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맛보는 가을 사과
17일까지 인사동 노화랑
자꾸만 만지고 싶어진다. 전시장 전면에 자리 잡은 탱글탱글 탐스러운 초록 사과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사과 작가' 윤병락(52)이 올해 그린 대작 '녹색 위의 붉은 사과'(183×83㎝)다. 한 관람객이 작품 측면에서 평면이 맞는지 재차 확인한다.
윤병락이 사과 연작을 본격 그린 지 20년째 되는 해 그의 20번째 개인전을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고 있다. 기존 전시들과 달리 100호가 넘는 대형 신작들 위주로 차별화했다. 크기에서 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대체로 나무 상자 안에 신문지와 함께 들어 있는 사과들이 풍성함을 극대화하지만, 동글고 하얀 백자 푼주 안에 소담하게 앉은 붉은 사과들, 바닥에 흩어진 사과들까지 다채롭게 향연을 펼치고 있다.
선명한 디지털 사진 기술이 복제품을 양산하는 시대에 철마다 다른 사과를 연간 5상자 이상 사들이고 매번 새롭게 배치해 가며 우직하게 그리는 화가는 생경하다. 작가는 극사실화 초기만 해도 복숭아를 주로 그리고 포도, 귤 등 다양한 과일을 시도하다가 종국에는 사과에 안착했다. 윤병락은 "사람 생김새가 다 다르듯, 같은 사과가 없어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등 역사적 의미도 있고 보관이 쉬워 오래 관찰하고 작업하기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에 회화적 느낌이 강한 편이었다면 지금은 좀 더 농도와 색깔이 강해지면서 살아 움직이는 듯 표현하게 됐다. 그림을 그릴수록 점점 더 그리기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직사각형 캔버스에 그리지 않는다. 자작나무 합판에 한지를 세 겹 바르고 겔 소재를 발라 붓질 효과를 극대화하니 철저한 계획이 필수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작은 그림이 커졌을 때 엉성함이 드러나기 쉬운데, 윤 작가는 진짜 내공을 보여준다"고 했다. 탐스러운 사과 그림들은 전시를 열자마자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파를 끌어모았다. 사과를 그리는 극사실화 작가는 많지만 윤병락 사과는 1년에 50~60점만 그릴 수 있어 항상 대기자가 있다. 그 덕분에 아류도 많지만 실제로 보면 차이가 난다. 전시는 17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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