도 했고, 주변의 초지대를 포함해 탐방하느라 좌보미의 정식 탐방로를 걷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풀의 기세가 누그러진 겨울에 정식 탐방로를 따라 좌보미를 둘러보려고요.

좌보미오름은 온갖 매력을 다 지닌 멋진 곳입니다. 백약이에서 들어서다가 왼쪽으로 펼쳐지는 초지대는 이질풀과 달개비, 쑥부쟁이, 여뀌에 수크령, 하늘지기, 엉겅퀴, 타래난초, 익모초 등 사철 아름다운 들꽃들로 환상적인 풍광을 펼쳐 보이고, 여러 알오름을 따라 무성한 억새는 야성미를 물씬 풍깁니다. 동검은이오름이 그 자락에 숱한 알오름을 품어 멋진 구릉을 보여주지만, 좌보미오름은 아예 수많은 구릉과 알오름 위에 떠 있는 듯하죠.

수많은 알오름과 이류구가 장관
백약이에서 좌보미를 보면 커다란 흙무더기를 쌓아놓은 것처럼 여러 개의 오름이 포도송이처럼 뭉쳐 있습니다. 금백조로에 면한 북사면은 단순하게 높고 둥그스름하지만 다른 방향에서는 크고 작은 봉우리 여러 개가 한 데 엉겨 붙은 형국입니다. 얼핏 보면 이것이 한 오름인지, 여러 오름이 모인 것인지 분간키도 어렵습니다.

가장 북쪽의 커다란 산체가 표고 342m인 좌보미 본 오름이고, 남‧서쪽으로 봉긋봉긋 솟은 대여섯 개의 봉우리들은 모두 좌보미의 알오름입니다. 알오름들은 저마다 별개의 오름으로 봐도 될 정도로 서로 또렷하게 구분되죠. 그 사이로 여러 개의 구덩이가 움푹움푹하고, 전체적으로는 남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을 보여줍니다. 동쪽과 백약이오름, 동검은이오름과의 사이엔 무수히 많은 이류구(泥流丘, 화산 폭발 때 산허리를 따라 이동하던 쇄설물들이 만든 언덕)가 볼록볼록합니다. 제주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죠.

▲좌보미오름과 알오름, 그리고 구릉들Ⓒ이승태

날것 그대로의 제주 풍광
좌보미와 알오름 탐방은 백약이오름 입구의 왼쪽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 농로를 따라 2km쯤 들어선 곳에서 시작됩니다. 승용차로 접근할 수 있지만, 농로가 낮아진 구간에 흙탕물이 고일 때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고요. 탐방 코스는 보통 북서쪽 알오름을 따라 좌보미에 올랐다가 반대편 능선과 이어진 남동쪽 알오름을 지나 출발지로 돌아오는 동선으로 이뤄집니다.

오르내림을 몇 번 반복하지만 주변에 말로 표현키 힘든 제주 들녘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운치 좋은 오솔길이 이어져 힘든 줄 모르고 걷게 되는 곳이죠. 알오름에 올라 조망하는 한라산과 그 품에 담긴 오름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기분 좋고, 명성 자자한 백약이와 동검은이, 높은오름도 가까이에서 눈인사를 합니다.

이 숱한 오름과 구릉, 굼부리를 품은 좌보미 본 오름은 막상 조망이 막힙니다. 대신 숲의 기운은 충만해, 제대로 삼림욕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알오름 사이엔 넓은 억새지대가 장관입니다. 때문에 이곳에 바람이라도 불면 좌보미오름 탐방 시간은 한없이 길어지고 맙니다.

