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포커스] 실크로드에도, 검은대륙에도 … 전쟁의 도화선은 불붙고 있다
'바보야! 문제는 지정학이야.'
지정학(地政學·Geopolitics)이 부활하고 있다.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지나치며 이성과 논리가 통하는 국제사회를 꿈꿨다. 일견 그렇게 돼가는 듯 보였다. 각종 조약이나 국제기구들이 역할을 시작했고 각종 정상회의들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모여 앉아 기후위기나 난민 문제 같은 것들을 논의했다. 근사해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 지정학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리는 국경문제가 국제사회의 모든 것임을 알게 됐다.
이념도, 조약도 지정학 앞에서는 한낱 허상에 불과했다.
지정학은 국제관계학과 정치지리학(Political geography)의 한 갈래로, 주권을 가진 각 국가 세력의 지리적 분포가 국제사회, 경제, 안보 등에 미치는 영향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지정학은 국가의 접경에서 민족과 종교, 문화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이것이 치명적인 갈등이나 무력 충돌로 번질 수 있다는 상식에서 시작됐다.
한때 지정학은 위험한 학문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국제사회를 지리적 시각으로만 보는 게 일견 단순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결국 지정학만이 국제분쟁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말해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지정학이야.'
지정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의 잠재된 화약고는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한반도, 우크라이나, 대만, 발칸반도 말고도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국경지대에 미래의 폭탄이 장전돼 있다.
언젠가 도화선에 불이 붙을 것이 분명한 지정학적 위험지역들을 찾아보자.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다. 아르메니아는 정교회를 믿는 국민이 다수인 기독교 국가고,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다.
문제는 두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서로 용서할 수 없는 원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여기에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까지 더해져 대화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접경이 돼가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원래 동로마제국의 땅이었다. 하지만 오스만튀르크에 점령되면서 긴 수난이 시작된다. 발칸전쟁 때 이슬람세력에 학살당하고, 2차 대전 때도 수난을 겪는다. 러시아는 같은 정교회 세력인 아르메니아를 이슬람 세력을 저지하는 최전방으로 생각하고 지원을 시작한다. 1922년 오스만제국이 멸망하면서 두 나라는 구소련의 영토가 된다. 둘 사이의 분쟁이 다시 격화된 것은 구소련이 붕괴하면서부터다.
소련이 붕괴하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독립을 한다. '나고르노카라바흐'라는 애매한 지역이 분란의 씨앗이 된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영토는 아제르바이잔에 속하지만 지역민 대다수는 아르메니아인들이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 개입해 직할통치 지역을 설정해 아르메니아인들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1992년 호잘리 대학살이라는 비극이 일어난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인 600여 명을 학살한 것이다. 오랜 세월 학살을 당했던 아르메니아가 복수를 한 것이다. 이후 두 나라는 끊임없이 국지전을 하고 있다. 여기에 인접국 이란은 자국 내 아제르바이잔인들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막기 위해 아르메니아를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을 등에 업고 있는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는 아제르바이잔의 충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화약고다. 최근에는 아제르바이잔이 중앙아시아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유럽으로 향하는 중간 집결지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치닫고 있다.
키프로스섬을 놓고 벌이는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분쟁도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키프로스(또는 사이프러스)는 우리나라의 경기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에 117만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작은 국가다. 영토는 작지만 유럽은 물론 아시아·아프리카를 잇는 교통의 핵심지라는 지정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 키프로스는 튀르키예계(주민의 20%)가 거주하고 있는 북키프로스와 그리스계(80%)가 거주하고 있는 남키프로스로 분단돼 있다. 1974년에 튀르키예군대가 키프로스의 북부지역을 점령한 이후 남과 북 키프로스로 분단됐는데 이 상태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남과 북 키프로스 사이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관리하는 완충지역이 있다. 그리고 최남단 아크로티리에는 영국군의 군사기지가 있다.
키프로스 갈등은 그 연원이 길다. 초기 그리스인들이 거주하던 이 섬은 기나긴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거쳤다. 튀르키예계 주민들은 이 시절에 유입됐다. 이후 1830년 독립한 그리스는 지속적으로 키프로스의 병합을 주장한다. 하지만 키프로스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위협을 느낀 영국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 것이다.
