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 옆 경찰서' 제작사 스튜디오S, 故 이힘찬 PD·유족에 공식 사과
유족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및 SBS본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민주노총법률원 등으로 구성된 ‘스튜디오S 故 이힘찬 프로듀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는 고 이힘찬 프로듀서가 사망한지 9개월, 노사공동조사에 착수한지 7개월 여 만인 8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노사공동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고인 사망 후 유족과 대책위는 노사공동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했지만 스튜디오S 회사 차원의 자체 조사 계획, 모회사인 SBS 사측의 참여 여부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공동조사가 늦춰지다가 3월 28일 공동조사위 첫 회의를 개최했다. 유가족 대표, 노조, 사측이 참여한 공동조사위는 4월부터 6월 초까지 30여 명의 동료와 드라마업계 관계자들에 대한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공동조사위는 면접 조사와 자료 조사를 토대로 한국 드라마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고인이 근무했던 사업장 환경, 드라마 프로듀서의 직무스트레스 요인, 고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 비극의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대책에 합의해 보고서에 담았다.
공동조사위는 조사 결과 “평소 업무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컸던 고인이 부족한 예산 범위 내에서 작품을 무사히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 촉박한 편성 일정으로 인한 불안, 화재 및 사고 장면 촬영이 야기한 돌발변수 대응 등으로 업무상 스트레스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폭됐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고인의 사망이 업무상 스트레스에 의한 것임을 명확히 했다. 특히 “본격적인 촬영 돌입 이후 거의 매일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더해져 더 이상 프로듀서 개인이 감내하기 어려운 극단적 상황에 내몰렸으나 회사 차원의 고충처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조사위는 “방송사들의 드라마 제작 자회사 설립 확산, 노동시간제도 변화, 코로나 펜데믹에 따른 드라마 소비 증가와 관련 산업의 폭발적 성장, OTT 플랫폼 영향력 증가 등 최근 급변한 드라마산업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들이 ‘소옆경’에 응축됐다”고 평가했다. 고인의 동료들도 부족한 예산, 납기(편성) 압박, 인력 부족, 고충처리 시스템 등을 지적하며 업무 수행과정 상의 구조적 문제들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유족, 노조, 사측은 진상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도출했다. 시급한 과제로는 ‘적정 제작 기간 확보’를 꼽았다. 연출자와 프로듀서의 의견을 반영해 첫 방영일로부터 최소 6개월 이상 12개월 범위 안에서 사전 제작기간을 설정해 편성(납비)압박을 완화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경영진이 연출자와 프로듀서 등 제작진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분쟁을 적극 해결하고 현장 고충을 정기 점검하도록 했다. 또 안정적인 인력확보를 위한 채용 및 교육훈련 체계 구축, 회사 차원의 직무스트레스 관리시스템 도입도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았다. 직무스트레스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 체계, 월1회 심리 상담의 날, 긴급휴가제 도입이 세부 내용에 포함됐다. 근본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고 최소 휴식 시간을 의무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제작 기간 중에라도 필수 휴일을 보장하고 휴식일과 업무 종료 후에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 ‘상시 대기’체계를 해소하도록 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많은 혼선을 일으키는 노동시간 공통 운영 지침(52시간지침)과 현장 안전관리 지침을 수립해 시행하기로 했다. 고충처리 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도록 업무 고충을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함께 해결하는 분위기와 구조를 만들기로 했다. 위 내용들은 노사가 ‘스튜디오S 드라마제작준칙’으로 제정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7일 오후 유족과 스튜디오S 사측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고인의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리고 대책위 활동에 함께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김영민 센터장, 언론노조 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사측을 대표해서는 한정환 대표이사와 김동호 경영국장 등이 참석했다. 한정환 스튜디오S 대표이사는 이 자리에서 “공동조사를 통해 회사 제작시스템을 성찰하고 고 이힘찬 프로듀서가 겪었을 고통을 엄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였다”면서 “유가족분들께 깊이 사과 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아울러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약속드린 개선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고민의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유족은 “아직도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고인 사망 전후 회사의 모습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일을 하며 겪는 압박과 부담을 개인에 지우지 말고 조직과 회사가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사측에 거듭 강조했다.
오는 12일 예정된 ‘소방서 옆 경찰서’ 첫회 방송에는 고인에 대한 추모 메시지가 게시된다. 최종회 마지막 장면에는 고인의 사진과 추모의 뜻이 실린다. 회사 차원에서 매년 고인에 대한 추모 의식도 진행하기로 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고인의 기일을 ‘조합원 안전의 날’로 지정해 일터 안전과 조합원 건강을 위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고 이힘찬대책위는 공동조사 보고서 발표 후에도 당분간 활동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스튜디오S 사측이 유족 및 대책위와 합의한 고인에 대한 추모 및 현장 개선 방안을 성실히 이행하는지 점검하고 평가한다. 또 이번 개선방안이 스튜디오S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제작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현장에 널리 알리는 노력도 해나갈 예정이다.
김가영 (kky120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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