▲돌미오름 굼부리 같은 동그란 구덩이 뒤쪽이 정상이다.Ⓒ이승태

길쭉한 능선 끝 동전 모양 굼부리
-돌미오름
그곳에 오름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궁대오름 동쪽의 낮고 작은 풀밭 오름입니다.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부드럽게 휘어지는 돌미오름은 능선 한 부분이 꼬리처럼 뻗은 데다가 봉우리에 큰 돌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낮은 언덕이나 구릉쯤으로 여기기 딱 좋은 모양입니다.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서쪽으로 풀밭 능선이 길쭉하며, 양쪽 끝은 도로에 닿죠. 정상 옆에 두 개의 봉우리가 더 있고, 그 사이는 얕은 골을 이뤘습니다. 동남쪽 봉우리에 오름 이름을 낳게 한 커다란 바위가 있다는데, 숲이 무성해 길에서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숨겨두고 찾고 싶은 들판 오름
정상 북서쪽 바로 아래에 동그랗고 편편한 모양의 구덩이가 눈길을 끕니다. 부러 심은 듯한 나무들이 낮게 원을 그리며 둘렀고, 나무 아래로 돌담도 보입니다. 굼부리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김종철 선생은 웅덩이라고 하네요. 이게 무엇이든 참 재밌는 모양입니다. 풀밭 오름이지만 소나무가 점점 잠식해가는 중입니다. 오름 북동쪽엔 풍력발전기 다섯 기가 우뚝 솟았습니다.

궁대오름에 접한 남서쪽에서 들어서는 게 길이 편합니다. 마소의 출입 통제용 문을 지나자 말 몇 마리를 묶어놓은 야외 우리가 나타납니다. 그 뒤로 무성한 억새 사이로 수레가 다닌 듯한 길이 이어지죠. 이 길은 부드럽고 완만하며, 사방이 트여서 걷기 좋습니다. 정상까지는 금방입니다. 풀밭 언덕 같은 정상에서는 북으로 다랑쉬와 손지·용눈이오름이 어우러지고, 동쪽으로 낭끼오름과 대왕산, 대수산봉 사이로 성산일출봉까지 풍광이 시원스럽습니다.

▲억새가 무성한 능선길. 왼쪽 멀리 돌미오름 정상이 보인다.Ⓒ이승태

자연을 잃은 동물들의 보금자리
-궁대오름
성산읍의 가장 깊숙한 내륙에 솟은 궁대오름은 표고 239m에 오름 자체의 높이가 60m쯤으로, 금백조로 옆에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산 중턱에 활 모양의 띠가 둘려져 있어서 궁대악(弓帶岳)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나무와 수풀이 무성해 이 띠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하늘에서 보면 서쪽으로 트인 굼부리 능선이 활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덩치가 크지 않은 궁대오름이지만 굼부리 안에 또 화산이 분출해 이중 화산체를 보여줍니다. 세 개의 밭이 들어선 평평한 굼부리 안에 무덤 몇 기가 자리한 알오름(212m)이 아담하게 솟았습니다.

현재 궁대오름엔 2017년에 문을 연 ‘제주자연생태공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을 가까이에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해설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맹금류와 물새, 산새를 보호하는 새장은 물론 곤충과 양서파충류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관과 제주의 노루를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야외관찰원에 넓은 잔디밭도 있습니다. 황조롱이와 말똥가리, 매, 독수리, 수리부엉이, 노루 등 이곳에 있는 동물 대부분은 자연에서 구조되어 보호받는 개체들로, 다시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에게 안전한 쉼터와 생활공간을 제공하고 있죠. 야생동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자연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고마운 곳입니다.

야외관찰원을 지나면서 편도 2.5km의 궁대오름 둘레길이 시작됩니다. 숲길을 지나 ‘오름전망대’에 들렀다가 정상에 오릅니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윤드리오름과 지미봉, 말미오름, 대왕산, 성산일출봉에 대수산봉, 낭끼오름 등 동쪽의 수많은 오름이 조망되어 눈이 즐겁습니다. 정상에서 굼부리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곧 ‘분화구전망대’가 나타나고, 여기서 출발지가 가깝습니다. 전체적으로 길이 순하고, 솔숲도 좋아서 부담 없이 둘러보기 좋은 오름입니다.

