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성공의 상징 '유니콘'… 美서 절반 쏟아지는 이유 있다

정희영 2022. 11. 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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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뿔이 하나 있는 상상의 동물이다. 하지만 근래에 유니콘이라는 단어는 상상의 동물보다는 기업가치가 10억달러(국내에서는 통상 1조원으로 본다)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3월 기준 전 세계 유니콘 기업은 1066개에 이르며, 국가별로는 미국이 1위다. 전체 유니콘 가운데 절반이 넘는 52%를 차지했다. 2위는 16.3%인 중국, 3위는 6%인 인도, 4위는 4%인 영국이다.

인구만 봤을 때는 미국보다 중국, 인도, 유럽 쪽에 훨씬 유니콘 기업이 많아야 한다. 미국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특이점은 무엇일까.

◆ 창업자 - 혁신의 씨앗

근대 농업혁명, 금융혁명, 그리고 산업혁명은 모두 유럽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보, 우주, 생명공학 등 오늘날 산업에서의 혁명은 미국에서 일어난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상생 협력하는 미국의 개방적인 문화가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실리콘밸리다.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어낸, 스탠퍼드대 출신이 창업한 기업은 1930년대부터 약 4만개에 이르고 여기에서 창출된 일자리도 무려 540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수많은 나라와 도시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했지만 제대로 된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미국의 정치·경제, 사회·문화적 특성에 대한 철저한 이해 없이 대부분 외형적 모방에 그쳤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는 스탠퍼드대, UC버클리 같은 초일류 대학 인재들이 유입된다. 미국의 특징 중 하나는 이민자들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의 창업자 가운데 이민자가 의외로 많다.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는 이유다. 출신 국가에 대한 차별이 없는 인적 개방성이 미국의 저력 중 하나다.

◆ 투자자 - 혁신의 비료

실리콘밸리의 태동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윌리엄 쇼클리 박사는 1956년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존 트랜지스터보다 훨씬 빠르게 작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반도체 제작에 나섰다. 쇼클리 박사는 미 서부의 명문 공과대를 갓 졸업한 명석한 박사들을 고용했으나 그의 편집증적이고 강압적인 연구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8명이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떠났다.

쇼클리 박사는 이들의 이적을 배신으로 봤지만, 이들은 이후 미국 벤처캐피털(VC) 역사를 만드는 '8인의 배반자'로 기록된다. 이들은 혁신적인 반도체에 대한 자신들의 꿈을 상품화해줄 기업과 자금이 필요했고, 이때 접촉한 사람 중 한 명이 당시 중소 하이테크기업 펀딩에 관심을 갖고 있던 투자자 아서 록이었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당시 카메라 회사를 운영하던 셔먼 페어차일드를 설득해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최초로 벤처캐피털 펀딩을 받은 회사가 된 것이다.

이후 록은 본인 명의로 된 벤처캐피털 회사 아서록앤드컴퍼니를 설립하고 유명한 벤처 투자를 여러 건 성공시키며 미국의 벤처캐피털 역사를 써 나가게 된다. 대표적인 투자 성공 사례가 인텔과 애플이다. 인텔은 '8인의 배반자' 중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에서 나와 앤디 그로브와 함께 1968년 설립한 회사다. 이후 록은 '아서 록 마피아'라 불릴 정도로 벤처투자자들의 대부가 됐다. 벤처투자자들의 열정과 혁신적인 창업 기업의 성공 사례는 후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됐다.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성장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위해서다. 스타트업 성장에는 우수한 인재,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적 기술, 사업이 성립할 수 있는 시장과 이에 부응하는 제품, 그리고 이것을 실행할 자금이 필요하다. 이 자금으로 인재를 영입할 수도, 기술을 개발할 수도, 다른 회사 기술을 매입할 수도 있다. 화학 용어로 말하자면 '촉매'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다. 투자자는 사업에서 훌륭한 동반자가 된다. 초기 스타트업에는 항상 인력이 부족하다. 기술과 제품 개발 같은 최고 핵심 분야를 제외하면 영업, 사업 개발과 제휴, 재무와 같은 분야에 능력 있는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이런 분야는 벤처캐피털이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

셋째, 사업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객관적 시각으로 검증받을 수 있다. 투자 유치를 준비하면서 처음에 세웠던 회사의 구체적 목표, 회사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등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당장 급한 제품 개발이나 영업에 매달리다 보면 창업 초기에 가졌던 가장 근본적인 비전을 잊어버리기 쉽다. 투자 유치를 위한 벤처캐피털과의 상담 과정 중에 창업의 목적, 회사 비전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상기할 수 있게 된다. 벤처캐피털의 투자 유치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작물이 자라는 데 비료가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 경영자 - 혁신의 농부

스타트업에서 대표적인 창업자 그룹 가운데 하나가 대학교수다. 교수의 전문 분야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을 하는 것이다. 이런 성과들은 좋은 출발점이 된다. 학술지에 좋은 논문을 내고, 우수한 특허를 내서 개발한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뛰어난 학생들과 함께 기업을 설립해야 한다. 즉 '고인 물'과 '젊은 피'의 만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경영을 잘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 즉 훌륭한 최고경영자(CEO)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모더나는 벤처캐피털인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이 기획 창업한 회사다. 진단기술 회사인 비오메리외 CEO였던 스테판 방셀을 모더나 CEO로 영입했다. 경영자로서 방셀은 훌륭했다. 아스트라제네카·머크 등 대형 제약사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2018년 초에 5억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작은 기업으로 시작한 모더나였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직원 30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는 시가총액 약 550억달러(2022년 9월 기준)의 제약사로 성장했다.

모더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로버트 랭어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는 40개 이상의 스타트업 창업에 참여했다. 13개 이상의 스타트업은 매각됐으며, 19개 이상은 현재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 랭어 교수는 상임직은 맡지 않고 일주일에 하루만 기업 관련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랭어 교수는 모더나에서 창업자 겸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모더나 지분 3%만을 보유하고 있다.

CEO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극과 극 사례가 있다. 중앙처리장치(CPU)계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왕으로 군림해오던 인텔은 2013년 제6대 CEO로 브라이언 크러재니치가 취임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가 절감에만 치중하면서 엔지니어들에게 투자하지 않고 내부 조직에 서로 모순되는 명령을 내리면서 3주 내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무작정 취소하는 등 정보기술(IT) 기업 경영을 단순 제조업 공장 돌리듯 끌고 갔다. 그 결과 2019년까지 인텔의 연구개발(R&D)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정도로 연구조직이 망가져 버렸다. 2016년 인텔 엔지니어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으며 이미 상당수가 다른 회사로 옮겨 갔다. 이때 내부 조직에서는 인텔이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고 있었다. 2017년에는 대만 TSMC가 인텔 시가총액을 추월했고, 삼성전자 2분기 영업이익이 인텔을 넘어서게 됐다.

이에 반해 인텔을 넘어선 적이 없었고, 한때 투자 부적격 회사로까지 판정받았던 AMD에는 2014년 리사 수가 CEO로 취임했다. 그는 새로운 CPU 시리즈인 라이젠을 회사 명운을 걸 정도로 밀어줬고,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AMD는 부활에 성공했다. 수는 무엇보다도 R&D 부서 복원에 집중해 인재 영입에 공을 들여 AMD를 인텔과 다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현택환 서울대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 정희영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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