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칼럼] 민주주의 파괴하는 `선동 정치`
소중한 젊은 목숨들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의 책임 소재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 현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용산경찰서장과 상황 발생을 제때 보고하지 못해 구조작업의 차질을 초래한 서울청 상황관리관 등이 수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용산구청장, 용산소방서장, 용산경찰서 정보과장과 계장 등이 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대통령과 여당에겐 큰 악재임이 분명하다.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전도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 책임론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도가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정부 책임'을 꼽은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급기야 윤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주장하는 단체까지 나타났다. 국정조사를 들고 나오는 민주당도 은근히 그런 세력들과 연계해 퇴진 여론을 부추긴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에 수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교훈은 '안전한 사회 만들기'였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 이후 8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안전한 사회일까.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이 공개한 112 녹취록을 보면 사고가 터지기 4시간 전부터 사고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쇄도했다. 사고 직전까지 접수된 11건의 신고 중에는 압사 사고를 우려한 신고도 9건에 달했다. 이런 신고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참사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물론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처럼 대형 사고는 국가와 정권을 막론하고 언제든지 터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고의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씌운 경우는 세월호 정권 빼곤 들어본 적이 없다. 9·11 사태를 놓고 보더라도 부시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억지 부리는 이는 없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도 대형 참사가 잇따랐다. 66명의 사상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38명이 죽고 151명이 다친 '밀양 세종병원 응급실 화재' 등 숱한 대형 참사가 터졌다. 하지만 야당 정치인 중에 이를 정쟁에 이용한 이는 없었다. 그 누구도 대통령 탓을 하진 않았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세월호 때처럼 현장 대응을 잘못해서 참사를 키웠다"면서도 "세월호 정권처럼 이 화재참사를 정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세월호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7시간의 행적'을 낱낱이 밝히라고 압박한 것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 무한 책임론이란 말이 전혀 틀리진 않다. 하지만 민주 국가의 대통령이 전지전능한 존재도 아닐뿐더러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 군주도 아니다. 법으로 정해진 역할과 권한 내에서만 잘잘못을 따지는 게 옳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눈엣가시처럼 싫어하는 좌파 선동세력들은 '이태원 참사'를 윤 대통령 퇴진운동의 동력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좌파 선동세력은 대중의 분노, 슬픔 등의 정서와 요구를 적절하게 결집해 선동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먹잇감을 어떻게 요리할지는 이미 세월호 참사를 통해 충분히 학습한 터다.
세월호 참사를 물고 늘어져 박 전 대통령을 현직에서 파면시키고, 정권 탈취라는 '월척'을 낚았던 짜릿한 손맛을 어찌 잊겠는가. 이정미 당시 헌재 재판관이 '박근혜 탄핵 결정문'을 읽기가 무섭게 팽목항으로 달려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고 쓴 까닭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태원 참사의 정쟁화다. 지금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온갖 혐의와 의혹으로 검·경 수사의 표적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떨어진 후 그를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공천해 국회 입성을 측면 지원했고, 당 대표로 뽑아 떠받들고 있다. 그런 처지에 "이게 나라냐"며 현직 대통령을 몰아냈던 '세월호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지 말란 법이 있는가.
이태원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정치 선동의 희생물이 돼서도 안된다. 선동 정치가들은 시민사회의 불안과 혼란, 분쟁 등을 야기해 국가를 파괴시키거나 몰락시킨다. 그들에게 진정한 추모의 자리는 없다. 지난 5년간 민주주의의 파괴를 직접 체험했던 국민이 절대 잊어선 안 되는 교훈이다. 선동 정치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콘텐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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