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태원역 비닐로 감싼 이들…이유 듣고 '말문이 턱'

신정은 기자 2022. 11. 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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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일) 오후 4시쯤, 이태원역 앞 추모 공간이 갑작스레 분주해졌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찌감치 전해진 비 예보에 역 주변 추모 물품을 감쌀 큰 비닐을 미리 뒀지만, 빗줄기가 언제 어느 순간 거세질지 모를 일이라 허겁지겁 움직여야 했다.  "당겨요! 당겨!" 흩어져 있던 자원 봉사자들이 순식간에 모여 일사불란하게 비닐을 펼치기 시작했다. 역 주변을 뒤덮은 국화, 편지, 그림, 과자 상자 등이 혹여나 비에 젖을라 걱정되는 상황. 지나가던 시민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다. 워낙 많은 물품들이 쌓인 터라 비닐 여러 장을 겹치고, 또 겹치며 자원봉사자들은 3시간 넘게 추모의 공간을 둘둘 감쌌다. 

"비가 올까 봐 비닐로 감싸는 거세요?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기자의 질문은 자주 둔하다.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면서도, 모른 척 물어야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글과 그림이 젖을까 봐 비닐로 감싼다"는 정도의 간단한 설명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참사 다음 날부터 열흘째 이태원역을 찾아 자원봉사를 하는 한 60대 남성은 몸을 아예 비닐 안에 집어넣고 한참 꼼꼼하게 비닐로 감싸던 이었다. 그는 기자의 우문에 뜻밖의 답을 했다. "나중에, 나중에요. 혹시나 희생자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여기 왔을 때 시민들이 남기고 간 마음들이 잘 전달되면 좋겠어서요. 아직은 이곳에 올 수가 없을 테니까요." 말문이 턱 막혔다.


60대 남성도 이번 참사로 희생된 청년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들이 있다고 한다.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다고 하는데, 참사 다음날 아들과 연락이 닿기까지 밤새 괴로웠다고 한다. 소중한 이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어서 인지, 아니면 인근에 살아 마음이 더 쓰였던 것인지. 그도 이곳에 매일 오게 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새벽 5시에 나와 다음날 새벽 1시에 들어간다. 중간에 쉴 짬이 나는 일도 아니라, 일손을 보태겠다는 시민들의 연락을 받고, 어지러이 놓인 국화꽃을 틈틈이 정리하고, 비나 바람에 훼손될 수 있는 손 글씨들은 기록 보존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 새벽 5시 이곳에 오면 밤사이 취객들이 흩어 뜨린 추모 공간을 정리하기 바쁘다. 물을 끼얹고 가거나, 종이를 부욱 찢어 놓거나, 벌레와 새들을 끌어모을 개봉된 음식을 놓고 가는 것도 골칫거리라고 한다. 기자에게 당부할 말이 있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이곳 만큼은 정치적인 공간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태원역까지 찾아온 시민들이 그런 마음으로 온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남긴 간 글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안타까운데요."    

밤 10시까지 남아있던 한 자원봉사자 김경식 씨(가명)는 지난 주 두 차례 추모 공간을 찾았다가 이번엔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고 한다. 정부가 정한 국가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김 씨는 이곳에 또 찾아왔다. "다시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왔잖아요. 앞으로 이태원 참사 관련 조사도 이루어져야 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때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거고…. 또 국가 애도 기간이라는 이유로 활동에 지장을 받은 사람들도 또 떠오르고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들더라고요." 누군가 하루도 채 안 돼 털어낸 일이, 누구에겐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인 것을. 추모하고, 회복하기까지 저마다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우리 사회가 충분한 여유와 적절한 방법을 내어주고 있는 걸까. 생각에 깊이 잠겼다. 

참사 당일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당분간 우리 기자들은 이태원역에서 현장 중계를 이어가고 있다. 비슷한 내용의 반복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 한 외국인 생존자는, 직접 목격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회복하기 위해 이곳을 매일 찾게 된다고 한다. 참사에서 친한 친구를 잃은 한 여성은 지난 주 장례를 겨우 마친 뒤 이곳을 찾았다며, 현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다. 이태원역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놀라고 안타까운 마음에 추모 공간을 찾을 엄두를 못 내다, 열흘이 지나서야 마음을 추스르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추모 공간을 찾은 사람들은 울거나, 고개를 푹 숙이거나, 시민들이 남긴 글들을 한참 읽는다. 그렇게 이 공간은 이어지고 있다. 

이태원역 추모 공간 소식을 전하는 뉴스 기사에 벌써 온갖 조롱 댓글이 달린다. 내용을 자세히 전하긴 어렵지만, 이게 다 '쇼'라는 취지의 날카로운 말들이 줄줄이 달렸다. 최소한 기자가 그곳을 찾아 만난 시민들, 생존자, 유족,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은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언론을 통해 잘못 비칠까 봐 경계하기도 했다. 모종의 정치적인 이유로 추모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며 왜곡하기보다, "나중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이 이곳을 찾게 될 때 시민들이 남긴 소중한 마음이 전해지길 바란다"는 그 60대 자원봉사자의 마음이 꼭 전달되길 바란다. 

신정은 기자silv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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