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낸 듯 즐긴다” 사람들 잘 모르는 ‘갈대 천국’ 어디길래
청정갯벌 포함 20만평 갈대 군락지
백운동정원 등 한적한 가을 명소 한가득
청정갯벌 포함 20만평 갈대 군락지
백운동정원 등 한적한 가을 명소 한가득
가을이면 단풍 못지않게 인기를 한몸에 받는 생명체가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포근한 이미지가 감성적인 가을과 잘 어울리는 갈대와 억새가 그 주인공이다. 여름에는 초록빛, 겨울에는 자취를 감춰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갈대나 억새를 감상할 수 있는 건 가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인증 사진 하나 남기려 갈대밭, 억새축제를 찾아가면 현실은 갈대 반 사람 반이다. 빽빽한 갈대를 사진에 담고 싶지만 갈대밭 중간중간 검은 머리가 쑥 나타난다. 그래서 물색했다. 전세낸 듯 한적하게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국내 여행지, 강진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떠났다. 선택은 탁월했다. 강진에서 찾은 나만 알고픈 가을 명소 5곳을 소개한다.
?호남 지방 갈대 명소로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자주 언급한다. 명성대로 아름답지만, 가을이면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벼 여유롭게 관람하고 사진찍기는 힘들다. 그 대신 훨씬 큰 규모에 비교적 덜 알려져 한적하게 즐기기 좋은 강진만 국가정원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지난달 28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 만에 제7회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가 열렸다. 국가 애도기간에 동참하기 위해 공연을 전면 취소하고 체험 위주로 운영했다. 입구를 핑크뮬리와 가을국화 포토존으로 꾸며 잔잔한 갈대밭에 화사함을 더해줬다.
66만m²(약 ?20만평)의 광활한 갈대 군락지에 도착하면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춤추는 갈대들이 반겨준다. 사계절 언제나 아름답지만, 갈대가 잔잔한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에 방문하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1131종 생물이 사는 청정 갯벌이 돋보인다. 눈앞에서 짱뚱어, 붉은 발말똥게, 각종 고둥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빼곡한 갈대에 파묻혀 인증 사진을 남기며 4㎞의 데크길을 천천히 걸었다. 워낙 규모가 커 입구에서부터 약 40여분을 걸어야 마스코트인 고니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드넓은 갈대밭을 카메라 가득 담고 싶다면, 공원 입구의 전망대보다는 고니 다리의 전망 스폿에 올라가는 걸 추천한다. 입구 전망대는 갯벌이 바로 앞에 펼쳐져 있어 갈대 무리가 멀리 작게 보이지만, 고니 다리에 오르면 황금빛 물결이 눈앞에서 넘실댄다.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자전거 대여 후 남포축구장~강진만 생태공원~남포교~제방 자전거도로~철새도래지(반환) 등 9.2㎞ 코스로 약 1시간 정도 달려보는 것도 도전해보자.
녹차는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재배하기 매우 까다롭다. 국내에서는 김제 이남 지역에서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워낙 희귀한지라 여행지에 녹차밭이 있으면 꼭 한번은 들러보게 된다. 강진에서도 향긋한 녹차 향을 맡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진 월출산 주변으로 설록차로 이름난 제다(製茶) 업체 태평양 다원이 운영하는 33만m²(약 10만 평)의 차밭이 펼쳐져 있다.
?9월부터 초겨울 사이에 설록다원을 방문하면 녹차밭 군데군데서 녹차꽃을 볼 수 있다. 또 가을이면 울긋불긋 물든 월출산 단풍과 푸릇한 차밭을 함께 눈에 담을 수 있어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짙은 안개 속 월출산을 가장 감상하기 좋은 스폿이니 강진에 왔다면 꼭 방문해보자.
설록다원에서 이어지는 울창한 대나무숲길을 지나면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세연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백운동 정원이 나온다.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가 꾸민 정원으로 정약용, 초의선사, 이시헌 등이 거닐던 곳이다.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이름에도 근사한 의미가 담겨 있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돼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녔다. 이곳에선 중국 자연계곡 놀이 문화인 유상곡수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밖의 계곡물을 안으로 끌어와 다시 내보내는 형태로, 이곳에서 선비들은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백운동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백운첩’을 남겼다. 정자에서 월출봉쪽 나무숲 사이로 백운동정원 제1경인 월출산의 옥판봉을 발견할 수 있다. 나무들이 형형색색 물든 가을에 오면 정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숲멍’하게 된다.
?영랑 김윤식 선생이 태어났을때부터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45년간 살았던 생가는 주인이 바뀌며 원형을 잃어버렸다가 1985년 강진군청이 집을 복원해 초가집으로 다시 지었다. 현재 본채와 사랑채 2동을 볼 수 있다. 87편 시 중 60여편이 이곳에서 쓴 만큼 그의 삶의 흔적이 가장 많이 묻어난 장소다.
?영랑생가는 자칫 소소해보이지만 가을이면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도시에선 보기 힘든 거대한 은행나무가 여럿 있고 뒤로는 대나무숲과 동백나무가 펼쳐져 절경을 이룬다. 5월에는 생가 마당에 그의 대표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떠오르게 하는 모란이 만개해 또다른 매력을 자랑한다.
?노란 빛깔에 취하니 꼬릿한 은행 냄새 조차도 향기롭게 느껴진다. 김윤식 선생의 옛 터전은 은행나무 밑 작은 나무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부터 산책 나온 부부까지, 관광객은 잘 모르는 현지인들의 가을 나들이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영랑생가 뒤편에 바로 이어지는 세계모란공원은 고즈넉한 생가와 또 다른 밝고 화려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생태연못, 전망대, 포토존 등과 함께 야간에는 화려한 경관조명으로 빛난다. 8개국 50종류의 모란을 만날 수 있는 세계모란원이 대표 스폿.
?가장 눈길을 끈 시설은 사계절 모란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 온실이다. 우리나라 토종모란과 더불어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별 모란을 잘 설명하고 있다. 모란뿐 아니라 선인장, 핑크뮬리 등 다양한 식물이 모여 있다. 강진군에서 사계절 모란꽃을 볼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해 전시중이라고 하니 봄에는 특히 더 많이 피어있을 듯하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훌륭하다.
?온실을 나오면 공원에는 모란이 많이 피어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울긋불긋 물든 단풍과 억새들이 아름다워 가을에 와도 충분히 즐기기 좋다. 영랑생가의 은행나무에 눈길을 빼앗겨 세계모란공원을 놓치지 말자. 여느 수목원 안 부럽게 관리를 잘 하고 있고 입장료도 받지 않아 가성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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