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땐 자리 지키는게 최선"…고연봉자 이직시장 찬바람
얼어붙은 이직시장
"올해 초 이직 제안이 오긴 했는데 흐지부지 끝이 났습니다. 7월 이후에는 증권가 이직 시장이 거의 사라진 상황입니다."(A증권사 채권 담당 직원)
"지난해 시장이 좋을 때는 세 군데서 이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올해 여름 이후부터는 주변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다는 직원이 확 줄었습니다."(B증권사 기업대출 담당 직원)
올해 들어 세계적인 경기 침체 우려와 함께 국내에서는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금융권의 유동성 위기까지 등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고소득 직장인의 대명사로 불리던 여의도 금융·증권가 이직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주식 시장이 활황일 때는 "출근하면 옆자리 직원이 바뀌어 있더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활발했던 증권가 이직 시장이 빠르게 사그라든 것이다. 이는 증권가뿐 아니라 회계사,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 직장인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이직을 포함한 채용 동향은 경기를 한발 늦게 반영하는 후행지표로 꼽히는 만큼 고소득 직장인의 이직 시장 한파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가는 이직률이 상당히 높은 직종으로 꼽힌다. 직장에 소속돼 있지만 주식이나 채권, 선물 등을 다루는 경우 수익률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실적이 좋은 직원들을 채용하려는 증권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증권사에서 채권을 담당하는 한 직원은 "국고채 거래와 같은 일부 직종의 경우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이직도 활발하다"며 "시장이 좋을 때는 한 달 새 두 차례나 직장을 옮기는 직원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국내 증권 시장은 활황을 맞았다. 그만큼 이직도 늘어났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이 회사의 이직률은 2020년 5.0%에서 지난해 6.0%로 늘어났다. 퇴직이 아닌 본인 스스로 직장을 나가는 자발적 이직률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카카오뱅크나 토스와 같은 핀테크기업의 빠른 성장을 비롯해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가상화폐 시장이 열린 것도 증권가의 이직이 확대되는 데 불을 지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면서 이 같은 추세가 빠르게 꺾이고 있다. 코스피 하락과 함께 하반기 들어서는 채권 시장까지 얼어붙는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서 증권사들이 이직 시장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증권사의 경우 인력이 곧 비용이다 보니 지금처럼 시장 유동성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채용을 최소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대형 운용사 외에는 신입 채용도 내년부터 줄일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다"고 말했다.
또 작년까지는 이직에 따른 연봉 인상과 사이닝보너스가 이직으로 발생할 손실(성과급 등)을 상쇄할 만큼 많았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증권사 관계자는 "현업 부서의 경우 잘못 이직하면 부실 자산을 맡는 어려운 업무를 할 수도 있다"며 "기본적으로 기존보다 채용도 많이 줄었고 직원들도 불확실한 시기이다 보니 이직을 보류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회계업계에도 퇴사자들이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인수·합병(M&A) 시장의 활성화로 인해 금융권, 사모펀드(PEF), 벤처캐피털(VC) 등 분야로 회계사들의 이직이 활발했다"면서도 "이들 업종의 상황이 이전보다 안 좋아지자 퇴사 후 이직의 움직임도 뚝 떨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A회계법인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결과 이 회사의 7월부터 10월까지 퇴사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절반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C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사가 진출해왔던 스타트업 등의 시장이 급격히 투자겨울을 맞이한 것도 퇴사율 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회계법인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퇴사자 수가 세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올 3분기 이후에는 뚝 떨어졌다고 한다. D회계법인 관계자는 "M&A를 맡는 딜 부문은 아예 PEF 등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빈번했으나, 올해 7월 이후로는 이 부문의 이직·퇴사율이 5%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로펌들도 취업난의 영향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활발하던 기업 사내 변호사 이직이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이준희 변호사는 "지난 3~4년 동안 급성장한 스타트업 회사들을 중심으로 3~9년 차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경기 불황과 취업난이 가시화하면서 법무 인력 수요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변호사들이 이직하기보다는 로펌에서 '버텨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 김명환 기자 / 전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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