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경찰 ‘공조 요청’ 2번 무시…신고자엔 “112 연락하라”[이태원 핼러윈 참사]
책임 미루다 ‘골든타임’ 놓쳐…경찰 특수본, 묵살 경위 조사
소방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경찰로부터 받은 공동대응 요청을 무시하고 신고자에게 “경찰관을 찾아가라”고 말한 세부 내용이 확인됐다. 압사 위험이 수차례 신고됐으나 경찰과 소방이 서로 책임을 미룬 탓에 결국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8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경찰은 참사 발생 시각인 지난달 29일 오후 10시15분 이전에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두 차례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경찰은 신고를 접수한 뒤 소방인력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공동대응 요청 버튼을 누를 수 있는데, 현장에 나간 경찰관들만으로는 핼러윈 인파를 통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자 소방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용산소방서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의 첫 번째 공동대응 요청은 오후 8시33분에 왔다. 신고자는 경찰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쓰러진다”고 알렸다. 이에 경찰이 소방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그러나 소방은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이 많이 다쳤냐”고 물었다. 신고자가 “다친 사람은 없다”고 하자 소방은 “그럼 무엇이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이에 신고자가 인파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소방은 “경찰관이 보이냐. 그러면 경찰관 통해서 다시 안내를 받으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소방은 오후 9시 두 번째 공동대응 요청에도 출동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에는 “이태원인데 인파가 너무 많아서 대형사고 일보 직전”이라며 “사람들이 밀려 사고가 우려된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에 경찰은 소방에 두 번째 공동대응을 요청했으나 소방은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부상자가 있는지, 구급차가 필요한지를 물었다. 이에 신고자가 “질서 유지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소방은 “경찰이 필요한 거면 112에 다시 연락하라”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일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전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공동대응 요청에도 출동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 공동대응 요청을 받고 신고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첫 번째 신고는 현장 교통 통제와 질서 유지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했고, 두 번째 신고는 ‘구급차가 필요하지 않다’고 확인해 소방 업무보다는 경찰 업무라고 경찰에 통보하고 종결했다”고 밝혔다. 질서 유지는 경찰의 업무라며 책임을 미룬 것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소방관도 인파 통제에 투입될 수 있다. 소방기본법 제24조에 따르면 소방본부장, 소방서장 또는 소방대장은 화재, 재난, 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 발생 시 위험 구역을 지정해 피난을 명할 수 있다.
경찰·소방·지방자치단체의 참사 부실 대응을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소방이 경찰의 공동대응 요청을 묵살한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로 소방서장 등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영주 변호사는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다만 공무원이 위법한 공무집행행위를 함에 있어서 고의나 중과실이 있으면 민사책임은 별도로 물을 수 있다”고 했다.
이홍근·권정혁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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