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루즈벨트의 죽음, 심장병 연구의 시작

2022. 11. 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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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 서울시 서북병원장

루즈벨트는 1921년 39세의 늦은 나이에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이 마비된 아픔을 극복하고 1932년 대통령에 취임한다. 하지만 그는 평소에 고혈압과 협심증을 앓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협심증은 계속 진행되어 1944년 가을에는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심부전 상태가 되었다.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1945년 2월에 무리하게 크림반도까지 가서 얄타회담에 임했고 결국 2개월 후인 4월 12일 뇌출혈로 서거했다.

그의 죽음은 전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의 죽음을 계기로 1948년 미국 의회에서 '국민심장법'이 통과된 결과로 국립심장연구소가 세워졌다. 그리고 심장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당시 인구 2만8000명의 소도시 프레이밍햄에 주목했다. 중산층 위주의 공업도시로 주로 서유럽계 백인으로 구성됐고 주민의 대부분이 단독주택에 사는 중산층이었다. 소득도 비교적 균일하여 고기와 감자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며 인구의 절반이 흡연자였다. 2차대전 직후의 미국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도시였기에 미국인을 대표하여 연구하기에 적절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을 대상으로 30세에서 59세 사이의 건강한 성인 5000명을 10년 이상 관찰하게 된다. 당시 인구를 감안하면 이 연령대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연구에 동참하면서 기꺼이 개인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연구진들은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연구에 대해 홍보를 했고 신입 연구원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설득시켰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어떤 대가도 없이 개인 이력과 가족력, 습관, 정신 상태 및 약품 복용에 대해 꼼꼼히 기록했고 각종 검사를 받았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기준은 점점 엄격해져서 오류가 개입될 여지를 최소화했다. 그리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3000편 이상의 논문이 작성되어 발표됐다. 지금은 고혈압, 흡연, 콜레스테롤 증가, 당뇨 등이 심장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심장병으로 죽는 것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당시로서는 심장병을 유발하는 위험인자가 있다는 자체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심장병 뿐만 아니라 당뇨, 암 등 다양한 질환을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또한 심장병 위험인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예를 들어 1959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인도 출신으로 미국에 이민 온 남성들은 혈압과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낮고, 흡연을 덜 하며, 채식을 자주 하는데도 불구하고, 프레이밍햄 조사에 참여한 남성들보다 조기에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4배가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프레이밍햄 연구가 하나의 기준이 된 것이다.

이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연구의 결과 지금은 심장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담배를 끊고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됐거나 기름진 음식을 피하며 비만을 관리하며 적절한 운동과 함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지게 됐다. 또한 고혈압과 당뇨가 심장병을 유발하는 강력한 질환이라는 것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 결과 수 많은 사람들이 심장병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 방식의 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치료제의 효과에 대해서도 검증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인 1950년 영국에서는 4000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흡연의 유해여부를 알기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20년 동안 관찰한 결과를 1974년에 발표하였으며 그 후 2004년에 발표된 최종 결과에서는 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이 비흡연자에 비해 14배나 높게 나왔다. 연구가 시작된 1950년대에는 의사가 담배 광고에 나올 정도로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없었다. 그런데 이 연구의 결과로 인해 1954년 80%에 달했던 영국 성인의 흡연률이 2008년에는 26%까지 낮아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그 후 매우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됐고 그 내용을 인터넷으로 쉽게 접하게 됐다. 그 결과 기존의 문헌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진료의 기준으로 삼는 근거중심의학이 1990년대부터 자리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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