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징집병 “참호 파던 삽으로 이젠 동료 무덤을 판다”

정원식 기자 2022. 11. 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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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령 ‘대규모 희생’ 증언
“부대 570명 중 130명만 생존
지휘관은 포격 전에 도망가”
2주 훈련 후 총알받이 신세

지난 9월 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동원령에 따라 징집된 뒤 우크라이나 동부 전투에 투입된 러시아 징집병들이 대규모로 희생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가디언은 7일(현지시간) 이달 초 도네츠크주 전장에 투입됐다 간신히 살아난 알렉세이 아가포노프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러시아 남동쪽 보로네즈 출신인 아가포노프는 지난 10월16일 다른 570명과 함께 징집됐다. 징집병 부대 소속으로 지난 1일 도네츠크주 전선에 도착한 그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삽으로 밤새 참호를 팠다. 삽이 부족해 병사들이 교대로 작업을 했다. 작업은 다음날 새벽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중단됐다.

아가포노프는 가디언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한 대가 머리 위로 날아간 뒤 포격이 시작돼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계속됐다”면서 “눈앞에서 동료들의 몸이 찢겨나가는 걸 봤다. 부대원 대부분이 죽었다.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부대원 570명 중 130명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대 지휘관은 포격이 시작되기 직전에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포격이 멈추자 아가포노프는 살아남은 동료 10여명과 도네츠크주 마케예프카 외곽 숲속에서 러시아 점령지인 스바토베로 후퇴했다. 아가포노프는 “생존자들도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다. 아무도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7일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인근 트베리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동원령을 통해 징집한 군인 32만명 중 (전투 중인 인원 5만명을 포함해) 8만명 정도는 우크라이나 작전 지역에 있고 나머지 인원은 캠프에서 훈련 중”이라고 밝혔다.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이 아직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러시아군 내부에서는 징집병들이 훈련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전장에서 총알받이로 소모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러시아 병사는 이날 가디언에 “우리는 완전히 노출됐고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수백명이 죽었다”면서 “고작 2주 훈련으로 이런 상황에 대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전투에 투입된 니콜라이 보로닌은 러시아 탐사보도 매체 뵤르스트카에 “많은 병사들이 죽어서 여기저기 누워 있었다”면서 “참호를 팔 때 사용했던 삽으로 시신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장에서의 실패를 일선 지휘관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말 러시아 중부군관구 사령관 알렉산드르 라핀을 경질했다. 라핀은 지난 6월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의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나 지난달 푸틴 대통령 측근인 람잔 카디로프 체첸 공화국 수장이 “무능하다”고 공개 비난하면서 경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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