▲노루를 살펴볼 수 있는 야외관찰원. 관찰은 물론 먹이주기 체험도 할 수 있다.Ⓒ이승태

12월 17일 토요일 / 문도지오름, 느지리오름

곶자왈이 품은 생명석
-문도지오름
대정읍의 영어교육도시 북서쪽에서부터 저지리와 정물오름에 이르는 지역은 제주를 대표하는 곶자왈입니다. 무인지경의 곶자왈 지대는 보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감동을 주죠. ‘생명의 숲’으로 통하는 제주 곶자왈은 숲뿐만 아니라 숲이 올라선 땅의 속성도 규정짓는 말입니다. 곶자왈에 대한 최근의 가장 신뢰할 만한 정의는 ‘용암류로 이뤄진 크고 작은 돌무더기와 그 위의 숲이나 덤불’을 가리킵니다. 땅속 깊은 곳까지 빗물이 스며들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 숲을 키우는 곳이죠. 이처럼 숨 쉬는 땅 곶자왈의 깊은 곳에 문도지오름이 있습니다. ‘문도지’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알려진 유래가 없고요.

▲문도지오름과 끝모를 곶자왈 그리고 멀리 한라산Ⓒ이승태

올레코스를 따라 탐방하는 게 최고
오름 형태가 독특합니다. 동쪽으로 열린 말굽형 굼부리를 품은 산체가 신라 시대에 금관을 장식하던, 생명을 상징한다고 여긴 곡옥(曲玉)을 빼다 박았습니다. 또 생명의 숲 곶자왈과 탯줄로 이어진 자궁 속 태아 같기도 하죠. 그런데 옛사람들은 풍수지리의 시선으로 접근해 돼지 형국인 문도지가 좋지 못한 땅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묘를 쓰지 않고, 밭을 경작치도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는 오름 둘레로 밭이 빼곡하고, 산담도 몇 기 보입니다. 오름의 남쪽과 자락을 따라서는 삼나무가 울창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풀밭 능선입니다. 예전엔 억새로 뒤덮였다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죠.

덩치가 작고 낮은 오름이다 보니 탐방로가 짧고 단순해서 금세 둘러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름까지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 저지리에서 곶자왈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를 따라 3km쯤을 들어와야 하는데, 차량이 없다면 왕복 6km는 쉽지 않은 거리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곶자왈과 문도지오름을 거치는 제주올레 14-1코스를 따라 걷는 것입니다. 생명의 숲을 걷고 생명석을 닮은 오름에도 오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입니다.

곶자왈 바다에 떠 있는 섬들
남동쪽이나 북쪽 중 어디를 들머리로 잡아도 좋습니다. 남동쪽에서는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오르는데, 입구에 길을 내어준 마음에 고마움을 가지고 조용히, 청결하게 탐방을 해달라는 메시지가 걸려 있습니다. 삼나무가 많은 숲은 금방 끝나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풀밭 능선이 펼쳐지죠. 정상엔 이동통신 기지국 철탑이 서 있습니다. 풀밭 능선 어디서라도 조망이 최고입니다. 특히 굼부리가 열린 동쪽은 온통 곶자왈입니다. 여기서는 도너리와 정물오름, 당오름, 멀리 바리메와 한라산까지 모두 곶자왈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입니다.

