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칼럼] 꿀잠과 단꿈, 그리고 꿈 없는 대통령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꿈이 늙어간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장래 가구 추계에 따르면 2050년 65살 이상 고령자 가구 비중이 50%를 넘어서는 시·도가 10개에 달할 것이라 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다. 하지만 고령화를 비난해선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는가? 문제는 꿈이 늙어간다는 것이다. 나이 든 이들은 50년 뒤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을 이들이 하는 것이 문제다.
꿈꾸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신경과학자 매슈 워커는 꿈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서적, 정신적 건강을 함양시키며 문제 해결과 창의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 세상 모든 변화는 꿈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류, 세계 10위 경제대국, 역동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칭찬은 과거 뿌렸던 꿈의 씨앗이 자라나 맺은 열매다. 엄혹한 일제강점기,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해도/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고/ 초인을 기다리던 이들이 있었다. 기나긴 군사독재 시절에도 젊은 학생, 노동자들이 ‘어머니 해맑은 웃음의 그날을 위해’ 결코 싹이 틀 것 같지 않던 아스팔트에 피 흘려 꿈을 심었다. 그때는 노동자와 대학생의 꿈이 다르지 않았다. 매일 새벽마다 신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기도를 올리시던 오 할머니를 살게 한 것은 6·25 전쟁 때 북에 놔두고 온 외아들을 다시 만날 꿈이었고, 난 지문 없는 사람이라 허허 웃는 구둣방 허씨 아저씨도 딸 대학 보내는 꿈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제 젊은이들은 꿈꾸지 않는다.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서 가져온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과 냉장고의 얼린 밥을 녹여 먹고 잠든 청년은 아름다운 꿈을 꿔본 적이 없다 말한다. 그나마 가져본 소박한 꿈은 철로 쇳밥과 밀가루 반죽 속에 묻히고 높은 공사장 비계 위에서 비틀대다 몇십m 아래로 추락했다.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 믿지 않은 청년들이 그래도 몇줄 써보려던 해방일지는 좁은 내리막길에서 선 채로 숨쉬기를 멈추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꿈꾸지 않는 세상은 절망과 자조만이 넘친다. 개인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해가 지지 않을 것 같던 제국의 몰락도 꿈의 상실에서 시작됐다. 무엇보다 청년이 꿈꾸지 않는 세상에 희망은 없다.
꿈 없는 대통령도 문제다. 대통령이 되는 것 이외에는 꿈이 없었던 이는 그것을 이루고 나니 더는 꿀 꿈이 없다. 20~30%대 낮은 지지율이 못내 불안한 대통령이 단잠을 잘 리 없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4시간 이하로 잠을 잔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사고 날 확률이 11.5배 증가하고 암, 심장마비, 뇌졸중의 확률도 급격히 증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잠자지 않으면 꿈꿀 수 없다. 자기 전 폭탄주도 숙면을 방해한다. 아침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달라붙는 것은 애완견밖에 없다. 오죽하면,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면 질병관리청을 압수수색할 거라는 농담이 거리에 횡행한다. 대개 이런 이야기는 오기, 집착의 악순환 속에 광기로 끝난다. 유엔 총회 11분 연설에 ‘자유’를 21번 외쳤던 대통령이 풍자만화를 그린 고등학생과 싸우고 시민단체 사찰 논란까지 있으니 이미 그 광기가 시작됐는지 모른다. 그래서 두렵다. 하여 부디 기억하라! 불면에 시달리던 또 다른 대통령은 낮에도 침대에 머무르는 일이 잦다가 끝내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더욱이 영화의 후속편은 첫번째 편보다 재미없을 가능성이 크다.
꿈이 없는 자는 다른 이의 꿈을 팔기도 한다. 대통령 바뀐 지 몇달 지나지 않았는데, 수십년 소중히 가꿔온 한반도 평화의 꿈은 다른 나라로 팔려나갔다. 지금 한반도에는 서로 쏘아대는 포격 소리와 화약내가 진동하고, 하늘 위로 다른 나라 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며 날고 있다. 코로나 유행 때 따뜻한 서로돌봄의 꿈으로 헌신했던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제일 먼저 구조조정으로 잘려나가고 사회안전망 예산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 지금 그 빈자리를 메우는 건 방위산업 지원, 의료영리화, 부자 세금감면 등 대자본가, 무기판매상, 부자들의 탐욕스러운 꿈들이다.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꿈을 닮아간다.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이 지났다. 한겨울, 죽은 나무와 산 나무를 구별하는 것은 마른 가지 속에 봄의 꿈을 간직하고 있느냐다. 꿈의 화가로 불린 르네 마그리트의 말처럼, “꿈이 일상의 변형이라면 일상 또한 꿈의 변형이다”. 언제쯤이면 우리 젊은이, 여성, 장애인, 학생, 노동자들이 꿀잠을 자며 단꿈을 꿀 수 있을까? 꿈이 늙어간다. 미안하고 염치없지만, 추운 한겨울에도 푸르던 청년들의 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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