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심으로 그은 수만 개의 선···'검은 거울' 속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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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림처럼 보이지만 화면 안에는 가느다란, 무수히 많은 직선들이 줄지어 서 있다.
면(面)으로 보이지만 선(線)이었고, 검다고 느꼈으나 각각의 선은 서로 다른 색을 갖고 있다.
섬세한 검은 선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 윤상렬(52)의 근작들이다.
1㎝의 폭 안에는 검은 선 60개가 들어갈 수도 있고, 600개까지 담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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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 긋고 색 입힌 아크릴 씌워
깊이의 '환영' 만들어 입체감 효과
가까이, 또 멀리서 볼때 다른 느낌
검은 그림처럼 보이지만 화면 안에는 가느다란, 무수히 많은 직선들이 줄지어 서 있다. 0.3㎜ 이상의 샤프심을 간격과 진하기를 달리해가며 긋고 그어 만든 ‘검은 화면’이다. 면(面)으로 보이지만 선(線)이었고, 검다고 느꼈으나 각각의 선은 서로 다른 색을 갖고 있다. 섬세한 검은 선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 윤상렬(52)의 근작들이다. 20여 점을 엄선한 그의 개인전 ‘조금 조금 조금’이 강남구 청담동 이유진갤러리에서 19일까지 열린다.
가는 선을 숱하게 그어 면을 만든 것도 놀라운데, 그 선 사이에 안료로 색을 넣었다. 정교한 작업 과정에 최소한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개입되기는 하나 99% 수공이요, 오로지 혼자 작업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샤프심이 0.3㎜부터 0.5㎜, 0.9㎜까지 굵기도 진하기도 제각각인데, 전 세계 거의 모든 샤프심을 다 써봤다고 할 정도”라며 “어떤 샤프심은 보라색이 돌기도 하고, 독일제 샤프심은 녹색 기운도 있다. 흑연이 광물이라 재료 자체가 갖는 생명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1㎝의 폭 안에는 검은 선 60개가 들어갈 수도 있고, 600개까지 담길 수도 있다. 선을 긋고, 그 위에 색이 프린트 된 초박형 아크릴 판을 씌운다.
“평면에 그은 선이지만, 그 간격이 이루는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효과가 생겨납니다. 깊이의 환영(illusion)을 만들어 입체감, 혹은 공간적 깊이감을 만들어내죠.”
이 작품은 가능한 한 가까이서 들여다봐야 한다. 선들이 이루는 검은 색의 공간감은 흡사 일사불란한 샤프심 선들이 일렁이며 움직이는 듯하다. 그런 다음, 그림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 멀리서 다시 봐야 한다. 한없는 어둠의 끝에 ‘나’ 자신이 보인다. 검은 거울과도 같다.
유명 화가를 배출한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눈썰미와 손재주를 물려받은 윤 작가에게 화가의 업보(業報)는 일종의 굴레였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목공, 조명, 공간디자인 등 7가지 직업을 거치며 자신과 싸웠다. 고뇌와 탐색의 기간에 깨달은 것은 작업과 작가의 삶이 일치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반지하 어두운 방에서 불도 꺼놓은 채 드로잉을 시작한 17년 전 그 때를 작가는 “긁적였다”고 회고했다.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지점에서 ‘자아의 완성’이 탄생했다.
작가 자신은 ‘단색화’로 불리는 것을 꺼리지만 작품이 갖는 ‘단색화’적 특징은 부인할 수 없다. 1970년대 한국의 단색조 추상회화를 뜻하는 ‘단색화’의 대표작가 박서보가 정의한 “행위의 무목적성, 무한 반복성, 흔적의 정신화”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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