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묻고 들은 지역신문… '계란으로 바위 치기' 계속해보렵니다"
지역민에 다가간 부산일보·경남신문·매일신문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빨래방은? 질문 대상을 언론인으로 한정해 던져본다면 아마도 이 빨래방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지 않을까. 바로 부산일보가 지난 5월 부산 산복도로 호천마을에 문을 연 ‘산복빨래방’. 비록 지난달 31일 영업을 끝으로 부산일보가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잠시 휴지기에 돌입했지만, 반년여 사이에 산복빨래방은 ‘전국구급’ 화제 몰이를 하며 올해 지역신문이 내놓은 콘텐츠 중 단연 최고의 인기 ‘상품’에 등극했다. 여세를 몰아 지난 4일 열린 ‘2022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부산일보는 이날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지역신문 우수사례 공모전 시상식에서 옥천신문 ‘풀뿌리 언론이 이끈 지방의회 개혁’과 함께 공동 대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으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5회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산복빨래방은 뜨거운 관심 한복판에 있었다. 김준용 부산일보 2030팀장이 빨래방 이야기를 들려준 세션장엔 유독 많은 참가자가 몰려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참가자들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세탁비 대신 받는 산복빨래방의 독특한 운영 방식만큼이나 스스로 “전국 최초의 ‘팝업 스토어 저널리즘’”이라 명명한 기획에 거금 2000만원을 투자한 회사의 고민에 대해서도 많은 궁금증을 나타냈다.
신문사, 특히 지역신문에서 2000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설득 과정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산복도로를 조명한다는 사실이 부산에선 해묵은 숙제”였고, 이를 “젊은 시각으로 짚어보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컸다. 거기에 “산복도로를 조명하면 엄청난 조회수가 나올 거라는 거짓말(?)”이 통했다. 빨래방 앞치마 차림으로 연단에 선 김준용 팀장은 말했다. “회사는 속았던 것 같고, 조회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회사의 투자는 실패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산일보의 산복빨래방이 이번 컨퍼런스의 대주제이기도 했던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을 꿈꾸는 지역신문들에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건 그곳에 진심, 그리고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사전 심사를 거쳐 이날 발표된 총 28개의 지역신문 우수사례와 이 중에서 현장 심사로 선정된 수상작 10편을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역민에 더 가까이, 깊숙이 다가가는 “능동적 참여”와 “끈질긴 취재”가 지역과 지역신문의 ‘위대한 리셋’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지역민이 주인공인 이야기도 성공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경남신문의 ‘심부름센터’는 산복빨래방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다. 경남신문은 “지역소멸과 지역 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야심 찬 각오를 다지며 지난 7월 경남 의령군의 산자락 “오지 중의 오지”에 심부름센터를 차렸다. 마을 전체를 합쳐 스무 가구에 불과한, “성인 중 막내가 53세”로 고령화가 심각한 마을에서 도영진 기자를 비롯한 경남신문의 ‘마기꾼(마을기록꾼)들’은 마을 어르신들을 병원과 약국에 모셔드리고, 밭일을 돕고, 노래방 기계를 고치고, “차로 왕복 70분 거리 읍내에 나가서 냉면을 사 와서 대접”하는 등 다양한 심부름을 했다. 그리고 산복빨래방이 그랬듯 “심부름 삯으로 주민들과 지역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역소멸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큼, 관련 기획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9년부터만 해도 몇 차례나 관련 문제를 다뤘지만, 광범위한 취재를 하다 보니 정작 주민들 얘기는 많이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마을 일부가 돼서” 한 분 한 분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얘기”를 듣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3개월여 매주 두 차례씩 마을을 찾다 보니 “처음엔 왜 왔는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마을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돼 있었고, 소멸위기 지역주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사와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그 노력과 시도를 인정받아 경남신문 심부름센터는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번 기획을 “지역 초밀착형 ‘하이퍼 로컬 저널리즘’”으로 소개한 도영진 기자는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건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서 전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말하고자 한 기획”이라며 “부단한 콘텐츠 혁신이 필요한 시대, 서울지역 언론이 다루지 않는 이야기, 지역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온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금상을 받은 매일신문 ‘격차의 시대:구하라 시리즈-빈곤 동네와 주거 빈곤 아동’ 역시 소멸과 격차의 문제가 얽혀 있지만 ‘이만하면 괜찮다’는 체념에 갇힌 지역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호평을 받은 사례다. 매일신문은 ‘서울공화국’에 대비되는 소멸위기의 ‘지방’에서도 “‘개발’된 대구와 ‘소외’된 대구”의 격차 문제에 집중, 지역민이 겪는 애환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실제 이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역은 늙고 가난하다’는 피상적인 생각에 갇히지 않고 “개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접근했기에 가능했던 기획이었다. 배주현 기자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인용하며 “제각기 다른 불행의 이유에 주목하는 게 지역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배 기자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정말 진심으로 들었다”면서 “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무원과 시의원 등이 같이 움직여야 하고, 그 중간에 있는 게 기자라고 생각한다. 끈질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깊이, 더 가까이… 끈질기게 듣고 묻기
이런 끈질김은 지역신문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인력난과 경영난에 허덕이는 지역신문에선 소수정예의 인력을 장기간 기획에 투입하는 일을 지속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유튜브 등 당장은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김준용 팀장은 “생각을 바꾸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계속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영진 기자도 “신문이 잘 하는 걸 하면서도 그동안 안 했던 걸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배주현 기자는 “개인적으로 취재하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최근 국장과 차장에게 처음으로 ‘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조직이 폐쇄적이어서 ‘너 취재부터 하고 말해’ 이럴 줄 알았는데, 굉장히 도움을 많이 주셔서 놀랐다”며 “끈질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던져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지역신문 컨퍼런스 시상식에선 대상을 받은 부산일보와 옥천신문을 포함해 모두 10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금상은 매일신문의 ‘구하라’ 시리즈와 거제신문의 ‘거제역사달력’이, 은상은 경남신문의 심부름센터와 낭주신문의 ‘‘할말하않’이들을 위한 ‘군민의 쓴소리’’가 공동 수상했으며, 동상은 경남도민일보 ‘뉴비자: 뉴스비평 자신있게’, 인천일보 ‘디아스포라 도시, 인천에 온 이주민들’, 해남우리신문 ‘내가 분리배출한 페트병 하나가 지구를 살려요’, 당진시대 ‘남녀노소 미디어교육의 메카’ 등 4편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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