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기후지원책 내놨지만…개도국 “대출 아닌 보상 원해”[COP27]
피해국들 대출 형태 재정지원 불만…“에너지 식민주의” 비판
빈곤국들 기후대응 비용, 중국 제외해도 2025년 1조달러 추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정상회의에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과 취약국을 위한 기후피해 보상과 지원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개도국은 대출 형태일 가능성이 큰 지원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돕겠다’가 아니라 ‘보상 의무에 따라 책임진다’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유럽연합(EU) 등은 7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85억달러(약 11조8000억원)를 지원하는 ‘공정한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남아공이 석탄발전을 중단하고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결정된 내용이지만 구체적 투자계획은 이번에 공개됐다. 석탄발전이 전력 생산의 80%를 차지해 연간 탄소배출량이 세계 13위인 남아공은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른 지원이지만 남아공은 지원금을 전기차 전환에 쓰고 싶어 하고 선진국은 온전히 석탄발전 폐쇄에 쓸 것을 요구해 마찰이 있었다.
주요 7개국(G7)은 세네갈,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과도 유사한 협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영국은 2025년까지 개도국의 친환경 성장을 지원하는 계획에 기존보다 3배 증액한 15억파운드(약 2조4000억원)를 내놓기로 했다.벨기에도 모잠비크에 2023∼2028년 기후대응 자금으로 250만유로(약 34억7000만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자체적으로 1억7000만유로(약 2000억원)를 기후변화 취약국가에 제공하는 ‘글로벌 보호’ 구상도 제안했다.
선진국의 움직임은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과 피해’가 처음으로 기후총회 의제로 채택된 것에 따른 것이며 이번 총회의 성과로 꼽힌다. 하지만 선진국의 지원 형태, 규모, 내용을 두고 비판도 나온다.
가장 먼저 손꼽히는 문제는 선진국의 재정지원이 대출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영국 정보 사이트인 ‘클라이밋 홈 뉴스’에 따르면 공정한 에너지 전환 계획의 3%만이 보조금 형태로 지급되며 나머지는 민간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시장금리 이하의 대출, 보증 등으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다니엘 음미넬레 전 남아공 중앙은행 부총재는 지원 프로그램을 두고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했다고 르몽드가 전했다.
더 많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아 모틀리 바베이도스 총리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을 향해 당장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도서국과 개도국에 더 많은 자금이 조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취약국가가 IMF나 외국에 진 부채 상환을 일시 중지하고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는 화석연료 회사가 기후 지원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COP27 개최국인 이집트와 지난해 총회 개최국인 영국의 의뢰로 작성된 빈곤국의 기후대응 비용 추산 보고서가 이날 공개됐다. 보고서는 전 세계 개도국들이 화석연료를 퇴출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투자 규모가 중국을 제외해도 2025년 1조달러(약 1388조원), 2030년에는 2조4000억달러(약 3330조원)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는 이 비용 중 절반 정도는 당사국이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나머지 비용은 세계은행과 다국적 개발은행 등이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도국에 탈석탄을 요구하면서도 자국이 사용할 새로운 가스·유전 개발을 추진하는 선진국의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환경운동단체 ‘파워 시프트 아프리카’의 설립자 모하메드 아도는 기자회견을 열고 독일을 포함한 EU 국가들이 알제리, 세네갈 같은 아프리카 국가를 러시아를 대체할 “가스 충전소”로 확보하려 한다며 “우리는 에너지 식민주의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개도국과 취약국의 손실과 피해를 메우기 위해 지갑을 열겠다고 했지만 이를 보상 책임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부정적이다. 이 때문에 보상 문제를 전담할 책임 있는 기구나 기금을 만들기보다 양자 협약이나 기존의 대출 프로그램을 선호하고 있다. 비정부기구 ‘케어 프랑스’의 파니 프티봉은 “손실과 피해는 자선이나 연대의 문제가 아니다. 남반구에 대한 북반구의 기후 부채의 문제이며 갚아야 할 빚”이라고 르몽드에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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