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삶의 흔적

2022. 11. 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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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생겼을까.

팔목 안쪽에 붉은 선이 하나 나 있었다.

어떤 것은 아직 붉은 기가 가시지 않았거나 어떤 것은 딱지가 앉았고, 또 어떤 것은 희미한 자국으로만 남아 있었다.

생체의 점막과 표피가 한여름, 살잎 두꺼운 나뭇잎처럼 성성하다면 웬만한 마찰과 부딪힘에도 끄떡없겠지만 얇아진 피부는 가벼운 압력과 마찰에도 금방 흔적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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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생겼을까. 팔목 안쪽에 붉은 선이 하나 나 있었다. 어디엔가 긁혔거나 나도 모르게 베인 상처이다. 가만 보니 그곳만이 아니었다. 다리고 팔이고 손이고 할 데 없이 온갖 곳이 상처투성이다. 어떤 것은 아직 붉은 기가 가시지 않았거나 어떤 것은 딱지가 앉았고, 또 어떤 것은 희미한 자국으로만 남아 있었다. 상처가 난 줄도 몰랐었다. 어쩌다 작열감이 들거나 가려워 들여다보면 그렇게 상처가 나 있었다. 우선 든 생각은 그거였다. 칠칠치 못하게. 조심할 일이지 얼마나 주의력이 없었으면 이렇게 몸 곳곳에 상처를 달고 살까. 상처투성이인 팔과 다리를 보고 있으려니 한심한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억울했다. 일부러 상처를 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조심성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처럼 생활했을 뿐이다. 한데 나도 모르게 다양한 상처들이 내 몸에 나 있었다.

나와 두 살 터울인 언니도 그랬었다. 나처럼 온몸에 생채기가 앉아서는 보기가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어떤 곳은 자꾸 뜯적였는지 딱지가 앉은 곳에 피까지 엉겨 있었다. 나는 언니가 주의력이 부족해 생긴 상처라고 생각했다. 조심성 없기는. 이게 다 뭐야? 나는 말로 언니의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입혔다. 그 말이 어떤 다른 상처들보다 더 아팠을 것이다. 그때 언니도 나처럼 자신도 모르게 난 상처를 보고 곤혹스러워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나는 답을 찾았다. 그 상처들은 노화 과정 중에 생긴 생활의 흔적이라는 것을. 내가 특별히 칠칠맞지 못하거나 언니가 조신하지 못해 생긴 생채기들이 아니란 거다.

나이가 들수록 피부가 얇아지면서 조그마한 충격과 마찰에도 금방 상처가 나곤 했다. 생체의 점막과 표피가 한여름, 살잎 두꺼운 나뭇잎처럼 성성하다면 웬만한 마찰과 부딪힘에도 끄떡없겠지만 얇아진 피부는 가벼운 압력과 마찰에도 금방 흔적이 남았다. 그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언니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늙어가는 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열심히 산 흔적이라고. 그러니 억지로 딱지를 떼려 하지 말고 잘 아물도록 놔두라고. 내가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알았더라도 이해만 할 뿐이지 공감은 부족했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그만큼 경험치가 쌓였다고 생각했지만 따져보면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 되고 만나는 풍경이 너무 생소하고 생경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알지 못할 여러 증상으로 당황할 때 누군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러니 너무 놀라거나 염려하지 말라고 일러주면 좋겠다. 요즘 들어 나는 매일 새로운 일들을 경험한다. 그러니 나는 매일 내 생의 첫 하루를 사는 셈이다. 그 하루를 잘 맞고 잘 갈무리해야 할 텐데. 그런 지혜가 나에게 있으면 좋겠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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