북쪽의 산담 앞 수풀 속에 습지가 있습니다. 제법 널찍한 터에 물도 꽤 고였고요. 일대 들짐승과 날짐승에게 생명의 샘이겠다 싶습니다. 습지에서 북쪽 날머리가 가까운데, 풀밭 오름의 아름다움과 그 풍광에 취해 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문도지오름 남쪽으로 산방산과 바굼지, 모슬봉, 가시오름이 보인다.Ⓒ이승태

정상부에 깊은 ‘작박암메’가 둘
-느지리오름
한림읍 상명리 북서쪽에 솟은 느지리오름은 정상부에 두 개의 깔때기 모양 굼부리를 가졌습니다. 주변에 이렇다 할 명소나 여행지가 없어서 여행자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죠. ‘느지리’는 상명리의 옛 이름으로, 마을 이름이 오름에 붙었습니다. ‘느지리’의 의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봉수대가 설치되며 ‘망오름’으로도 불립니다. 오름 정상의 봉수대는 비교적 형태가 선명한데, 지금은 그 위에 산불감시초소 기능을 겸한 2층 구조의 목조 전망대가 세워졌습니다.

정비가 잘 된 2.2km의 탐방로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인 오름 가운데에 큰굼부리가, 바로 동남쪽에 작은굼부리가 붙어 있으며, 큰 것은 깊이가 78.2m, 작은 것도 49.8m로 꽤 깊고 가파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름 굼부리를 ‘암메’ 또는 ‘암메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느지리오름의 두 굼부리를 ‘큰암메’, ‘족은암메’로 부르죠. 달리 ‘큰작박암메’, ‘족은작박암메’라는 이름도 가졌는데, ‘작박’은 쪽박보다 큰 바가지를 일컫는 제주어입니다. 해송이 주를 이룬 숲이 오름 전사면을 감싸고 있으며, 상수리나무와 자귀나무, 밤나무도 자주 보입니다.

오름 남쪽의 도로 옆에 널따란 주차장과 화장실을 갖춘 들머리가 있죠. 크고 작은 두 굼부리를 가진 터라 느지리오름의 탐방로는 조금 복잡합니다. 그 모양을 하늘에서 보면 어머니 뱃속의 태아를 닮았다는 설명이 들머리 안내판에 적혔습니다. 탐방로 총 길이는 2.2km.

▲길섶에 핀 산국Ⓒ이승태

일몰이 아름다운 전망대
보도블록이 깔린 초입부를 따라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철망을 두른 시설물이 나오며 곧 길이 갈립니다. 여기서 오른쪽 길은 오름 자락을 동북쪽으로 휘감고 돌아 큰굼부리의 동쪽 능선에 올라섭니다. 평탄하고 걷기 좋은 오솔길이죠. 울창한 숲 사이로 파고드는 왼쪽의 너른 길은 곧 콘크리트 포장도가 야자매트로 바뀌고 폭도 조금씩 좁아집니다. 중간에 작은굼부리 능선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이 갈리기도 합니다. 친절하게도 갈림길마다 현재위치를 표시한 안내도가 서 있습니다. 곳곳에 벤치도 있어서 쉬엄쉬엄 걷기 좋은 오름입니다. 정상 전망대 주변을 제외하면 전 구간이 울창한 숲에 덮였고, 길이 넓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여름에도 걷기 좋습니다.
▲느지리오름 정상에서 본 일몰 즈음의 서쪽 풍경Ⓒ이승태

전망대에 오르면 큰굼부리의 깊은 구덩이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입니다. 저지오름처럼 새들의 보금자리여서 아침저녁으로 맑고 청아한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주는 곳이죠. 동쪽으로는 금오름과 도너리, 정물오름이 한라산을 배경으로 멋진 자태를 펼쳤고, 협재해수욕장 건너의 비양도부터 저지오름, 당산봉이 어우러진 서쪽 바다 풍광은 휴식같이 편안합니다. 특히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어서 때를 맞춰 부러 올라오는 이들도 많습니다.
▲오름학교 제22강 탐방 안내도Ⓒ오름학교

오름학교 제22강은 2022년 12월 16(금)-17(토)일, 1박2일로 제주도에서 열리며 12월 16일 아침 8시 50분 제주공항 1층 3번 게이트 오른쪽(공항 내부임)에서 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하여 오름학교 기사(12월)를 확인 바랍니다.

오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을 즐기려는 동호회원들의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프레시안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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