1차 대전 때 독일과 동맹을 맺는 바람에 패전국이 된 튀르키예는 영국의 이 같은 조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5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1960년까지 지속되던 그리스, 튀르키예, 영국의 3자 대립은 1960년 영국이 한발 물러서며서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맞대결로 압축된다. 두 나라는 같은 나토 국가이면서도 철천지원수처럼 지낸다. 키프로스 내에서는 여전히 폭력사태가 계속되고 있고 언제 전면전의 양상을 띨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핵무기 보유국 간의 대결이라 그 위기감이 더하다. 분쟁의 뿌리는 1947년에 인도대륙이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과정에서 인도대륙은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와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갈라졌다. 문제는 인도·파키스탄 북쪽 국경에 있는 카슈미르 지역이었다. 카슈미르는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이다. 당연히 이슬람교도 주민들은 카슈미르가 파키스탄에 속하기를 바랐지만, 힌두교를 믿었던 카슈미르의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인도 편입을 결정했다.
충돌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947년 10월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지역에서 큰 전쟁을 벌였고, 파키스탄이 일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파키스탄령 '아자드카슈미르'가 생겼다.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은 큰 전쟁만 두 번을 더 치렀다. 지금도 인도군이 파키스탄령 아자드카슈미르 지역에 대포를 쏘고, 파키스탄은 잠무카슈미르 지역 이슬람 무장세력을 부추겨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남미대륙에서도 국경문제가 심각한 지역이 점점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다. 두 나라는 붙어 있는 나라지만 언어, 문화, 종교에서 차이가 있다. 베네수엘라는 스페인 지배 영향으로 스페인어를 쓰고 가톨릭 신자가 많다. 반면 영국 식민지였던 가이아나는 영어를 쓴다. 식민지 시절 영국이 인도인을 다수 이주시키면서 종교적으로는 기독교·힌두교·이슬람이 뒤섞여 있다.
1966년 가이아나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자 베네수엘라는 과야나에세키바(가이아나 영토의 3분의 2)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선다. 영국 점령 시절 이 지역을 빼앗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베네수엘라는 이 지역 침공을 시도했지만 국제사회가 중재에 나서면서 잠시 잠복기를 거쳤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분쟁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석유가 발견되자 다국적 석유기업들을 앞세운 선진국들이 앞다퉈 입김을 행사하면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남아메리카는 식민지 시절 구획된 국경선 문제가 늘 잠복돼 있다. 특히 이들 지역의 막대한 자원이 개발되면서 그 이권을 포기할 수 없는 강대국들이 개입하면서 지정학적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우루과이·브라질, 콜롬비아·페루, 에콰도르·페루, 파라과이·브라질, 볼리비아·브라질 등의 접경지역은 언제든 계기만 있으면 폭발할 수 있는 잠재위험을 지니고 있다.
아직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아프리카 지역 역시 거대한 지정학적 충돌이 예고된 땅이다. 직선이 유난히 많은 아프리카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땅은 식민지배의 역사가 그대로 국경선으로 남겨진 곳이다. 지배국가들의 필요에 의해 급조된 인위적인 국경이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최고치다.
아프리카 영토 분쟁의 역사는 1876년께부터 시작됐다. 1876년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탐험가들을 후원한다는 핑계로 중앙아프리카에 '벨기에령 콩고'를 건설한다. 같은 해 프랑스가 세네갈을 손에 넣었고, 1882년에는 영국도 이집트를 점령한다. 이후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이 아프리카대륙 각지에서 영토분쟁을 벌인다.
분쟁이 격화되자 이들은 조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1884년 베를린회의를 연다.
회의에는 15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을 비롯한 유럽의 13개국, 그리고 미국과 오스만튀르크였다)이 참여해 아프리카 지배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고 베를린 의정서를 공약한다.
의정서에는 콩고에 대한 벨기에의 지배를 인정하고, 콩고에 면한 적도 지역은 프랑스의 권리를 인정했다. 또 콩고강 하구는 포르투갈의 지배권을, 서남아프리카는 니제르강을 기준으로 상류는 프랑스, 하류는 영국이 지배권을 가져가는 것을 문서화했다. 종교, 인종 등을 무시한 채 정해진 이 국경선은 훗날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한 이후에도 유지되면서 많은 지역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르완다 내전과 콩고 전쟁도 식민지 지정학이 원인이었고, 서부사하라 원주민인 사하라위인들이 모로코를 상대로 벌이는 내전과 같은 독립전쟁도 결국 식민지배가 남긴 국경선이 분쟁의 씨앗이 된 경우다.
이 밖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차드와 수단의 국경분쟁,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의 분쟁,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분쟁도 뜨거운 감자다.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개발이 계속되고 이들이 국제사회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날 아프리카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요동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펼쳐질 세계사적 격변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시각이 지정학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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