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통영 부채, 미선의 맥을 잇다…‘선자장’ 구영환
[KBS 창원] [앵커]
과하지 않은 가을바람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부채 바람을 닮았습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기능 못지않게 장식용, 의례용으로 두루 활용됐는데요.
통영의 부채 미선을 지켜온 장인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정성껏 만든 부채, 미선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있어서 높은음자리표를 한번 나타내 봤습니다. 학의 등 위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 자개로 만든 이런 부채도 있고 한번 들어보세요. 투박한 것 같아도 가운데 허리가 개미허리 모양으로 잘록잘록한 게 손을 잡아보면…."]
주목나무로 품격을 더하며 선자장은 부채와 50년을 동고동락했습니다.
통영 마지막 선자장의 공방입니다.
부채는 크게, 둥근 방구부채 '단선'과 접을 수 있는 '접선'으로 나뉘는데요.
단선인 통영 부채는 물고기 꼬리를 형상화한 미선입니다.
["흔히 아름다울 ‘미’ 자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꼬리 ‘미’ 자예요."]
더 미세한 세미선이 있을 만큼 통영미선은 부챗살이 가는 것이 특징.
통제영 12공방의 영향으로 선면이 부드럽고 손잡이도 화려합니다.
[구영환/선자장 : "부드러우니까 적은 힘에도 살랑살랑하는 거죠. 어디 한군데 딱 평평한 곳이 없고 다 곡선을 돌아가면서…."]
가는 부챗살과의 조화를 고려한 섬세한 손잡이는 30종 이상으로 종류도 많고 의미도 각별합니다.
[구영환/선자장 : "석류는 다산 이런 의미거든요. (나비는) 부귀를 나타내는 것이거든요. 쌍죽인데 대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 모양이거든요. 나란히. 당파싸움 하지 말고 좀 사이좋게 지내라는…."]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던 통영미선은 용도도 다양합니다.
[구영환/선자장 : "보기 싫어서 싫다든지 할 때 살포시 가리고 이렇게 가고, 또 햇빛이 강하면 싹 가릴 수도 있고 비가 내려도 또 살며시 가릴 수도 있고…."]
부채를 처음 만든 때가 17살, 1972년 제대 후 50년간 줄곧 부채를 만든 이유는 통영미선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영환/선자장 : "사랑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 정신적으로 딱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
해풍을 맞고 자란 3년생 대나무는 수분이 적은 한겨울에 채취해야 탄력이 좋습니다.
물려받은 칼의 연륜만 100살.
절반이 닳아 없어졌지만 여전히 장인과 한 몸을 이룹니다.
[구영환/선자장 : "이런 정도의 칼이 모양이 있던 거예요. 이렇게. 이 모양이 쓰다 보니까 닳아가지고…."]
쪼갠 대는 송진과 백반, 소금을 넣어 30분 이상 쪄서 내구성과 탄력을 살립니다.
다음으로 가는 부챗살이 될 때까지 2분의 1씩 쪼개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이때 손은 최고의 연장.
손의 감각으로 두께를 조절한 뒤 다시 칼로 긁어 오차를 최소화합니다.
[구영환/선자장 : "두터우면 이렇게 밀고 얕으면 또 이렇게 밀고 조절해 가면서 합니다. 높낮이가 똑같이 딱 나오죠? 여러 가지를 초집중해야 합니다. 눈의 초점을 조금만 떼면 이상해져요."]
1mm가 채 안 되는 부챗살 두께를 일정하게 만든 뒤 똑같은 간격으로 붙이는 과정입니다.
손잡이는 편백, 향나무, 느티나무, 가죽나무 등 무늿결이 고운 나무를 쓰는데요.
세밀하게 깎아 사포질만 다섯 단계….
장인의 손은 훈장처럼 통증을 달고 삽니다.
[구영환/선자장 : "세계적으로도 저만큼 부채 손잡이를 많이 가진 곳은 없을 겁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직업병이 생겨서 엄지가 젓가락질을 못 할 정도로 요즘 병이 나버렸어요. 손이."]
우포 람사르총회 기념 부채부터 통영의 섬을 담은 부채까지 그의 부채에선 전통과 현재가 만납니다.
옻칠로 자연미를 살리고 나전으로 멋을 더하는가 하면 부채로 따뜻한 말을 건넵니다.
[구영환/선자장 : "청풍 세심. 맑은 바람으로 마음을 씻는다…."]
통영미선의 맥을 잇는 50년 부채 사랑엔 특별한 철학이 있습니다.
[구영환/선자장 : "혼이 빠졌다고 해요. 부채에. 부채한테 반했다고 할까요? 아주 귀하게, 귀하게. 좋은 부채는 좋은 벗하고 나눌 정도가 돼야지 아무나 주는 게 아닌 거죠."]
좋은 사람과 나누는 귀한 선물, 선자장이 미선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KBS 지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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