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도 불사… 증권사 단기채 발행 러시

자금줄 마른 증권사들
13년만에 최고 금리에도
단기사채 발행액 크게 늘려
신용위기 방어 나선 정부
채안펀드 통해 물량 소화

정부가 '50조원+α' 규모의 긴급 시장 안정책을 내놓은 뒤 보름이 지났지만 기업어음(CP·91일물) 금리가 8일 13년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채권시장은 불안한 모습이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 물량이 많았던 증권사들이 CP보다 금리가 높은 단기사채(전단채)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다. 정부 긴급대책의 일환으로 증권사 발행 CP 등도 지난 1일부터 매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ABCP는 레고랜드발 사태 이후 시장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던 상품이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91일물 CP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4%포인트 오른 연 4.98%를 기록했다. 이는 2009년 1월 15일(5%) 이후 13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CP 금리는 채권시장에서 단기자금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CP 금리 상승은 최근 자금시장이 경색된 후 기관들의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CP 금리는 지난달 내내 쉬지 않고 매일 연중 최고치를 새로 썼다. 이달 들어서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아 직전 거래일 기록한 연고점(4.94%)을 하루 만에 넘었다.

금리가 연일 높아지고 있지만 증권사들은 CP와 단기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증권사 단기사채 발행액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채권시장 경색이 심화되면서 증권사들이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보증권이 지난 10월 발행한 단기사채는 1조6650억원으로 직전 월(1900억원) 대비 8배 이상 급증했다. 메리츠증권도 지난 9월 1000억원의 단기사채만 발행했지만 10월에는 5904억원으로 비중을 크게 늘렸다.

이달 들어서도 증권사들의 발행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주 21개 증권사가 발행한 CP와 단기사채 규모는 총 5조653억원으로 파악된다. 한국투자증권이 7700억원, 교보증권이 7200억원, 키움증권이 6290억원, 신한투자증권이 5610억원, 미래에셋증권이 4400억원가량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 가동과 한국증권금융을 통한 증권사 지원이 이뤄지면서 증권사들의 CP와 단기사채 발행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A증권사는 1일물 단기사채를 지난 8월 초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두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발행했다. A사는 부동산 PF에 주력해온 증권사 중 하나인데 1일물 단기사채 발행 규모는 200억~500억원을 오갔다고 한다. 올 하반기 들어 이 회사의 1일물 단기사채는 61회에 거쳐 발행됐는데 시장 경색이 시작된 지난 8월부터 발행량이 집중됐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에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다들 있다"며 "증권사들은 (유동성 확보가) 조금 더 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돌아오는 PF ABCP에 대한 자금 보충을 해야 하니 금리가 높아도 올해 말을 3개월물로 넘기자는 수요가 많다"며 "특히 정부 대책을 통해 CP를 사주니 증권사들의 물량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채안펀드는 지난주부터 CP를 중심으로 매입을 진행 중이다. 지난주에는 1차 추가 '캐피털 콜'(펀드 자금 요청)도 마무리된 상태다. 한국증권금융은 환매조건부채권(RP)·대출 등을 통해 중소형 증권사에 지난주 말까지 9300억원을 공급했다. KDB산업은행 등의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도 매입 규모를 확대하면서 증권사 발행 CP도 지난 1일부터 매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채안펀드와 증권금융 및 산은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은 보다 유연한 운영을 통해 시장 대응 기능을 높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명환 기자 / 차창희 기자 / 조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