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없었던 위기는 아니다

전슬기 2022. 11. 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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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레고랜드발 시장 경색]

강원도 춘천시 레고랜드 테마파크.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전슬기 | 경제팀장

최근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사태’로 한국 경제에 불안감이 고조됐다. 건건이 보면 단순한 사건들이 전체 경제까지 뒤흔들게 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커지고 있던 위험들에 ‘트리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사건들이 촉매제가 됐을 뿐, 애초 없었던 위기가 생긴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레고랜드 사건 이면에는 지난 약 8년간(2014∼2022년 6월) 189.2% 급증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존재한다. 개발사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자금을 미리 빌려주는 방식이다. 통상적으로 ‘시행사(차주)→건설사 등 보증→대출기관 대출→유동화회사(SPC)에 채권 양도→증권사 보증→채권 토대로 자산유동화증권 발행→투자자 매각’ 등 복잡한 구조가 형성된다. 첫 단추인 부동산 개발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도미노식으로 위험해지는 구조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부동산 피에프 대출이 가장 큰 잠재 위험으로 꼽혔던 이유다.

9월28일 레고랜드 사건은 아슬아슬한 상황에 기름을 끼얹었다.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유동화회사(아이원제일차)를 세운 뒤 2050억원을 차입했고, 아이원제일차는 대출 자산을 담보로 비엔케이(BNK)투자증권을 통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채무보증을 선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을 발표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나비효과는 순식간이었다. 지방정부가 보증을 서도 문제가 생긴다는 공포감에 부동산 피에프 시장 전반에서 자금 조달이 끊겼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둔촌주공조차 차환 발행에 비상이 걸렸다. 또 지자체가 보증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이 부도가 나자 기업어음(CP)과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이 거래되는 단기금융시장에서도 기업들이 급전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장기금융시장도 대혼란이다. 이미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우려로 국고채와 회사채(AA-등급) 3년물 간 스프레드는 올해 6월 중순부터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다. 회사들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때 무위험으로 여겨지는 국고채보다 훨씬 비싼 이자를 줘야 한다는, 그만큼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얘기다. 레고랜드 사건이 터지자 스프레드는 지난 7일 1.51%포인트로, 2009년 금융위기 수준까지 벌어졌다.

시장의 취약한 구조도 드러났다. 올해 들어 채권시장에서는 신용등급이 높은 특수채, 은행채 발행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기관들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국제유가 급등 등으로 적자를 메우기 위한 한국전력공사 공사채가 대표적이다. 레고랜드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드는 투자 수요를 놓고 공기업, 금융기관, 일반 기업 등이 자금 조달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아우성을 촉발했다.

지난 1일 흥국생명보험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연기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흥국생명이 지난 7일 조기상환하기로 태도를 바꿨으나, 공포는 여전하다. 정부는 공기업과 금융기관 등에 국내 채권시장 수요가 너무 적으니, 국외 채권 발행을 유도해왔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국내 채권시장의 ‘큰손’인 보험사들의 위기는 자금시장 경색도 심화시킬 수 있다.

전체 흐름을 종합해보면, 여러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이루는 모습이다. 다행히 국가신용도 위험 수준을 나타내는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외국환평형기금채권 5년물)은 70bp대(1bp=0.01%포인트)로 금융위기 때(약 700bp)보다 양호하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증폭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이 ‘자기실현적 위기’를 불러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위기가 온다’는 과도한 공포로 투자 수요가 계속 줄면 오지 않을 수 있던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다. 현재는 돈을 거둬들이는 긴축 시기라 과거 경제위기와 달리 쓸 수 있는 정책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고민해봐야 한다. ‘시장 교란’이 된 한전 적자에 관해서도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할 때다.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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