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정부에 … 죄책감은 시민 몫 [현장메모]

조희연 2022. 11. 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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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일상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난 4일 찾아간 정신건강의학 병원에서 어떤 일로 오게 됐는지 묻는 주치의에게 "회사에서 상담을 받으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어서 오히려 민망하다"며 이렇게 답했다.

왜 아무 잘못 없는 시민들이 죄책감을 느끼는지, 책임자가 떠넘긴 책임은 누구에게로 향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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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일상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난 4일 찾아간 정신건강의학 병원에서 어떤 일로 오게 됐는지 묻는 주치의에게 “회사에서 상담을 받으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어서 오히려 민망하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태원 (참사)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됐어요?”라고 의사는 되물었고, 별 고민 없이 답하려던 나는 “제가 그날…” 두 단어만 뱉고는 한참을 울었다. ‘아무 문제 없다’던 답이 거짓말인 것처럼.
조희연 사회부 기자.
30분간 진행된 상담 끝에 의사는 “죄책감 때문에 감정을 억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놨다. 나는 30일 오전 1시30분쯤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최대한 빨리, 가까이 있어야 하는 기자가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죄책감,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목이 터져라 도움을 요청했던 경찰과 소방대원, 시민들이 느낄 고통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죄책감’은 참사 이후 만난 시민들에게서 가장 자주 접한 감정이기도 하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가 문을 열기 전부터 헌화 대기줄에 서있던 30대 회사원은 “일이 손에 안 잡혀 연차를 내고 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참사 전날 그 골목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고인들에게 미안해했다.

죄책감이 가장 응축된 공간은 이태원역 1번 출구다. 출구 밖 길거리부터 계단을 따라 역사 안까지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포스트잇에 시민들은 ‘미안하다’는 말로 고인들을 배웅했다. 그날 무게를 견뎌주지 못해서, CPR를 했지만 살리지 못해서, 주변에서 술을 먹고 있었어서,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시민들은 적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 ‘무게를 버티지 못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글 밑에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 더 행복하게 치열하게 살아가요’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정작 고개를 숙여야 하는 책임자들의 사과는 더디게 나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은 참사 3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은 6일 만에 공식 사과했다. 사과보다 앞섰던 건 책임 회피였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었다고, 경찰 병력 배치 문제가 아니었다며 자신들의 책임을 지우기에 급급했다.

생존자와 시민들의 트라우마 치료 지원에 앞서 짚어봐야 한다. 왜 아무 잘못 없는 시민들이 죄책감을 느끼는지, 책임자가 떠넘긴 책임은 누구에게로 향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살아남아 미안하다는 시민들께 꼭 닿았으면 하는 말이 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요.”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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