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했는데”… 트라우마 겪는 소방관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장한서 2022. 11. 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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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의 날 60주년 맞아 대책 마련 촉구
이태원 참사 현장 출동 뒤 PTSD
폭언·폭행 신체적 고통도 시달려
10만명당 자살률 OECD 3배 ↑
“사회 안전 인력 확충해야” 목소리
완전한 국가직 전환 등도 강조

“사회 안전 인력을 확충하고, 소방관들 마음을 치유할 방안을 마련하라.”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공무원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가운데 소방공무원 노조가 사회 안전 인력 확충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거리로 나온 소방관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조합원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소방의 날’ 60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소방노조)는 ‘소방의 날(11월9일) 60주년’을 맞이해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소방노조는 “이태원 참사 때 소방관들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반면교사 삼아 사회 안전 인력을 시급히 충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방관들은 참사 현장에서의 참혹한 모습 때문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회견에 나온 서울 중부소방서 소속 권영준 소방관도 이태원 참사 이후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들것을 들고 희생자들을 수십번 옮기고, 사력을 다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권 소방관은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길거리의 젊은이들을 보면 희생된 청춘들의 창백한 얼굴이 떠오른다. 사력을 다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고 울먹였다. 소방관들은 PTSD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2017년 기준 자살률이 10만명당 31.2명에 달한다. OECD 평균(12.1명)의 3배에 가깝다.

소방관들은 폭행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한 해 동안 발생하는 구급 대원 폭행 건수만 200건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203건 △2020년 196건 △2021년 248건 △올해 1~6월 153건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된 경기 고양시 김모 소방관은 참사 이틀 뒤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참사 현장을 목격하고 정신적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현장에서 폭행을 당한 것이다. ‘숨을 쉬기 힘들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 소방관은 신고자였던 술 취한 육군 부사관으로부터 대뜸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계단에서 넘어져 십자인대가 파열되기도 했다. 올해 신혼 생활을 보내던 김 소방관은 폭행으로 인해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하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도 호소하고 있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이처럼 정신·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날 노조는 △사회 안전 인력 확충 △심리 치료 확대 △완전한 국가직 공무원으로의 제도 정비 등을 요구했다. 권 소방관은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출동 건수로 인해 근무 들어오면 밥 먹고 차 마실 시간도 없다”며 “인력 확충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노조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한 좌절감과 참혹한 현장은 소방관들의 기억 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센터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소방관의 마음을 치유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노조는 “2020년 소방관이 국가직 전환이 됐지만, 후속으로 따라와야 할 법과 제도 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사와 예산은 그대로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다”며 “소방관이 작은 생활안전 출동부터 국가적 재난까지 전 영역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할 수 있도록 완전한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되면서 소방관과 시민들 사이에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김길중 소방노조 사무처장은 “용산서장님은 하위직 직원들에게 굉장히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이번 사고로 입건돼 안타깝다”고 했다. 최 서장이 당시 현장을 수습하고 손을 떨며 브리핑하던 모습이 화제가 된 만큼, 네티즌 사이에서는 “일선에서 구조하느라 애쓰고도 입건됐다” 등의 반응이 많다. 하지만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최 서장이 경찰과 공동 대응 요청을 주고받으며 현장에 출동하는 과정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소방청은 이태원 참사 현장 출동 소방공무원의 PTSD 예방 및 심리적 불안감 해소를 위해 긴급 심리지원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는 “대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은 곧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한치의 소홀함 없이 하겠다”며 “앞으로도 소방 공무원의 마음건강 증진을 위한 예산 확보 및 프로그램 확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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