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기후재정 매년 2조달러 필요…“대출 아닌 무상 지원을”

신기섭 2022. 11. 8. 19: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샤름엘셰이크 현장][제27차 유엔기후변화총회]
카리브해 바베이도스 모를리 총리 일갈
바베이도스의 미아 모틀리 총리가 지난 9월 유엔 총회 일반토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인 바베이도스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위협을 받고 있다. EPA 연합뉴스

“우리는 변화할 수 있는 집단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전염병이 덮쳤을 때 2년 안에 백신을 찾았고,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게 무언지 알고 있다. 그러나 약속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이행하고 사람들의 삶을 확실히 변화시킬 정치적 의지가 이곳에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민 생존이 위협받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베이도스의 미아 모틀리 총리는 차분하게 연설을 이어가던 중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모틀리 총리가 가볍게 쥔 주먹을 가슴 앞에서 흔들며 강경한 어조로 말할 때,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손을 볼에 댄 채 골똘히 듣고 있었고, 이번 총회 의장국인 이집트의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후위기의 절벽에서 세계 공동의 노력을 모색하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사흘째인 7일(현지시각) 모틀리 총리는 13분가량의 총회 연설에서 기후변화 피해를 입은 개도국들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 수반, 부통령 등 각국 지도자 1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우리가 (지난해 당사국총회가 열린) 글래스고에서 만난 이후 12개월 동안 일어난 파키스탄의 종말론적 홍수, 유럽·중국의 폭염 등을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모틀리 총리는 연설에서 “덴마크와 벨기에, 스코틀랜드가 (기후위기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 원칙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방식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스코틀랜드가 주최한 별도의 행사에서 모틀리 총리는 선진국의 개도국 지원이 대출 형태가 아니라 무상자금 제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접근법이 실현되지 못하면 기후난민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는 “현재 2100만명 수준인 기후난민이 2050년에 10억명에 달할 것을 우린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선진국은 인도적 지원이나 대출 형태로 개도국의 탄소 감축과 에너지 전환, 기후변화 피해 예방 등 활동에 자금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손실과 피해에 대한 선진국의 재정 지원’이 공식 의제로 채택되는 등 산업혁명 이후 기후변화를 일으킨 선진국에 법적 책임을 묻고 피해를 보상하라는 요구가 높아졌다. 모틀리 총리는 “우리(개도국)의 피와 땀, 눈물이 산업혁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했다”며 “우리가 이제 산업혁명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의 대가도 치르는 이중의 위험을 겪어야 하는가? 이는 근본적으로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개도국이 기후변화 피해를 예방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영국과 이집트가 공동 작성해 이번 당사국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개도국 지원을 위해 2030년까지 해마다 2조달러(약 2770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분석됐다고 <가디언>이 이날 보도했다. 이 수치는 중국을 뺀 모든 개도국의 필요 자금을 계산한 것으로, 지금까지 분석된 개도국의 기후재정 필요재원 중 가장 높은 액수다. 이 보고서 저자인 영국의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은 “앞으로 10년간 대부분의 에너지 인프라 건설과 소비의 성장은 개도국 같은 신흥시장에서 발생할 것”이라며 “이들이 화석연료에 의존하게 되면 세계는 기후변화 위험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선진국은 조금씩 지갑을 열고 있다. 독일은 1억7천만유로(2360억원)를 내놨다. 기후변화 취약국을 지원하는 ‘글로벌 보호’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도 기존보다 3배 증액한 17억달러(2조3500억원)를 개도국의 친환경 성장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유럽연합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85억달러(11조8천억원)를 지원하는 ‘공정한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과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은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막대한 보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7일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손실과 피해에 대한 의심이 들면 (기후변화로 최악의 홍수 피해가 발생한) 파키스탄에 가라고 총리가 말씀하셨다”며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손실과 피해를 인정하고 다룰 수 있는 선명한 로드맵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샤름엘셰이크/김규남 기자 3string@hani.co.kr, 신기섭 기자 marishin@hani.co.kr,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