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태원 참사 관련, 종교행사 및 회의석상에서 "죄송한 마음"
역대 대통령과의 사과와 비교, 책임 있는 대처 요구 잇따라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거듭 밝혔지만, 진정한 사과로 보기 부족하다는 야권 비판이 여전하다. 윤 대통령의 사과와 역대 대통령이 참사 당시 대응했던 방식이 비교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책임 있는 사과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의 참사 초기 대응은 신속한 동선·지시사항 공개에 집중됐다. 이태원에서의 압사사고가 처음 알려진 지난달 29일엔 오후 11시36분께 이재명 부대변인 서면브리핑을 시작으로 대통령의 지시사항들이 전달됐다. 자정을 넘겨 대통령의 긴급상황점검회의, 추가 지시사항, 김은혜 홍보수석의 서면 브리핑 등이 이어졌다. 30일 오전 9시49분경 윤 대통령은 서울 용산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로 부상자 회복 및 유가족 위로와 함께 의료지원, 사고 원인 파악과 유사 사고 방지를 약속했다.
그리고 10월30일 윤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이달 5일까지 정해진 기간 동안 윤 대통령은 홀로 또는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의 취재도 윤 대통령의 분향소 추모 장면을 기록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엔 참사 관련한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경질 요구를 받아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분향소 조문에 동행했다. 이 기간 '정쟁 중단' 명목으로 책임 규명 요구를 누르려 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의 첫 '사과'로 해석된 메시지는 종교행사에서 나왔다. 참사로부터 엿새 째였던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추모 위령법회'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석상에서 윤 대통령은 다시금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밝혔다.
일련의 대응에서는 이번 참사에 대통령이 얼마나 정서적 공감을 하는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힌다. 7일 회의 당시엔 상당히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의 회의 발언이 글과 영상 형태로 공개됐다. 10포인트 크기의 글로 A4 용지 네 장 분량인 발언을 통해 윤 대통령은 연신 경찰을 '꾸짖는'다.
이현우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저서 '사과의 공식'에서 정치인의 사과 관련해 사과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존 케이도의 '5R 공식'을 소개한다. 잘못에 대한 확인(Recognition), 책임감의 인정(Responsibility), 양심의 가책 표현(Remorse), 원상 복구를 위한 배상 제시(Restitution), 재발 방지에 대한 다짐(Repetition) 등이다. 윤 대통령의 사과는 '양심의 가책 표현'에 치중하는 양상이란 지적이 가능하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7일 대통령 발언에선 특히 감정적 질책이 두드러진다. “인파 관리의 기본 중 기본이 뭐라고 그랬나, 밀집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자치단체도 결국은 경찰이 협조하는 것이다. 안전 사고를 예방해야 할 책임은 어디 있나? 경찰에 있다” “경비경찰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시위나 위기의 상황에서 방패, 몽둥이, 그리고 각종 기구들을 가지고 인파를 해산시키는 훈련을 받아온 사람 아닌가” 등의 발언이다. 앞서 1일에도 윤 대통령은 '112신고'에 경찰의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격앙' '격분'했다는 수식어가 기사 제목에 붙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회자되는 역대 대통령의 사과문은 이번 윤 대통령의 사과문과 다소 차이가 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관련 담화에서 “국민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그리고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대통령으로서 저의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이원종 서울시장을 경질하면서도 이영석 국무총리 사표를 반려한 이유에 대해서는 “심사숙고 끝에 국무총리의 사표를 반려한 것도 무엇보다 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1999년 6월 씨랜드 화재 다음날 합동분향소에 방문해 유가족을 만나 사과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사태를 책임지고 경질되거나 사의를 표한 내각 인사는 없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었던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 이틀 뒤 참사 현장에 방문했다. 사흘째인 2월21엔 대통령직 인수위 회의에서 “국민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정치하는 사람들과 스스로 지도자로 칭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죄인된 느낌을 가지고 일을 해왔는데 내 심정도 그렇다”며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거듭 사과의 말을 드린다”고 했다. 이번 참사 국면에서 사과문 자체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입장이다.
'최악의 사과'라는 비판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모인다. 참사 당일 구조 실패,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보고·대응 미작동으로 질타 받았던 박 전 대통령은 4월16일 참사로부터 열흘이 넘도록 사과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왜 사과를 안할까”(국민일보) “성난 민심이 묻다…대통령은 왜 사과 안 하나”(서울신문) 등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13일이 지나 박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사과 수용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자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받아들이는 쪽에서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굉장히 유감”이라고 말한 일은 해선 안 될 사례로 거론된다.
이번 윤 대통령 '사과'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두 번째 사과 이후 비판 강도가 더 높아졌다. 8일 경향신문 김민아 논설위원은 칼럼(윤석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을까)에서 “대통령은 조문객에 머물 수 없다”며 “시민은 대통령의 마음이 아니라 책임이 궁금하다”고 했다. 동아일보 김지현 정치부 차장은 칼럼(참사 앞 밑바닥 드러낸 尹 정부의 '엘리트'들)을 통해 “(참사 다음날 사고 현장을 방문해)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반말로 툭툭 질문을 던져대던 윤 대통령은 여전히 범죄 현장을 수사하는 듯한 검사의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재난의 책임자가 아닌 방관자 내지 제3자의 추모객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는 칼럼(추모객이 된 대통령…재난에서 분리된 尹대통령에 관한 고찰)에서 “대통령은 정부 최고위 공직자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책임자의 언어가 아니라 경찰의 서비스를 받는 '한 사람의 시민'의 입장으로 사안을 보고 있다”며 “참사 초기 정부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이 사건은 거의 '자연 재해'에 가깝다”고 했다.
청와대 연설비서관 출신 강원국 작가는 미디어오늘에 “기본적으로 지도자, 리더는 측은지심이 있어야 한다”며 “참사 현장에 가서 (압사로 인한 참사 관련해) '뇌진탕 아닌가'라 말하는 것은 국민의 피해에 이입이 된 안타까움을 표하는 게 아니라 제3자적 입장에서, 검사가 사건 현장에 나온 듯한 말과 표정으로 느껴졌다”며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가. 정치인의 사과는 국민에게 일종의 위로도 될 수 있고 치유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참사 관련 논의가 대통령 사과에 매몰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다른 나라 사례를 냉정히 보면 미국 9·11 테러 등에 대해 애도는 풍부한데 총리 책임이다, 대통령으로서 뭘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사과를 위한 사과에 얽매인다는 생각도 든다”며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때 '인격적으로 진정성 있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시스템 재발방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분해서 볼 때 전자의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사안을) 잡아먹으면 다른쪽의 공간은 줄어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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