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만 차지해서 안 샀어요"…애물단지로 전락한 '텔레비전' [전원 꺼진 TV, 돌파구는 下]
스크린·프로젝터 인기의 '역설'
TV 판매량 줄고 프로젝터·스크린 판매 늘어
'스탠바이미, 더 프리스타일' 소소한 인기
TV 수요 둔화에 삼성·LG TV사업부 적자 행진
소프트웨어 시장 선점 초읽기
"유튜브 되는 스마트TV를 구매하려 했더니 200만원이 훌쩍 넘더라구요. 케이블TV 셋톱박스만 바꾸면 유튜브를 볼 수 있다고 해서 TV 사려던 계획을 접었습니다."(30대 주부 정혜진 씨)
"자리 차지하는 게 싫어서 혼수 가전에서 TV는 안 샀어요. 대신 초고화질(4K) 빔프로젝터를 샀죠.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고 성능도 만족스럽습니다."(20대 직장인 강수인 씨)
TV가 필수 가전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있다. 시장 혹한기가 예상보다 매섭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펜트업 효과(보복 소비)로 훈기가 돌았지만, 올해 들어 고물가·고금리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가계가 늘면서 TV 수요가 크게 꺾였다.
이러한 TV 수요 위축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게 진짜 문제다. 스마트폰을 위시한 영상기기 발전이 갈수록 TV 입지를 좁히는 모양새. 'LG 스탠바이미'·'삼성 더 프리스타일'처럼 전통적 TV 제품과는 다른 기기 형태의 스크린 제품들이 누리는 인기의 '역설'인 셈이다.
TV 판매량 ↓ 프로젝터·스크린 판매 ↑
8일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의 올해 1~10월 TV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줄었다. 온·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하이마트도 올해 TV 매출이 작년보다 10%가량 감소했다. 대신 TV를 대체하는 영상기기 판매는 늘었다. 지마켓에서 올 1~10월 사이니지(홍보 디스플레이) 판매량은 전년보다 72% 증가했고 프로젝터·스크린 용품 판매는 35% 뛰었다.
G마켓 관계자는 "주로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사이니지는 TV보다 더 밝은데 이를 선호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며 "집에 꼭 TV를 들여놓지 않아도 프로젝터나 스크린 같은 선택지가 생겼다. 이런 제품군이 보조기기 역할을 넘어서 화질이 개선된 데다 공간도 크게 차지하지 않아 소비자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대체재들 품질이 높아지면서 필수 가전이던 TV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게임 등을 탑재한 스마트TV, 초고화질 프리미엄 TV 등을 유인책으로 내놓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다.
메가 히트작은 사라졌지만 기존 틀을 깬 제품들이 인기를 끈다. LG전자의 무선 이동식 스크린 스탠바이미, 삼성전자의 포터블 스크린(휴대용 프로젝터) 더 프리스타일은 MZ(밀레니얼+Z)세대의 관심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스탠바이미는 지난해 7월 출시 이후 연말까지 품절 대란이 일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 프리스타일 역시 올해 초 출시와 동시에 품귀 현상을 빚었다. 두 제품 모두 성능과 디자인에서 MZ세대 취향을 저격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이같은 인기가 전체 TV 제품군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TV 업계에 오랜만에 나온 히트작으로 평을 받은 스탠바이미는 2세대 제품이 공개될 것이란 기대감도 흘러나왔지만 실제 출시되진 않았다.
실적 곤두박질…'TV플랫폼 사업' 돌파구 될까
실적은 곤두박질 쳤다. LG전자의 TV사업부는 올해 2분기 영업손실 189억원으로 7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3분기(영업손실 554억원)에는 적자 폭을 더 늘렸다. 삼성전자는 TV사업 실적을 따로 발표하지 않지만 올 3분기 적자를 기록했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4분기도 시장 환경은 녹록지 않다.
때문에 전자업체들은 당분간은 '돈이 되는' 프리미엄 모델에 집중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TV 수요가 전반적으로 둔화하는 상황이지만 초대형을 비롯한 프리미엄 TV 수요는 계속 성장할 것으로 판단, 프리미엄 제품 개발을 지속하기로 했다. LG전자도 올레드 TV 중심의 프리미엄 제품 판매에 집중키로 했다.
업황 부진을 이겨내기 위해 TV 사업 포트폴리오도 재편하고 있다. 개발·생산 등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인 TV플랫폼(OS)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타이젠', LG전자는 '웹OS'로 스마트 TV 플랫폼 사업 확장에 나섰다. 호주 기업 템포의 경우 타이젠을 적용한 TV를 지난 9월 출시했다. 튀르키예 아트마차, 중국 HKC 등도 타이젠을 적용한 TV를 튀르키예 등에 출시한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웹OS를 소프트웨어 패키지로 구성해 다른 TV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스마트 TV 플랫폼으로 웹OS를 선택한 브랜드는 지난해 20여 곳에서 올해 200개 이상으로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2분기 스마트 TV OS 시장 점유율은 구글 안드로이드가 43%로 1위다. 2위 삼성전자 타이젠(20.9%), 3위는 LG전자 웹OS(12.8%)로 집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TV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하드웨어 경쟁만으로는 더 이상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없을 거란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TV 플랫폼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전자업체들이 소프트웨어에 힘을 쏟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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